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창제 운영의 필요성이 일부에서 주창될 만큼 세간에 횡행하는 성범죄가 사람들의 인내를 시험하고 있다. 어쩌면 성범죄에 대한 사회전반의 이런 분노와 시선은 피해자에 대한 공동체적 관심의 고양과 성범죄에 대한 사회안전망의 조속한 착근을 촉구하고 있다는 관점에서는 나름 고무적인 변화일 상 싶다.
주리를 틀어도 속이 풀리질 않을 못된 성범죄는 과거에도 오늘 못지않게 빈발했었다. 친고죄라는 성범죄의 특성을 빌미로, 혹은 피해자의 사회적 수치감을 이용해 손쉽게 합의가 종용되고 묻혀져 왔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개인적 사정에 의해 신고조차 되지 못한 암수(暗雖)범죄는 보다 더 많을 터임에도 아직은 세상이 미개하고 모두들 먹고 살기 바빠 방관해 온 시절이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교정시설에서는 이러한 강간사범들을 속칭 ‘물총강도’라 불렀었으니, 남의 정조를 강탈했음으로 강도임에는 틀림 없었겠다.
성매매 방지법 후유증 극복 위해
70년대 말 일선 교도소에는 집단윤간 등 악질적인 성범죄자들이 며칠 걸러 입소하곤 했었다. 대부분이 십대후반 또는 20대 초반인 녀석들을 혼내고 또 진심어린 반성을 촉구시켜 보고자 이들에 대해 특별교육을 창안(?)해 실시한 바 있었으니, 하의를 벗게 하고 일렬로 세운 뒤 벌겋게 달군 연탄집게를 들고서는 겁을 주곤 했었다. 강간범들에게는 성기에 낙인을 하는 것이 교정시설의 규칙임을 엄중히 일러주는 것이었다. 물리적 거세의 위협에 견딜 장사가 있겠는가. 녀석들은 통곡하며 용서를 빌었고 비지땀을 흘리며 작성한 두툼한 반성문을 제출한 뒤 특별훈방 처분에 고개 숙여 감사해 하던 그 모습들은 지금도 기억하면 쓴 웃음이 절로 나온다.
2002년 국방대학교 파견시 동기생들과 독일 함부르크를 방문하는 기회를 가졌었다. 당시 함부르크 해안의 전경보다도 우리를 놀라게 했던 것은 광대하고 뻔뻔한 공창의 규모와 역할이었다. 함부르크 세수의 50%가 여기에서 얻어지고 성범죄 예방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가이드의 설명에 일단 고개가 끄덕여도 졌으나, 공창 설립자의 거대한 동상이며 도처에 즐비한 성인용품가게, 그리고 그 문화를 허용하고 즐기는 함부르크의 정서가 우리에게는 다만 커다란 문화충격으로 다가왔었다.
이후 국내에서 성매매 방지법이 시행됐을 때 교정관계자들은 그 취지를 충분히 납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찝찝한 예견을 같이 했었었다.
집장촌의 풍선효과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가격 상승 등 성구매자의 접근배제가 자칫 만만한 아이들에 대한 성범죄의 증가요인으로 작용할 것이었다. 또한 유흥종사자들에 대한 보건소 등의 성병관리체계가 무너짐에 따라 성병의 확산은 불문가지일 터, 교정시설 입소 재소자의 성병검진 및 관리 대책도 필시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었다.
근원적 접근과 논의 필요
성매매 방지법 시행 후 모 여성장관이 라디오 방송에 출현하여 피임기구들이 많으니 집장촌을 찾지 말고 연애를 하라고 젊은이를 부추기는 민망한 촌극까지 벌렸으나 홀로되고 가난한 노·중년층에게는 아마도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나 들려졌을 것이리라. 그런가 하면 교정관계 모임에서 토의 중 모 여성 운동가는 성매매방지법을 노인보호차원에서 비난하고 있었으니, “파고다 공원의 홀로된 가난한 노인 수백 명을 60대 할머니 3명이 담당하고 있다. 이 불결한 매매춘으로 노인 성병이 급증하고 있다”고 침을 튀겼었다.
어쨌건 기우에 그쳤으면 좋았을 우리들의 염려는 현실이 되어 고령자들에 의한 아동성폭행 시범은 점증되어왔고 근절되다시피 했던 재소자들의 악성성병보균율은 날로 급증해 나가고 있다. 또한 풍선의 바람을 한 줌도 빼지 못한 채 도처에 유사성매매 업체의 확산만을 불러온 성매매방지법의 풍선효과와 후유증에 말 없는 다수는 분노하고 있다. 그렇다고 ‘홍등가의 여성이 양가집 규수를 보호한다’는 고답적인 논거를 들어 공창을 허용하자고 주장할 용기는 쉽지 않다. 비록 그것들이 물총강도들, 그 중에서도 우발적 성충동에 따른 범죄 발생을 다소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을지라도.
최선의 사회정책이 최선의 형사정책임을 되새길 때 보다 근원적인 접근과 논의가 물총강도들의 퇴치를 위해 필요한 시점이다.
이태희前 법무부 교정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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