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안에서 혹은 전철에서도, 카페에서도, 심지어 길을 걷거나 서 있는 사람들까지 스마트폰 또는 IT 가상속의 나홀로 세계에 길들여져 가고 있는 것이다. 혼자만의 세계에 빠진 사람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을 느낄 필요도 없으며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신과 같은 상처를 받거나 간섭을 받을 필요도 없다. 오직 자신만의 가상세계 속에서 즐기면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의 외형과 성격이 다르지만 스마트폰을 들고 나홀로 세계에 빠진 그들의 모습은 기계처럼 한 가지 자세뿐이다.
데보라 잭은 ‘혼자가 편한 사람들의 관계심리학’이란 저서를 통해서 인간은 자신의 천부적인 기질을 부정하지 말고 본래 가진 장점을 발견해서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인간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인은 스마트폰이나 IT 기기에 길들여져 인간의 천부적인 야생 본연의 기질을 거부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부정하며 혼자가 편한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세상을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인간’이란 말의 한자를 풀이하면 ‘사람사이’란 뜻이다. 우리는 어떠한 형태이든지 인간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런 인간관계는 우리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고 우리 인생에서 삶의 척도가 될 만큼 중요한 것이다.
즉,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스마트폰이나 IT 기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속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부모 형제를 포함한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우리의 ‘자아’는 성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의 이리아동들이 처음 발견됐을 때 그들은 인간이었기 보다는 한낱 동물에 불과했다. 왜 였을까? 출생 후 단 한 번도 인간관계를 맺지 못한 채 깊은 산중에서 이리떼들과 함께 자랐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른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는 우리로 하여금 자아의식을 가진 인간으로 성장하게 하는 동시에 개인의 정체성과 건전한 인격발달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인의 모습은 어떠한가? 인간 본연의 모습을 거부하고 인간관계를 회피함으로써 인도의 이리아동들과 같이, 나홀로 세계에 빠진 현대인은 동물도 아닌 기계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마이클 그린은 ‘도피하는 현대인’에서 현대인에게는 두 개의 병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자아상실이요, 또 다른 하나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일이라고 했다. 스마트폰이나 IT 기기같은 문명기기의 발달은 인간의 편리를 위해 발명됐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인간관계의 복잡성을 풀어나가 소통을 이루기 보다는 스마트폰과 인터넷과 같은 문명기기 속의 가상세계로 도피하고 있다. 자아는 서서히 현실과 가상세계에서 혼란을 겪고 기계와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사라져 간다.
우리의 자아는 문명기기 속에 갇히게 되는데 우리는 그것 조차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서서히 스마트폰과 IT 가상세계에 종속되어 가고 있는 느낌이다.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와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작은 IT 기기안에서의 자아상실은 사이코패스와 같은 인간을 양성하게 되고 많은 사회적인 불안요소를 낳게 된다.
인간관계의 본질은 나 자신, 즉 자아를 찾는데서 시작된다. ‘나’라는 존재 없이는 다른 사람도 존재할 수 없으며 더구나 ‘나’의 존재는 가족 구성원, 사회, 국가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 ‘나’라는 존재는 다른 사람과의 원만한 관계에 의해서 존재할 수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사람에게 가장 행복을 줄 수 있는 상대는 IT 기기가 아닌 사람이다. 혼자 IT 문명속의 나홀로 세계에서 빠져나와 이제 현실적인 삶의 공간속에서 대화하고 소통하며 자아를 찾고 삶의 모든 면을 서로 궁리하며 공존의 틀을 세워가야 할 때이다. 그것이 바로 사람의 근본이 아니겠는가?
공경호 오산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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