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모임에서 다들 대학 입학년도를 대며 내 학번을 물어왔다. 나는 쌍칠 년도에 대학에 입학했다. 다시 말해 77학번. 그러나 평소엔 내가 대학을 다녔다는 사실을 잊고 산다. 우리 또래 가운데 대학을 다닌 이가 많지 않아서이다. 그러나 그 시절에도 국민학교(초등학교)는 거의 다녔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내 학번은 65학번이라 한다. 그러면 그렇게 나이가 많으냐며 놀라는 표정들이다.
그 당시 대학은 안 간 사람이 많지만 의무교육인 국민학교는 거개가 다 갔다. 게다가 최소한 국민학교는 나와야 된다고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학번을 묻는 의도를 알면서도 굳이 국민학교 입학 년도인 1965년도를 떠올리며 65학번이라고 말한다.
내 국민학교 동창들 가운데엔 나이가 나보다 한 살에서 두세 살까지 더 먹은 이들이 많다. 그래도 지금까지 벗으로 지내는데 어려움이 없다.
학번에 대한 사람들의 집착은 집요했다. 그 자리 사람들은 이름이 많이 알려진 만화가에게도 학번을 물었다. 그는 대학을 안 다녀서 학번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이 또 물었다. 그는 처음엔 웃는 낯으로 자신은 대학을 안 다녔다고 정중하게 말했지만, 다른 사람이 또 묻자 중학교까지밖에 안 다녀서 그때 기억이 가장 강하다며 중학교 다닐 때 날마다 걸었던 바닷길이며 들녘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그런 얘기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왜 학번에 집착을 할까? 그건 아마도 대학 다닌 것만이 자기 인생을 나타내주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그런 건 관심도 없다. 오로지 대학을 다녔는가 아닌가를 따진다. 학벌지상주의, 망국병이다. 사실 대학은 이미 ‘학문의 전당’이 아니다. 대학은 더 이상 조용히 들어앉아 연구나 하던 ‘상아탑’이 아니고, 오로지 ‘직업학교’일 뿐이다.
전태일은 자신에게 대학생 친구가 한 명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시절엔 그 정도로 대학생이 귀했다. 그런데 지금은 너나나나 다 대학에 간다. 그래서 당연히 대학 입학년도가 학번이다. 그러나 나는 오래된 사람이라 국민학교 입학년도가 더 좋다! 어쨌든 65학번!
지금은 고등학교 졸업생의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한다. 대학의 대중화가 실현되었다. 그런데 누구나 다 가는 대학, 오히려 안 가면 안 될까? 개나 소나 다 가니까 다녀 두어야 한다고? 그러면 스스로 개나 소가 되는 격이다. 내 생각엔 중고등학교 때 일찌감치 재능이 발견되거나, 하고 싶은 일을 발견했으면 굳이 대학을 안 가도 무방할 것 같다. 대학을 가는 목적이 직업을 얻기 위해서라면…. 그런데 대한민국 사회에선 학번 때문에 대학을 다녀야 할 성싶다.
나이 차를 잊고, 나이 많은 사람이 나이 어린 사람을 벗으로 사귀는 것을 망년지우(忘年之友), 혹은 망년우라 한다. 대표적인 망년우는 조선 시대 사람으로 스스로 간서치(看書痴ㆍ책만 보는 바보)라 칭하며 책과 벗을 두루 사귄 이덕무이다. 이덕무는 일곱 살 아래인 유득공과 허물없이 지냈으며, 열세 살이나 어린 이서구와도 거리낌 없이 어울리었다. 이덕무가 늘 애틋하게 여기며 가까이 지낸 망년우 가운데 한 사람인 박제가와는 아홉 살이나 나이 차가 졌다.
흔히 하는 말로 객지에서 열 살 정도 차이는 묻지도 말고 알려고도 하지 말고 그냥 벗으로 대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나이가 대학과 결부되고 보니, 학번을 물어봄으로써 넌지시 나이를 알아내려고 한다. 새로운 장유유서 정립 차원일까? 어쨌든 맘에 안 드는 세상!
박 상 률 작가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