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변화에 대한 요구’와 미술관의 ‘전문성 확보’라는 요구가 시차 없이 제기되고 있는 형편이며 이 과정에서 시행착오와 오류가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미술관들이 관객유치를 통한 운영의 효율성을 기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울러 미술관의 전통적인 기능뿐 아니라 4대 구성요소에 이르기까지 발상의 전환을 요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미술작품의 소비는 물론 생산으로까지 미술관의 역할이 확대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에 각국의 미술관들은 이러한 변화요구에 부응하고 이의 원천인 작가들에게 안정적인 창작여건의 제공이라는 모토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은 물론 미국의 뉴욕근대미술관, 일본의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 그리고 영국 게이츠헤드의 발틱 현대미술관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문화교류와 이를 통한 상호이해, 그리고 창작의욕의 고취와 작품의 생산이라는 측면이 미술관의 주요 기능 중 하나로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자국의 작가들과 초빙된 외국 작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보다 예술성 높고 독창적인 작품제작 환경을 제공하고자 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운영으로 귀결된다.
그 결과 오늘날 예술 활동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은 ‘예술가의 유목성’과 병렬적으로 여러 나라에서 운영되는 다양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국제적으로 일반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진취적인 예술가들은 하나의 국가나 문화권에 머무르지 않고 이국을 떠돌며 다양한 문화체험 속에서 창작 작업을 지속해 나간다.
구미에서는 ‘레지던시’개념이 생소한 것이 전혀 아니며, 역사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지금까지도 예술가들의 주요한 창작기반으로 기능하고 있다. 사실, 예술가들에게 있어 ‘레지던시 프로그램’ 혹은 ‘창작스튜디오’는 예술가 자신의 존재 조건과 분리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삶의 공간이자 창작의 산실이다.
오늘날 미술환경은 단순히 작품 생산에 따른 결과(작품) 뿐 아니라 창작에서부터 소비에 이르는 시공간적 서사과정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특히 영상설치미술이 주류를 이루는 현재의 창작풍토에서 완결된 작품보다는 그 작품이 이루어지는 생산의 과정에서의 연구, 토론, 협업, 분배 등 창작환경이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 내에서, 매체의 다양한 수용과 장르의 혼성이나 통합이 빈번한 현금의 작업환경 하에서 각 장르별, 지역별 예술가들이 협업하고 토론하는 장이 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필수 요소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국내외적으로 슬럼화 되거나 재개발 상태에 놓인 역사적 명소들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구입하여 문화예술 기반시설로 전환하려는 장소마케팅의 사례가 증가하는 것에서도 볼 수 있다.
건축가 피터 랭(Peter Lang)은 “우리는 도시의 죽음을 두려워하다가 이제 죽음의 도시를 두려워하게 되었다”고 지적하며 유토피아적 환상과 획일화되고 일괄적인 질서와 권위를 추구하는 모더니즘 예술의 접근방식에 대해 비판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문화적 현상을 단순히 기술적 산물로 환원할 수는 없는 바, 예술을 통한 도시마케팅의 다양한 가능성들을 사회적, 경제적으로 논의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전통적 문화인프라와 첨단산업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수원의 문화환경에서 구도심활성화를 모토로 하는 국제적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경모 수원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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