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인터뷰]전혜경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장

“농업은 과학기술의 산물 … 현장에 필요한 기술 지원해야”

지난달 22일 농촌진흥청에서 열린 풍잠기원제. 매년 잠업 관련 기관장들이 전통의상을 입고 모여 누에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자리다. 푸른 관복을 입고 사모를 쓴 기관장들 사이에서 올해의 제주(祭主)는 곱상한 얼굴이 유독 눈에 띄었다. 농진청의 선임연구기관이자 대표연구기관인 국립농업과학원의 최초 여성 수장, 전혜경 원장(55)이다.

전 원장은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지만 아버지의 권유로 대학원에서는 전공을 식품영양학으로 바꾸고 농진청에 계약직으로 입사하며 농업과 연을 맺었다. 아버지 고 전승규씨는 1979년부터 1988년까지 국립식량과학원의 전신인 농촌영양개선연수원의 초대 원장을 지냈다.

결혼 전 전 원장의 결혼관은 ‘잘 지어놓은 성에 공주처럼 들어가기보다는 내가 같이 집을 지어나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가치관은 일에도 적용됐다. 편하게 안주하기보다 ‘남들이 가지 않은 뒤안길에 꽃길이 있다’는 신념으로 열정을 갖고 즐기면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왔다. 그 결과 지난 2008년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농진청 연구정책국장을 맡았고 그 뒤 한식세계화연구단 초대단장을 거쳐 2009년에는 국립식량과학원장으로 임명돼 농진청 역사상 최초 여성 기관장이 됐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국립농업과학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농업은 종합과학’이며, 그렇기 때문에 ‘할 일 없으면 농사나 짓지’라는 말을 가장 싫어한다는 전 원장을 집무실에서 만나 국립농업과학원의 운영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Q. 지난 4월18일 국립농업과학원장으로 취임했다. 농진청 역사상 여성으로선 최초라 들었다.

A. ‘농업이 95%의 과학기술과 5%의 노동으로 이루어진다’는 농정철학을 지닌 박근혜 정부에서 대한민국 농업과학기술개발의 메카인 국립농업과학원의 원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되어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새 정부에서는 ‘희망찬 농업, 활기찬 농촌’을 목표로 ▲농식품산업의 신성장동력화 ▲누구나 살고 싶은 복지농촌 건설 ▲농가소득 증대 ▲안전한 농식품의 안정적 공급 ▲농축산물 유통구조 개선을 ‘5대 농정과제’로 삼고 있다.

이는 농업과학기술의 뒷받침 없이는 실현이 불가능한 만큼 앞으로 농업·농촌 기초과학기술 연구 개발과 현장 실용화에 더욱 박차를 가해 우리 농업의 미래 성장동력을 창출하고, 농식품 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며 농촌 활력 증진에 최선을 다하겠다.

Q.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가 계속 따라다니고 있는데.

A. 영광스럽게 생각하지만 그동안 공직에 있으면서 여성이라는 점을 특별히 의식한 점은 없었다. 다만 과거 우리 사회의 ‘유리천장’을 조금이나마 깨뜨리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보람과 그 이상의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여성이라고 별도의 대우나 도움이 필요한 것이 아니기에 굳이 여성을 강조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여성 최초’라는 말보다는 2002년 농산물가공이용과를 신설하면서 초대 과장이 되고 2008년 한식세계화연구단을 개편하면서 초대 단장이 된 것처럼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그 분야에서 처음 직분을 맡게 된 ‘초대’라는 말에 더 의미를 두고 있다.

Q.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A. 항상 분주하게 지내면서 가장 크게 배운 생활의 교훈은 ‘양 손에 떡을 쥘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뭔가를 얻으려면 뭔가는 포기해야 한다. 부모님과 가족의 헌신과 배려가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렇게 도움을 받는 만큼 내 고집대로 하려 하기보다는 나도 그만큼 육아방식이나 가정생활에서 양보하고 타협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경험은 조직을 이끌어나가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됐다. 직장에서건 가정에서건 늘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리더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듣고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취임사에서 현장중심과 새로운 가치창출의 연구개발을 강조했는데, 특별한 뜻이 있나.

A. 농업은 자연과 함께하는 종합과학기술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연구개발의 대상이나 과제는 현장 속에서 찾아야 하며, 그 방법론에 있어서는 박근혜 정부에서 강조하는 융합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고 본다.

일차적으로 우리 농업생산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연구개발이 돼야 하고 여기서 좀 더 시야를 넓혀 소비현장, 정책현장, 연구현장에서 우리 농업인과 국민이 필요로 하는 기술이 무엇인지 파악해 연구개발하고 기술지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와 함께 농식품산업의 신성장동력화와 농가소득증대를 위해 전통농업과 신 과학기술과의 융합, 자연과학과 사회과학과의 융합 등 창조적이고 통합적인 연구개발을 촉진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국가농업과학기관으로서 농업기초과학기술과 바이오생명산업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연구사업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Q. 올해 농과원의 주요 추진업무를 소개한다면

A. 농과원은 국가기관으로서 우리나라 농업과학기술 기초기반 및 현장애로 해결을 위한 연구개발과 지원에 일익을 담당해 왔다. 지난해 정책제안 145건, 영농활용 243건, 특허출원 199건, 논문게재 523건, 기술이전 234건 등 많은 실적을 거뒀고 중앙우수공무원제안 대통령상을 비롯해 14건의 대외 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농현장 등에서 요구하는 실용화 기술수요 대응에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올해부터는 농업인과 국민이 필요로 하는 기술이 무엇인지를 파악해 수요자 중심의 현장기술 개발·보급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현장명예연구관을 활용해 상시 현장애로기술을 발굴하고, 현장발굴 과제를 패키지화해 파급력 있는 실용과제를 기획하려 한다.

또한 개발된 기술들은 찾아가는 기술지원 서비스를 통해 농가와 산업체 등에 신속하게 보급하고 발 빠르게 실용화시켜 나가는데 최선을 다하겠다.

특히 농업기상재해 조기경보시스템 구축 등 기후변화 대응 기술 개발이나 IT·BT를 접목한 농업생명공학 원천기술 개발, 식·의약 기능성 신소재 개발에도 힘을 쏟을 계획이다.

Q. 농업의 6차 산업화가 화두다. 농과원의 연구역량을 어떻게 접목시킬 계획인지.

A. 기후변화, 시장개방, 고령화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농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1차 산업만으로는 어려움이 있다. 우리 농업을 생산(1차)+가공(2차)+관광·외식(3차) 등이 결합된 6차 산업으로 육성해 농가소득을 높이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창조산업으로 육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원은 6개부와 1개센터로 구성, 부서 특성에 따라 1차, 2차, 3차의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므로 이를 융합하고 보완해 농업의 6차산업화를 뒷받침할 수 있는 패키지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Q. 앞으로 창의적인 기관운영 방안이 있다면.

A. 창의적 기관이 되기 위해서는 구성원이 창의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경직된 조직문화부터 바꿔야 한다고 본다. 또 우리의 목표인 ‘희망찬 농업, 활기찬 농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직원들이 먼저 희망과 활기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일, 긍정적인 동료관계, 의미/보람, 취미활동 등 4가지 행복원천을 통해 직원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할 계획이다.

우선 세계 최고 수준의 농업기초과학 연구기관으로 도약하기 위해 국제 수준의 연구인력 육성 및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신진연구자를 대상으로 전문성, 창의성, 현장감 등의 역량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워너비 Star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중견연구자들은 세계적인 학술지인 셀, 네이처, 사이언스 등에 도전할 수 있도록 글로벌 우수인재 지원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다.

또 융합과 창조·소통하는 조직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내부협력 ‘메디치 프로그램(Medici Program)’을 운영할 계획이다. ‘메디치 효과’란 서로 관련 없는 이질적인 분야의 결합을 통해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창출해내는 현상이라고 한다. 연구원간 아이디어 교류 및 상호 이해를 위한 기술소통의 장을 마련하겠다.

Q. 농과원의 역할도 점점 중요해질 거란 생각이 든다

A. 기후변화, 시장개방, 고령화 등 우리 농업·농촌이 지금 당면하고 있는 어려움이 많다. 우리 농업의 미래 성장동력을 창출하고, 농식품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며 농업인의 복지와 농촌의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우리 원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우리 국립농업과학원과 직원 모두는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미래 농업의 변화를 빠르게 예측하는 가운데, 새로운 시각과 창의적인 발상으로 맡은 바 업무에 열과 성을 다해 농업인과 국민에게 사랑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 또 통일벼를 개발한 ‘제2, 제3의 허문회 박사’를 배출해 ‘21세기 농업혁명’을 이끌어가는 기관으로 자리매김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구예리기자 yell@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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