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최단기간 우승보다 '노력에 배신없다'는 진리가 중요"
이러한 상식을 깨뜨리고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로 창단 2년만에 프로배구 2012-2013시즌 V리그 여자부에서 화성 IBK기업은행을 통합우승으로 이끈 ‘승부사’ 이정철(53) 감독. 지난 2일 훈련장인 수원 수일여중 체육관에서 IBK기업은행의 사령탑인 이정철 감독을 만났다. 군살없는 늘씬한 체격과 부리부리하면서도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적인 이 감독은 “프로스포츠 사상 최단기간 우승을 달성한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라며 “그저 선수들이 ‘진정한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몸소 느꼈다는 점이 수확”이라고 밝혔다.
“훈련 부분에서 만큼은 선수들에게 한번도 양보해 본 적이 없다”는 그의 거침없는 대답에서는 프로스포츠의 새 역사를 일궈낸 감독다운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Q.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최단기간인 2년만에 통합우승을 달성한 감회는.
A. 통합우승을 한 뒤 언론 보도를 통해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최단기간 우승을 달성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주변에서는 ‘큰일했다’고 칭찬을 많이 해주시지만, 사실 거기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이번 시즌 개막을 앞두고 가진 미디어데이에서 ‘4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목표로 하겠다’고 밝혔고, 실제로도 그 정도 목표만 달성해도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시즌 초반에는 다소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선수들의 집중력이 살아나면서 자연스럽게 ‘목표 이상을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후 한경기 한경기 최선을 다한 것이 목표 이상의 좋은 결실로 나타난 게 아닌가 싶다. 사실, 이번 시즌을 준비하면서 정말 열심히 훈련했다. 다른 팀이 5시간 훈련하면 우리팀은 6~7시간씩 훈련하기 위해 노력했다. 힘든 훈련을 잘 이겨내준 선수들이 대견하다.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는 결코 남보다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다는 것이 내 철학이다. 이번 시즌을 치르면서 선수들이 ‘노력하면 할 수 있다’라는 교훈을 체험한 것이 최단기간 통합우승 의미보다 더 소중하다.
Q. 신생팀의 창단 감독으로서 팀의 기틀을 다지고, 전력을 강화하느라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A. 힘들고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정말 즐거웠다. 숟가락, 젓가락 등의 살림살이를 하나하나 장만해 나가는 신혼 살림의 재미랄까. 아무튼 힘들었다기 보다는 너무도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전용 훈련장이 없어 수일여중 체육관을 훈련장으로 정한 뒤 선수들의 숙소 마련을 위해 인근 부동산으로 먼저 향했다.
우여곡절 끝에 체육관 인근에 있는 한일타운 아파트에 숙소를 꾸리고, 장안구민센터 헬스장에서 웨이트 훈련을 시작했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민원들이 발생했다. 말만한 여자 선수들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을 보고 무섭다고 우는 아이도 있었고, 음식물 쓰레기가 너무 많이 배출된다는 항의도 수차례 들어왔다. 또 선수들이 한꺼번에 웨이트 기구를 사용하는 탓에 헬스장 이용이 너무 불편하다는 민원도 들어왔다.
하지만 배구단의 사정을 이해하고 오히려 그러한 민원들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도록 자발적으로 나서 준 고마운 분들이 계셔서 그러한 어려움을 극복 할 수 있었다. 오전 시간대에 헬스장을 이용하는 60~70대 주민들이었는데 도움을 주는 분들이 생기니 정말 힘이 났다. 또 팀 전력면에서는 기존의 팀을 맡았으면 내 스타일대로 모든 것을 뜯어 고쳐야 하는데, 백지 상태에서 색깔을 입혀 팀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점이 좋았던 것 같다. 하얀 캔버스 위에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입장에서 내가 입히고 싶은 팀의 색깔을 입혀나갔다.
A. 1989년 성균관대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한 뒤 1992년 효성(해체)을 시작으로 호남정유(현 GS칼텍스), 현대건설, 흥국생명 등 다양한 팀을 두루 거쳤고, 청소년대표와 국가대표 여자팀에서도 지도자를 경험했다. ‘꼴찌팀’도 맡아봤고, 코치로 호남정유의 9년 연속 우승도 경험했으니 그야말로 산전수전을 다 겪어 본 셈이다. 여자 선수들은 남자 선수들에 비해 섬세한 면에 신경써야 한다. 특히 남자 선수들이 대부분 대학을 거쳐 프로에 오는데 반해 여자 선수들은 고교 졸업후 곧바로 프로에 오는 만큼 상대적으로 나이도 어리다.
처음에는 여자팀을 맡는 것이 어려웠지만, 성격이 꼼꼼한 편이어서 여자 선수들과 궁합이 더 잘 맞는것 같기도 하다. 어린 선수들인 만큼 따뜻하게 챙겨주기 위해 노력하지만, 훈련에 있어서는 선수들과 타협해 본 적이 없다. 사실 24년간 지도자 생활을 하는 동안 훈련 만큼은 단 한번도 양보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지난 시즌 초반에는 우크라이나에서 온 용병 알레시아가 많이 힘들어했다. 자유스러운 분위기의 유럽에서 활동하다가 내 훈련 방침을 따르려니 아마도 적응이 쉽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어려움을 이겨낸 결과 정규시즌, 챔피언결정전 MVP에 선정되는 등 좋은 결실이 있지 않았는가. 앞으로도 훈련에 있어서만큼은 악역을 마다하지 않을 계획이다.
Q.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희노애락을 많이 경험했을 것이다. 지도자 생활중 가장 힘들었을 때를 꼽는다면.
A.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2007~2008년 당시가 가장 힘들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후 여자배구가 16년만에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하다보니 언론의 뭇매와 팬들의 비난이 동시에 쏟아졌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당시의 팀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김연경과 한송이, 정대영, 황연주 등 팀의 핵심멤버 4명이 부상으로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고, 고군분투하던 한유미마저 3번째 게임 이후로는 무릎부상 때문에 뛰지 못했다. 이유야 어찌됐든 결과가 좋지 않았으니 감독인 내게 큰 책임이 있지만, 마치 모든 것이 내 불찰인 것처럼 몰아가는 여론 때문에 정말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래서, ‘간판 선수의 대표팀 차출을 꺼리는 프로팀들의 이기주의’에 대해 지적하기도 했는데 오히려 비판 수위가 높아지는 등 역효과가 났다. 지난해 우리팀 박정아 선수의 런던올림픽 대표팀 탈락을 두고, 일부 팬들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악플로 공격하기도 했다. 내가 전력 약화를 우려해 박정아를 제외시켰다는 것인데 전혀 그런 사실이 없고, 오히려 대표팀 탈락에 대해 안스러워 박정아를 불러놓고 위로하며 ‘더 독기를 품어야 한다’고 조언을 했었다. 나의 대표 감독시절과 박정아의 대표팀 차출 불발에 대해 아직 오해하고 있는 팬들이 있다면 오해를 풀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Q. 이제 정상을 지켜야 하는 자리에 있다.
A. 창단 2년만에 통합우승을 하다보니 부담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선수들이 ‘디펜딩 챔피언’이라는 자만심을 갖지 않도록 주문하고 있다. 또 알레시아가 떠났기 때문에 새로운 용병도 물색해야 한다. 통합 우승의 기억은 과거의 기분 좋았던 추억으로 접어버리고,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출발할 것이다.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 줄 것을 약속드린다.
대담= 황선학 체육부장 2hwangpo@kyeonggi.com
정리= 박민수기자 kiryang@kyeonggi.com
사진=김시범기자 sbkim@kyeonggi.com
'코트의 승부사' 이정철 감독은 누구인가?
화성 IBK기업은행을 창단 2년 만에 여자프로배구 최정상에 올려놓은 ‘코트의 승부사’ 이정철(53) 감독은 현역시절 단 한번도 태극마크를 달아보지 못했을 만큼 평범했다. 부천 토박이로 초ㆍ중학교 시절 핸드볼, 축구, 육상, 탁구 등 여러 종목을 두루 경험할 정도로 운동신경이 뛰어났던 그는 인천체고에 진학해 늦게 배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인천체고에서 불과 1개월 남짓 배구를 배운 그는 청주 청석고에서 본격 선수생활을 시작, 1년 만에 주전으로 활약한 뒤 성균관대를 거쳐 금성사(현 LIG손보 전신)에서 센터로 뛰었지만 또래의 쟁쟁한 선수들에 가려 빛을 발하지 못했다.
1989년 모교 성균관대에서 코치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그는 1992년 효성 코치로 여자배구 지도자로 변신, 이후 호남정유(현 GS칼텍스)의 슈퍼리그 9연속 우승에 힘을 보탰고, 1999년 현대건설 코치 시절에도 ‘호화군단’ 호남정유를 꺾고 우승하는 데 일조했다. 이어 1998년 국가대표팀 코치로 첫 태극마크를 단 이 감독은 2001년 흥국생명 감독을 거쳐 2004년 여자청소년대표팀 감독, 2005년 국가대표팀 수석코치, 2007~2008년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다.
하지만 흥국생명 감독시절 구단의 드래프트 첫 참여를 만들어 놓고 오히려 이에 발목이 잡혀 감독직에서 물러났으며, 베이징 올림픽 지휘봉을 잡았을 당시에는 주전 4명이 부상 등의 이유로 대표팀 합류가 불발되면서 본선 진출 좌절의 아픔을 겪었다.
이후 코트를 떠나 한국배구연맹에서 경기위원으로 활동하던 ‘야인’ 이정철 감독은 2011년 8월 여자프로배구 ‘제6구단’으로 출범한 IBK기업은행의 초대 감독으로 선임돼 코트에 복귀, 특유의 소신과 오랜 지도자 경험을 바탕으로 팀을 꾸려 2년 만에 여자배구 최정상으로 올려 놓았다.
황선학기자 2hwangp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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