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좋은 아버지 되기

얼마 전 포항에 살고 있는 형님을 보기 위해 KTX를 탄 적이 있었는데 우연히 프랑스인으로 보이는 가족 3명과 함께 앉게 되었다. 아버지인 듯한 남자와 중학 3학년쯤 돼 보이는 딸, 그리고 중학 1년생 정도의 아들이 앉아서 각자 열심히 책을 읽고 있었다. 열차가 동대구역을 통과할 때 쯤 아버지가 두 아이와 소곤거리듯 얘기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난 후 이삼 십 분 정도 지나서 돌아왔다. 아마도 식당 칸에 다녀온 듯하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셋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나에게 들릴 듯 말 듯 소곤거리며 말을 한다.

그런데 그 태도가 참 인상적이었다. 자신들의 대화를 내가 엿듣기라도 할까봐 소곤거리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방해가 되지 않는지 배려하는 모습임을 알 수 있었다. 아이들과 대화하는 아버지의 표정 하나하나가 너무나 정성스럽고 다정하여 마치 연극을 보고 있는 듯했다.

대화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그 아버지의 표정에는 가장 이상적인 아버지의 모습이 듬뿍 담겨 있었다. 두 아이의 아버지인 필자는 두 아이의 행복해하는 밝은 표정을 보면서 한 가정의 행복은 아버지의 역할에 달려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좋은 아버지 모임이란 게 있다. 언뜻 다행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한편 서글픈 일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 제대로 구실을 못하는 아버지가 얼마나 많은지 반증하는 것 같아서이다.

가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은 큰 울타리이다. 울타리가 튼튼해야 모든 것이 안정되고 그 속에서 애정이 샘솟고 건강한 몸과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 이것은 아버지라는 울타리가 튼튼하고 견고할 때라야 가능하다.

요즘 여성의 목소리가 사회 전반에서 많이 커졌다. 가정에서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인지 상대적으로 아버지의 위상은 위축되고 아이들은 아버지를 가벼이 여기기까지 한다. 아버지의 모습이 위축되고 왜곡되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물론, 필자가 만났던 프랑스인 아버지보다 더 멋진 아버지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저녁마다 술이나 먹고 늦게 들어와서 어머니와 언성을 높여보라. 집안이 어떻게 되겠는가. 자녀교육은 형편없어 질 것이다. 이런 가정에서는 정상적인 교육을 기대할 수가 없을 뿐 아니라 아이가 성장한 후에도 인격적인 결함을 가질 소지가 많다.

사랑이 가득 넘치는 가정을 꾸미는 것은 아버지의 큰 의무이자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며 이해하고 포용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서로 재미있게 대화도 나누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아버지와 자녀가 대화하는 모습은 보기 좋다. 자녀와 믿음을 주고받는 아버지의 모습은 더욱 멋있어 보인다. 열심히 땀 흘리며 살아가는 아버지의 모습은 자녀에게 삶의 철학을 자연스레 보여주는 최고의 교육이다.

길을 가다보면 가끔 어린아이를 데리고 가는 부모가 교통질서나 공중도덕을 안 지키는 경우를 본다. 안 지키는 수준을 넘어서 오히려 자녀들에게 교통위반을 하여 길을 건너라고 재촉하기도 한다. 그런 부모로부터 자녀들이 무엇을 배울 수 있겠는가.

아이가 성장해서 공공질서도 잘 지키고 어른을 공경할 줄 아는 분별력 있는 훌륭한 사회인이 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보다 앞서가라고 하기보다 참고 인내하며 기본에 충실한 모습을 몸소 보여주는 아버지가 필요한 것이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디지털 세상에서 ‘늦은 밤 눈보라를 헤치며 붉은 산수유를 따오신 아버지’ 같은 아날로그 정서가 그리워지는 이유이다.

남길우 경기도청 언론담당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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