자칫 행정공백 속에 무책임한 눈요기성 이벤트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채 시장의 이번 행보에는 뚜렷한 이유와 목적이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한계라는 벽을 허물고 화성시의 발전에 필요한 국책사업을 되찾아 오겠다는 취지다.
지난달 24일 해남 땅끝마을을 출발한 채 시장은 21일간 522㎞ 대장정을 통해 오는 13일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도착할 예정이다. 행군 중간에는 기착지에서 광역·기초 자치단체장과 주요 정친인들과 면담을 갖고 국토대장정 이유와 자연사박물관 유치 등의 당위성을 설명한 뒤 지지서명을 받고 있다.
지난 28일 태풍 ‘볼라벤’ 피해 예방 및 복구 조치를 하루 행군을 중단하고 화성시로 복귀했던 채 시장은 29일부터 다시 행군을 재개했다. 하루 평균 30㎞ 이상을 걸으며 9일째 행군을 이어가고 있는 채 시장을 전북 전주에서 만나 이번 행군의 의미와 목표를 들어봤다.
Q. 522㎞ 라면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닌데 고행의 길을 걷게 된 배경은.
A. 이번 국토대장정을 하게된 데는 크게 세 가지 이유에서다. 화성시에는 한국전쟁 당시부터 지난 2005년까지 미군의 포격 훈련장으로 쓰인 매향리 사격장이 있다. 우리시는 이곳에 평화생태공원을 조성키로 하고 발전종합계획에 반영했으나, 정부의 과도한 지방비 부담으로 사업에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를 현실적으로 조정하고 사업을 본격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게 첫 번째 목적이다.
다음은 국립자연사박물관 유치 문제다. 자연사박물관은 지질과 동물, 식물을 포함해 생명의 탄생과 인류의 진화 등 다양한 지식과 역사를 다루는 곳으로, 1995년부터 건립 필요성이 주장돼 왔으나 지지부진하다가 최근 건립지가 세종시로 잠정 결정됐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우리시는 지난 1999년 화성시 송산면 고정리 일원에서 1억1천만년전 공룡알 수십 개가 발견돼 다음해 이 일대 1천500여만㎡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이다. 또 2008년에는 전곡항에서 한반도 최초의 뿔 공룡 화석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가 발견됐고, 경기개발연구원의 용역에서도 최적지로 평가됐다.
그러나 정치 논리에 밀려 자연사 박물관 건립지가 세종시로 내정됐다는 설이 돌고 있어 이번 행군을 통해 화성시민은 물론 전 국민에게 이 같은 당위성을 알리고 바로 잡으려 한다.
세 번째는 화성호 담수화 중지다. 정부는 지난 1996년부터 2000년까지 4천500억원을 쏟아부어 시화호 담수화를 추진했으나 실패했다. 조(兆) 단위 자금이 투입되는 새만금 담수화도 유보된 상황이다. 정책 실패가 뻔한 상황에서 화성호의 수질을 보전하기 위해 해수를 유통하는 방법을 관철시킬 생각이다.
A. 고생을 하자고 결심을 했기 때문에 모든 걸 간소화시키고 숙소 같은 것을 현장화시켰다. 스태프들과 함께 마을회관을 이용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시설도 열악하고, 여유롭지 못하다.
이번 행군을 위해 5개월간 준비를 했다. 아침마다 조금씩 트레킹 코스를 걷고, 보름 전부터는 집에서부터 걸어서 출근했다. 그렇게 했는데도 발뒤꿈치가 사흘 전부터 탈이 나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진통제와 항생제를 맞았다. 현재로서는 부상 없이 무사히 완주하는 것만 생각하고 있다. 오히려 함께 참여해 주는 분들이 더 걱정이다.
Q. 행정공백을 우려하는 분들이 많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고 있나.
행정 공백 문제는 걱정 안하셔도 된다. 새벽 4시 정도에 기상해서 5시에 출발하면 오전 11시30분 정도에 30㎞를 걸을 수 있다. 이후부터는 지자체장, 국회의원, 관계자들과의 만남도 예정돼 있고, 업무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일정이 상당히 빡빡한 편이다. 일부 시정 공백을 우려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차량에 화상회의 및 전자결재 시스템이 구축돼 있어 오후 간부들과 화상회의를 하고 전자결제를 하기 때문에 시정 공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A. 한반도 최초의 뿔공룡 화석인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는 우리 시민들조차 잘 모르는 문화유산이다. 우선 이를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자연사박물관은 6천억원 이상이 투입되는 대형 사업이다. 이런 사업을 아무런 사회적 논의 없이 결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현재 정부가 세종시와 MOU 정도가 체결돼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접근성이나 콘텐츠 등을 고려될 경우 자연사박물관 입지는 화성시밖에 답이 없어 지자체장과 국회의원 등을 만나 당위성을 설명하고 지지를 이끌어 내고 있다.
매향리 사격장 공원화도 문제도 설명하면서 동의를 구하고 있다. 미군기지 이전으로 인한 지원 대상지인 용산과 의정부, 동두천 등은 도심지역에 있어 그동안 경제적으로 이득을 봐왔다. 하지만 매향리사격장은 아주 외진 곳에 있어 지난 55년간 피해만 받았다. 그래서 정부의 용산수준 지원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부당성에 대해 알리고 협조를 요청하면 대부분 서명을 해주신다. 지방분권에 대한 이야기도 오고 간다. 지자체와 상의없이 결정되는 정책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 얘기하고, 지방분권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가고 있다.
Q. 화성시와 수원시, 오산시 3개 기초단체장과 만든 산수화상생협력위원회에 대해 말해 달라.
A. 원래는 3개시 행정구역 통합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만들어진 위원회다. 안민석 국회의원이 제안해 통합의 필요성에 대해 검토해 보고, 시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자는 뜻에서 출범했다. 그러다 통합이 무산되면서 논의 주제를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사실 전 통합에 대해 찬성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지방분권을 전제로 했던 안이 변질됐고, 이후 지방분권이 누락된 채 진행되면서 논란이 생겼다. 수원시와의 갈등도 서로간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 같다. 수원시가 직원들에게 통합 여론 조성을 위해 담당지역을 지정한 것을 알고 만류도 해봤지만, 결과적으로 이 같은 상황이 계속돼서 강력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론 통합이 무산됐지만 용역비를 환수할 수도 없어 상생협력으로 방향을 바꿔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Q. 민선5기 출범 직후 화성종합경기타운 건립 사업으로 재정적 어려움이 많았었다. 현재 시의 재정 상황은 어떤가.
A. 시의 재정난은 거의 극복이 된 상태다. 나머지는 공공기관(도시공사)의 문제다. 전 시장이 전곡항산업단지를 시작하셨는데 도가 35%를 부담하고, 시가 65%를 부담하는 5천500억짜리 프로젝트다. 이게 지금 분양이 5%도 안 된 상태다. 또 한라비발디하고 1천700억짜리 사업이 진행됐는데 여기도 분양이 30%도 안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걸 모두 시가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기업들도 투자를 꺼려하고 시민들도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 시와 시민들의 역량이라면 충분히 조기 극복할 수 있고, 대비책도 세워 놓고 있다.
A. 이게 마지막이 아니다. 만약 관철이 안 된다면 정부종합청사 앞에 텐트를 치고 시위를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물론 실행에 옮기게 된다면 퇴근 후에 할 생각이다. 화성시의 어려움을 함께 알리고 싶어하는 시민들의 참여 문의도 빗발치고 있다. 안전문제도 있고 해서 천안에서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또한 매향리생태공원에서의 평화음악제와 공룡화석지 퍼포먼스, 용상공원과 세종시를 찾아 정부 정책의 부당성을 알릴 계획이다. 3가지 정책에 대한 화성시의 입장을 지지하는 서명운동이 화성시 자원봉사센터를 중심으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하에 전국 대도시에서 진행되고 있어 모두 취합해 정부와 국회 등에 제출할 예정이다.
Q. 시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화성은 1억2천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다. 천년 전 실크로드의 종착점이 전곡항이었고, 일제시대 제암리 만세운동의 현장이기도 하다. 또 현대, 삼성, 기아를 비롯한 1만5천개의 기업체가 소재한 국내 성장률 1위의 도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도시가 생기면서 권역별로 개발의 차이가 심해지면서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제가 먼저 나서서 희생하고 노력하면서 화성의 비전을 만들고자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화성을 보다 발전시키기 위해 한마음으로 노력했으면 좋겠다.
대담=황선학 지역사회부장
정리=이호진기자 hj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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