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ㆍ품질로 ‘메이드 인 차이나’ 검증…한중 민간외교役 하고파
그런데 여기, 거꾸로 중국에서 만든 제품으로 한국시장을 공략하려는 ‘간 큰’ 사업가가 있다. 토탈 뷰티 기업 ennio(엔니오ㆍ중국 광동성 불산시)의 김문일 사장(45)이다. 연변 출신 중국동포인 김 사장은 작은 네일팁 제조회사에서 시작해 지금은 미국 월마트를 비롯해 유럽, 남미, 동남아, 아프리카까지 전 세계에 제품을 수출하며 3개의 화장품·네일 브랜드를 론칭하고 뷰티 아카데미 스쿨까지 열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자신의 뿌리인 한국에서 더 큰 꿈을 펼치려 한다. 국내 시장 진출 준비로 한국과 중국을 바쁘게 오가며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김문일 사장을 만났다.
Q ennio라는 기업이 어떤 곳인지 소개해 달라
A ennio는 2001년에 설립된 한중 합작 벤처기업이다. 주로 인조손톱과 관련 미용 기기를 생산하며 OEM에 주력하다 3년 전에는 세 개의 브랜드를 독립적으로 ‘O’melon’, ‘MOB’, ‘Butiq’ 등 세 개의 독자적 화장품·네일 브랜드를 론칭했다. 지난 6월에는 광저우에 뷰티 아카데미 스쿨을 오픈해 전문 강사들이 인재를 육성하고 있다. 한국과 인적 교류를 통해 한중 뷰티 산업이 상생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Q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A 대학에서 체육학을 전공하다 부상 때문에 경제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어렸을 때부터 사업 쪽에도 관심이 많아 경제학을 선택하게 됐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게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 같다. 1992년 대학을 졸업하고 2년간 고향인 연변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일했다.
1994년 심천 경제특구에 가게 됐는데 구경만 하고 돌아올 생각으로 갔다가 우연히 한국 제조회사에서 일을 하게 됐다. 리모컨 등을 만드는 경인전자였는데 그곳에서 6개월 가량 일하며 제조업이 무엇인가를 배우게 됐다. 이후 불산시에 있는 조명회사에서 7년 정도 일하다 모시고 있던 사장님이 네일 사업 아이템을 제안해 2001년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Q 여자들도 관심없는 사람이라면 잘 모르는 네일제품으로 사업을 시작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네일 관련제품을 본 적도 없을 뿐더러 그 분야에 대해 개념조차 없었다. 시장조사를 시작하면서 유흥업 종사자들을 만나 물어보기도 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는데 네일에 대해 아무도 모르는 거다. 오히려 그 부분에서 앞으로 네일 분야가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독보적인 지위를 선점할 수 있고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할 것이라고 생각한 거다.
하지만 처음에는 제품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어디에 팔아야 할지도 모르고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을 했다. 한국기술자와 동업해 10여명의 직원으로 시작했는데 직장생활하며 모은 돈과 고향에 모아놓은 돈을 모두 쏟아부었지만 1년 반 정도는 매출이 거의 없었다. ‘다음달까지도 이러면 공장을 접어야지. 난 아직 젊으니까 다른 곳에 취직하면 된다’고 편안하게 마음을 먹으니 그때부터 서서히 매출이 늘기 시작했다.
처음 1년간은 유사업종 바이어들에게 계속 샘플을 뿌렸는데 1년 반 정도 되니 미국, 유럽 등 해외에서 먼저 반응이 오기 시작한 거다. 지금은 직원들이 600여명으로 늘어났고 50여개 나라에 네일팁과 네일기구 등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A 사업 시작 전 한국회사에서 근무하며 배운 점이 있다면 신용과 품질이 기업의 생명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내 사업에서도 그대로 적용됐다. 고생도 많이 했고 어떨 때는 이정도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우리 공장에서 출하되는 제품은 100% 우리가 책임진다는 각오로 일하고 있다. 또 기술개발과 R&D에도 계속 투자하고 엔지니어들은 한국인을 고용하고 있다.
중국 제조업체는 디자인 카피를 하는 곳이 많은데 한국 유명 디자인회사와 합작해서 디자인에도 차별성을 뒀다. 처음에는 제품을 바이어 요구대로 잘 만들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만 있었다. 하지만 하다 보니 우리가 먼저 디자인해 바이어에게 제시하기도 하고 기술도 한국 엔지니어들과 계속 업데이트해 네일 관련 특허도 많이 취득했다. 제조업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되고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것 같다.
Q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중국 제품은 질이 낮다는 인식이 있다
A 사실 한국 뿐 아니라 일본도 ‘메이드 인 차이나’에 대해 싸고 질 낮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그래서 더 ‘우리는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실제 제품을 보여주면서 신뢰도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 선진국 못지 않게 품질과 신용을 목숨처럼 지키며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하나 검증하다 보면 고객들의 신뢰도 쌓여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Q 한국과 합작하면서 문화 차이도 많았을 것이다
A 서로 다른 것을 틀리다고 생각해서 겪는 크고 작은 갈등이 많았다. 중국인들은 시간을 두고 서서히 사람을 사귀면서 일을 하려고 하는데 한국인들은 바로 일을 시작해 빨리 결과를 내려 한다. ‘만만디’와 ‘빨리빨리’의 차이다.
특히 교포들은 언어도 같고 음식문화도 비슷해 한국인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자라난 환경은 많이 다르기 때문에 그만큼 오해의 소지가 생기기 쉽다. 그럴수록 상대방에 대해 공부하고 준비를 하고 마음을 열고 배려해야 한다. 내가 먼저 마음을 열지 않으면 돌아오는 것은 없다.
Q 중국으로의 사업 진출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중국은 아직 여러 측면에서 한국에 비해 뒤처져 있다. 하지만 거꾸로 보면 그렇기 때문에 중국은 기회의 땅이다. 기회를 잡고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긍정적인 마인드가 중요하다. 단기간에 짧게 승부를 보려고 하면 무조건 중국에서 백전백패한다.
멀리 앞을 내다보고 차근차근 일을 추진한다면 몇 번 쓰러지더라도 언젠가는 좋은 파트너도 만날 수 있고 좋은 기회도 잡을 수 있다. 또 외국에서 사업을 하는 것은 여러모로 자기나라보다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 나라의 문화와 사람들의 모든 것을 긍정적이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Q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아 보인다
A 일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 두 가지 목표가 있다면 토탈 뷰티업계의 선두가 되고 싶다는 것과 한중 민간 외교관 역할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한국과 중국, 또 일본이 정치적으로는 민감하지만 민간 차원에서는 뷰티 산업을 통해 화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특히 중국에서 일하는 교포들,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싶다. 그 일환으로 지금도 연변의 학생들에게 조금씩이나마 장학금을 주고 있고 직원들에게도 비전을 가질 수 있도록 재교육도 하고 학원비도 지원하고 있다. 여성 탈북자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그들이 창업할 수 있게 도와줄 계획도 있다.
또 오는 10월에 역삼동에서 오픈하는 글로벌 토탈 스킨케어 기업인 ‘래쉬프랑스&네일’과 상호협정을 맺어 뷰티 전문인들을 양성하고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보탬이 되려 한다.
구예리기자 yell@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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