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인터뷰]박찬수 목아박물관 관장

한국 전통문화 계승에 한평생…'제2 독립운동' 자부

“공기밥 받자마자 반을 뚝 걷어서 국그릇에 말아 숨겨. 그리고선 반찬을 공기 빈 곳에 가득 채워놓고 먹지. 남들 반찬 없을 때, 나는 국에 말아놓은 밥을 먹는거야.”

박찬수 목아불교박물관 관장이자 중요무형문화재 제 108호 목조각장이 알려준 ‘남보다 빨리 그리고 많이 먹는 방법’이다.

민족박물관 건립의 중요성, 한글의 가치, 종교의 화합 등 인터뷰 내내 도사같은 아우라를 풍기며 깊은 내공의 이야기를 쏟아내던 박 관장의 마지막 가르침(?)이었다.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나 욕심과는 거리있는 삶을 살았을 것 같은 그도 지금에 이르기까지 홀로 긴 수련의 시간을 가졌음이리라.

“이제 식탐 내려놨어. 60년이나 걸린 셈이지. 무엇이든 해야 한다면 모래밭에 혓바닥을 박고 죽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매달려야 해. 그 정신 아니면 절대 못해.”

예순이 넘어서야 식탐을 내려놓았다며 미소를 띄우는 박 관장. 그가 또 죽기 살기로 매달리는 일이 있다는 소문에 그 궁금증을 해결하려 지난 4일 여주에 자리잡은 목아불교박물관을 찾았다.

- 20여년 전 박물관을 개관할 때 보다 작업량이 많아졌다 들었다

여전히 새벽 4~5시면 일어나 오전 내내 조각일을 하고 오후에는 이런 저런 행사에 박물관 업무 처리를 한다. 지금 이곳에는 5만여점이 있다. 오늘도 미국 LA의 한 법당에 세울 미륵보살 조각 제품을 찾으러 온 손님이 있는데, 외부로 나가는 주문 작품까지치면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내 작업하면서 전수조교와 이수생을 가르치는 동안 눈깜짝할새 하루가 다 간다. 내 고향 산청에도 전수관이 있는데 한달에 한 두번 가서 계승작업을 벌이고 있다.

-보여만 주는 박물관이 아닌 체험하는 박물관을 지향하려면 일의 양도 그렇고 금전적으로도 어려운 일이 많을거다. 감당이 되나

1995년부터 매년 어린이 부처 그리기 대회를 열고 있다. 불교 미술이 종교적인 행사여서 국가나 지자체 지원조차 받을 수 없다. 하지만 불교 미술이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이해하는 기틀이라는 생각에 악착같이 하고 있다. 전국에서 2천여명의 어린이가 모여 그림을 그리는데 불교미술에 대한 어렵고 무섭다는 선입견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한다고 본다.

박물관 야외 공간을 활용해 다문화가정을 위한 전통혼례를 치르기도 하고, 박물관 학교를 운영하며 일반인에게도 목조각을 가르치고 있다.

하루가 8만6천400초다. 나는 시간이나 분이 아닌, 초단위로 살고 있다. 작품 원하는 이들이 찾아오니 마다할 수 없고, 이게 내 팔자다.(웃음)

- 한글날을 기념해 ‘한글새김전’도 주최하고 있던데,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올해로 세종대왕 탄신 651돌이다. 한글에 대해 모르는 게 있으면 다 물어봐라.(웃음) 내가 사는 여주에 세종큰임금릉이 있으니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 같다. 한글새김전은 올해로 13회째를 맞았다. 한글로 조각은 새김이라고 한다. 한글새김전은 전국에서 공모로 선정된 미술 분야 작가들이 한글의 가치를 담은 작품을 출품해 전시함으로써 한글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자는 것이 기획의도다. 한글새김전 자체가 한글 바로 쓰기 운동의 일환이다.

-세종대왕으로만 불러왔다. 말씀하신 세종큰임금이라는 호칭, 낯설다

우리가 너무 쉽게 세종대왕이라고 하는데 한글로 ‘세종큰임금’이라고 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의식이 없어서 진짜 좋은 한글을 쓰지 않고 말도 안되는 중국역사에 지배받으며 한자를 쓰고 있다. 만약 한자를 쓴다면 세종황제라고 해야지, 대왕은 말도 안된다. 중국 역사와 한자로 따져보면 중국에서 반란으로 나라를 세운 못된 장군을 대왕이라고 칭한다. 이 때문에 외국에서는 세종대왕이라고 해서 중국의 식민에 사는 그 당시 촌장으로밖에 안본다. 바꿔야 한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공포해야 한다.

-한글에 대한 관장님의 자긍심과 사랑이 강하게 전달돼 온다. 박물관 알림을 다 한글로 한 것도 그 때문인가

당연하다. 화장실은 ‘비우소’ 라고 했다. ‘큰 말씀의 집’, ‘향기로움’ 등 각각의 장소에 어울리는 이름을 달았다. 지금의 K팝과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세계적으로 힘을 얻는 것은 바로 한글이 존재해서다. 우리나라의 무기는 한글이다. 한글을 바로 쓰는 것이 주권국가로 향하는 길이다. 세종큰임금이 계신 이곳 여주에서 한글새김전을 여는 것도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고 싶어서다. 외국에서 막대기로 선 하나를 그어도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그런 분위기가 흘러야 한다. 세계화가 이뤄지는 지금 더욱 민족관을 세우고 우리의 무기를 갈고 닦아야 한다.

-민족박물관 건립에 발벗고 나섰다 들었다. 같은 맥락으로 봐도 되나

우리 민족, 그 속의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스스로 깨닫고 존중해야 한다. 사람이 바로 서고 민족관을 세워야 국가가 힘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만 세계에서 유일하게 민족박물관이 없다. 민속박물관만 있다. 그래도 세계에서 잘 산다는 우리가 자살 1위, 이러면 되겠는가. 170억 정자의 경쟁을 뚫고 태어난 한 인간, 바로 내가 얼마나 대단한가. 적 수십, 수백만명을 물리친 장군들보다 더 위대하다. 이런 나를 잘 알기 위해서는 나의 성씨가 어떻게 시작되고 역사를 이뤘는지, 오늘날 세계적인 문화강국을 일구는 인재들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알려주는 민족박물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어디까지 추진되고 있나

이제까지 20여년간 발품팔아 수장고에 관련 자료를 모았다. 이제 단돈 천원이든 만원이든 기부금을 모아 꼭 강원도 영월에 민족박물관을 세울 것이다. 지난해 8월 재단법인이 되면서 기틀을 마련했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인데…. 지원 없어 사립박물관이 모두 문닫고 있는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전시물 때문에 켜는 전기료나 화장실 물세 등 공공성으로 쓰이는 것의 절반이라도 지원해줘야 옳지 않겠는가.

-왜, 강원도 영월인가. 여주에 터를 잡고 살아온 지도 오래됐지 않나

강원도에 민족박물관 짓는다니까 주변 사람들이 다들 내가 강원도로 가버릴까봐 걱정이더라. 처갓집이어서 여주에 왔지만 이후 여기가 내 고향이다. 실제 내 고향인 산청에 내 전수관이 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여주에서 보낸다. 폭넓은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분관 형태로 짓는다고 보면 된다. 한 마디로 지사다.

지금 이 곳은 상하수도 보호지역이서 박물관을 확대하는데 어렵고 지자체가 도와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더 급한 일도 있으니 힘들겠지 싶지만 나도 내 맘대로 이곳에 짓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현실이지 않은가.

강원도 영월은 박물관 특구 지역이어서 좀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제부터 건물을 지어야하는데 서서히 돈이 모이면 10년 안에는 세워지지 않겠는가. 좀 더 많은 힘이 모이면 3년이든 5년이든 더 빨리 만들어질것이다. 영월과 함께 LA에도 한민족박물관을 세우면서 점차 확대할 것이다.

- 목조각, 한글, 불교미술 등 한국의 전통문화를 살리는 데 인생을 모두 바치는 것 같다. 자신의 활동을 ‘제2의 독립운동’으로 설명하던데 어떤 의미인가.

나는 유명해진 사람들의 욕심이 나라를 망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정치는 정치인이, 언론은 언론인들이 망가뜨리고 있단 말이다. 한 분야의 유명한 전문가들이 초심을 잃어버려 생기는 일이다.

나는 이제까지 열심히 작업하고 사비를 털어 공간을 마련하고 행사를 주최하고 달려왔다. 모두 초심을 간직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내 활동이 제2의 독립운동이라고 본다. 앞서 주권이 바로 서려면 한글을 바로 써야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일맥상통한다.

외국에서 노래가 뜨고 어떤 행위가 뜬 후 주목받는 것이 그 나라의 유물이다. 노래나 행위는 유행하는 시기가 지나면 사라지지만 의식을 담고 있는 유물은 남고 그것을 만든 사람을 알아주는 시대가 곧 온다고 본다. 세계에서 한국문화를 알리는 것이 곧 세계화속에 경계가 사라지는 상황에서도 독립적으로 설 수 있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대담=박정임 문화부장 bakha@kyeonggi.com  

정리=류설아 기자 rsa119@kyeonggi.com  

사진=전형민 부장 hmjeo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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