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영화인 복지제도 이대로 놔둘 수 없다

3월 영화인 복지재단 이사회에서 난리가 났다. 올해 영진위에서 복지사업비를 삭감한다는 정보가 있어서였다. 종전에 2억 5천만원 받던 것을 2억원으로 조종했다는 소문이 들렸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이사들은 거의 확실하다는 소문을 듣고 올해 예산을 어떻게 집행해야할지 망연자실해 있었다. 대체 5천만원이 뭐길래 그리 민감한가. 2억5천만원을 갖고 원로들에게 1년에 고작 30만원씩 드리는 돈으로 쓰고 있다.

한국에는 정부가 운영하는 영화인 복지제도가 없다. 영화인 복지재단이란 단체는 과거 정부에서 보조를 해주는 영화인들의 단체로 처음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렀고 정부인 영진위 입장에서는 단지 민간단체를 보조하는 차원에서 운영하는 것이어서 책임감도 없고 의무사항도 없다. 그러니 깍는다해도 법적으로 할 말이 없고 그저 잘 봐주십쇼라고 허리를 굽힐 수밖에.

하지만 정부는 그렇게 떳떳한가? 국가는 변변한 영화인 복지 시스템 하나 운영하지 않고 있다. 국가가 못하는 일을 하는 민간단체라면 무엇보다도 일순위로 예산책정을 해야 할 것이며 특히 그 사업이 복지사업이라는데 무슨 논리가 필요하랴. 문제는 운영의 공정성과 형평성의 원칙만 잘 지킨다면 국민의 세금을 쏟아붇는 일에 인색할 필요가 없다.

대한민국에서 예술가만큼 불행한 사람들이 없다. 일생 좋은 작품으로 대중들을 감동시켰던 예술가들은 병들거나 죽을 때 아무런 혜택이 없다. 예술가들은 두 종류다. 평소 돈을 많이 버는 대중 예술가가 있는 반면 순수한 작업으로 가난한 예술가들도 있다. 또 한때 돈을 벌었다손 치더라도 일순간에 날려 파산한 예술가들도 있다.

경위야 어찌 됐든 작품은 남는다. 작품은 남아서 대중들에게 불멸의 기억으로 자리하며 문화재가 된다. 그래서 예술가들의 삶은 유한하지만 작품은 무한하다. 그래서 예술이 위대하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국가는 말로만 그렇게 할뿐 실질적으로 아무런 혜택을 주고 있지 않으니 이처럼 허망한 국가행정이 어디 있단 말인가. 어디 문화선진국들을 봐라. 이런 식으로 예술가들을 홀대하는 나라가 있는지.

박철수감독의 딸 박가영양은 아버지의 교통사고 보험금 때문에 민사소송을 내면서 영화감독의 정년이 65세라는 걸 알고 경악했다고 한다. 예술가들은 정년이 없는 줄 알았는데 정년이 있었다니. 사망후 보험금을 산정받는 데서도 불이익을 받아야만 하는 이런 현실적 부조리함을 이제야 비로소 영화인과 국가에게 호소하고 있다.

과거 역사를 보니 영화인들의 책임이 없는 것도 아니다. 수십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충무로 영화가 한때 잘나갈 때 보험에 대한 개념이 하나도 없었다. 보험이란 평소에 조금씩 납부해야 나중에 혜택이 돌아간다. 지금부터라도 보험은 들어야 한다. 아직도 한국의 영화제작사들은 보험을 들어주지 않는다. 스텝들의 계약조건에 보험이 결여되어 있다. 장애보험, 생명보험 뿐만 아니라 연금 보험도 들어줘야 한다.

그래서 제작자, 배우, 작가, 감독, 스텝들이 노후에 국가로부터 연금을 받을 것 아닌가. 임금이 낮아 가난한 삶을 산다해도 노후를 걱정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 그게 국가가 할 일이다. 그런 점에서 영진위는 문화관광부와 이러한 복지제도의 개선책을 연구하고 시행해야 할 것이다.

 

정 재 형 동국대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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