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즐거움’을 매개로한 소통…문화선진市 다져갈것"
여성시대를 이끄는 ‘철의 여인’을 만났다. 지난 1월 취임 후 단 한 번도 언론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던 신선희 제3대 성남문화재단 대표이사가 그 주인공이다. 그녀는 ‘최초’라는 수식어를 몰고 다니는 여장부로 알려진 것이 전부다.
그는 공연 제작계에서 여성을 보는 것이 사막에서 바늘찾기와 같았던 1970년대에 연극전공자 출신의 최초 무대예술가로 현장을 누볐다. ‘세계의 존경받는 무대예술가상’, ‘대한민국연극제 무대미술상’, ‘극평론가협회상’ 등 화려한 수상 이력은 일하는 즐거움에 덤이었단다.
또 국립극장 최초 여성 극장장으로, 당시 기업과 처음으로 손잡고 공연예술계 숙원이던 ‘공연예술박물관’을 건립하고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을 개최했다.
드디어 성남시에서 마주 앉은 신선희 대표는 익히 알려진 대로 여장부였다. “지킬 수 있는 약속을 하기 위해” 말을 아껴왔던 그가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으로 재단 운영 계획을 밝히는 모습이 그러했다. 개인사를 떠올릴 때면 소녀같은 미소를 머금으며 반전 매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신 대표를 통해 세계적이면서 지역성이 어우러지는 성남시만의 독특한 문화지형도가 펼쳐졌다.
▲성남시를 외부에서 봤을 때는 본시가지와 신시가지 시민들의 심리적인 갈등이 많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 안에 들어와서 보니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문화적으로 화합하고 재단이 진행하는 사업이 그 간극을 메꾸고 벽을 낮추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었다. 사랑방문화클럽, 우리동네 만들기, 시민들을 위한 미디어센터 설립 등일 큰 역할을 하고 있어 기쁘다. 특히 성남 시민이 굉장히 음악을 좋아하고 수준 높은 동아리에 놀랐다.
-차별점을 극대화하는 방법은.
▲문화는 사람들의 이념과 정치적인 성향, 서로 다른 사고방식을 ‘즐거움’을 통해 벽을 허무는 매개체와 같다. ‘소외계층’이라던가 ‘찾아가는’ 등의 언어를 쓰는 순간 차별성이 생기고 간극이 벌어진다.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는 것이 문화인이고, 문화는 다양성 속에서 꽃핀다. 한반도 문화가 융성한 것 역시 외국 문화를 수용하면서도 우리의 것을 지킨데 있지 않는가.
극장은 ‘즐겁고 교육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운영 방침이다.
이에 앞으로 다양한 시민들의 소통, 창조 프로그램을 늘려 잘 키워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극장이 갖는 교육적 기능도 강화해야 한다. 꾸준한 지원과 격려가 많이 필요한 부분이다.
-구체적으로 실현한 프로그램과 주력 사업이 있다면.
▲음악 유망주들을 선발해 공연 기회를 제공하는 ‘앱솔루트 클래식’ 외 아트센터에 청소년들이 부담없이 즐기고 학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좀 더 강화하고 싶었다. 현재 목요일 오전 11시에 열리는 ‘마티네 콘서트’에 지역 청소년 100명을 초청하고 있다. 무대 백스테이지 투어에는 20~30명의 학생이 참여한다. 회의에서 청소년이 찾는 공연장을 강조했는데 현실이 돼 기쁘다.
또 성남은 안산시 다음으로 다문화가정이 많은 도시다. 이에 세계를 이해하는 공간으로 ‘악기박물관’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2층에 전시관을 꾸며 6대륙의 악기 100점을 전시할 계획이다. 성남문화재단 후원회가 많은 도움과 격려를 해 줘 힘이 난다. 악기 연주 동아리에서는 세계 악기를 기증하겠다는 분도 있다. 박물관 건립을 추진하며 기증 캠페인을 벌이겠다. 향후 작은 콘서트와 악기 교육 등 음악을 통한 소통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
-무대예술가답게 취임하자마자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 분위기를 확 바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슨 일인가.
▲3월에 프랑스 문화원과 공동 주최로 진행하는 공연이 있었는데 국내외 주요 내빈이 대거 참석하는 리셉션이 예정돼 있었다. 당시 차가운 대리석 바닥과 벽에 천정에는 백열등만 켜져있어 삭막했다.
극장은 관객이 알게 모르게 영향받는 공간으로 들어서는 순간 마치 체면에 걸리듯 마음이 열려 예술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바꾸기엔 시간도 예산도 없었다. 당장 전구만이라도 따뜻한 색감으로 바꾸고 바닥에는 빨간 카펫을 깔았다. 프로그램북도 꼼꼼히 체크했다.
다행히 당시 공연했던 해외 연주단이 “30년 동안 이렇게 만족스러운 공연은 없었다”고 극찬했고, 참석자 모두 감탄했다. 1층까지 다 바꾸고 싶지만 예산이 없어 안타깝다.
-중요성은 강조하면서도 가장 먼저 예산이 잘리는 분야가 문화예술계다. 성남도 설립 당시 세계적 공연을 유치하고 사랑방문화클럽 활성화로 주목받았지만, 예산 문제로 같은 수준을 유지키 어려울 것 같다. 방안이 있나.
▲기존에 있는 공연을 무작정 사오는 ‘공연 쇼핑’이 아니라 타 예술단체와 기획사, 해외 공연의 경우에는 외교적인 활동이 필요한 각 나라의 문화원, 대사관과 긴밀한 연계를 하며 문화적인 외교로 공연 아이템을 협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협력 관계를 맺어 공동주최를 하게 되면 기획공연의 예산적인 지원과 양질의 공연 스케줄 확보는 물론 국제적인 입지도 높아질 수 있어 좋다. 한편으로는 예술가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이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활동하는 사람들을 기용하고 활성화시킬 수 있도록 무대를,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재단의 역할이다. 예술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문화적 토양도 비옥해질 것이다.
▲시승격 40주년을 기념해 성남시 예술단체가 주축이 돼 6월 16, 17일 이틀간 콘서트홀에서 개최하는 ‘성남작곡제전’이다. 성남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곡가 강석희(서울대 명예교수)씨를 비롯해 300명의 작곡가가 살고 있는 도시다. 하지만 이들이 작품을 발표할 기회는 없었다. 문화 선진국은 역사적 사건이 있을 때 작곡가에게 신곡 위촉과 오페라 제작 등을 기획하고 이 초연작을 보러 전국에서 관객이 찾아온다. 재단이 만들어가야 하는 모습이다. 그 첫 걸음으로 성남작곡제전을 마련했다.
이밖에도 성남의 예술가들을 초청해서 지원하는 공연을 확대하고, 음악뿐만이 아니라 연극ㆍ무용 부분에서도 활성화시키려고 한다.
-짧은 시간 안정적으로 조직을 재정비하고 프로그램(사업)을 추진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선임 전 ‘아버지의 친일 행적 논란’ 등 구설에 올랐음에도 강인한 정신력이 돋보인다. 자신의 리더십을 정의한다면.
▲구설에 상처받지 않는다. 기분 나쁠 수 있지만 문화예술계에서 전문가로서 살아온 내 경력이 진실을 말해준다고 믿는다. 극장에서 고소공포증이 있으면서도 조명기를 짊어들고 무대 천정으로 올라가는 등 노동을 통해 더 강해졌다. 늘 즐거웠고 이 분야에 대한 현장 전문가로서 말년에 행정가이자 경영인이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어떤 구설이든, 무조건 일을 잘하는 결과가 중요하다. 성남문화재단에 취임하면서 역시 그랬다.
나는 예술가적인 측면에서는 몰입형, 행정가 측면에서는 직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소화하고 조율하는 쪽이다. 나이 들면서 포용력도 넓어진 탓에 다음 세대에 대한 의견을 많이 존중하고, 의견을 통합해주는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카리스마가 있다고 하지만 나는 귀가 열려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성남에서 마지막으로 노하우와 힘을 모두 쏟겠다’고 말했었다. 향후 계획을 밝힌다면.
▲성남에서 일을 끝까지 잘해내는 것이 계획이자 포부다. 성남시는 자연과 신도시, 미래도시의 이미지가 모두 있는 곳이다. 판교 테크놀러지의 기술산업, 생활예술, 야외공연, 빛의 축제, 댄스 퍼레이드 등 여러 가지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이 많이 있다. 아트센터를 통해 클래식 최고의 예술품을 선보일 수도 있다. 2014년에는 ‘도시축제’라는 기획을 만들어 성남시의 미래가 문화적으로 방향성을 갖출 수 있도록 준비하고 싶다.
류설아기자 rsa11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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