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코닥필름의 추억

필름카메라를 쓰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미술사학과에 다니던 나는 없는 살림에 필름 값을 대느라 죽을 맛이었다. 수업마다 몇 차례씩 환등기를 이용한 슬라이드 발표를 해야 했으니 말이다.

발표 주제를 정하는 것도 어려운데 주제에 따라 읽어야 할 책과 논문은 산더미 같았고 발표 시간에 맞추어 원고 분량을 적절하게 작성함은 물론 사진자료도 만들어야 했다. 며칠을 고심하여 발표에 이용할 사진을 선정하는 것도 여간 일이 아니었고 또 촬영했다고 해서 다 잘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별별 변수가 있었다. 발표 전날 어렵게 촬영해 현상소가 몰려 있는 충무로로 달려갔더니 마침 충무로 일대에 물이 나오지 않아 현상을 할 수 없을 때도 있었고, 필름을 감지 않은 채 사진을 찍었다가 낭패한 일도 여러 번이었다. 이런 경우는 특수하다 해도 필름 값이 부담되는 것은 언제나 마찬가지였다.

24장짜리가 일반적 필름이었고 36장짜리가 조금 더 대용량이었는데 필름을 감을 때 잘 만 감으면 두 서너 장 더 찍을 수 있었다. 24장짜리에서 27장, 36장짜리에서 38장까지 찍으며 느낀 희열은 아직도 생생하다. 한 장 한 장이 정확히 찍혀져야 발표를 할 수 있었기에 한 장 찍을 적에 들인 집중도와 공력은 다른 경우와 비교하기조차 힘들었다.

그 당시 가장 인기 좋은 필름은 미국 코닥사의 코닥필름이었다. 수동카메라는 디지털 카메라와는 달리 찍혀진 상태를 확인할 수 없기에 현상소 대기실에 초조하게 쪼그려 앉아 있다가 비닐 필름 주머니에 든 필름을 형광등이 켜진 라이트박스에 비추어 보기까지의 기대감과 초조함은 쉽게 표현하기 어렵다. 그런데 코닥필름이면 조금은 느긋해진 마음으로 대기할 수 있었다.

왜냐구? 코닥이니까! 그렇다. 코닥필름은 신뢰의 상징이었다. 후지필름, 현대필름, 코니카필름 등은 코닥필름에 비해 저렴했지만 잘 이용하지 않았다. 돈은 더 들어도 좋은 사진을 찍어 발표를 잘하고 싶었기 때문에 가격이 싸다 해도 다른 필름에 눈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사진관을 뻔질나게 드나들다 보니 저절로 안면을 익히게 된 사진관 아저씨가 “학생, 이 필름을 써보게”하시며 코닥 아닌 다른 필름을 권하셨다. “코닥이 좋지 않습니까”하니 “코닥이 좋은 것은 다 알지만 자네 정도의 실력이면 차이가 없으니 공연히 비싼 돈 들이지 말게”하셨다. 어리둥절한 내게 “코닥팔면 내가 더 이익이야, 하지만 안타까워 그러는 거야”하고 일갈하시니 어쩔 수 없이 다른 필름을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 이후 필름타령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사진은 필름이 문제가 아니고 찍는 이의 실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런 깨달음 이전에는 코닥필름을 써서 사진이 잘 나오면 코닥이니까 당연히 잘 나온 것이고, 사진의 질이 떨어지면 코닥인데도 잘 나오지 않았으니 내 잘못이었다. 그런데 다른 필름을 사용해서 잘 나오면 내 덕이었고 잘 안 나오면 무조건 필름 탓이었다.

그럴 때면 “싼 게 싼 값해” 또는 “코닥으로 찍을 걸”하는 말이 절로 나오곤 했던 것이다. 당시 코닥필름은 코닥사에서 나온 필름이기 이전에 오차 없는 사진을 나오게 하는 보증수표와 같은 이름이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그 시절 코닥필름과 같은 신뢰성을 담보하는 정치인이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이렇게 길게 써본다. 미국 코닥 본사의 부도, 회생 노력 소식 등을 들으니 드는 생각이다.

김 상 엽 건국대 연구교수 문화재청 문화재 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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