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인터뷰]현대무용가 안은미

할머니ㆍ아저씨ㆍ주부를 무용수로… “본능적 몸짓, 그것이 진정한 자유”

붉은 장미꽃 머리띠, 핑크빛 레이스 상의, 꽃과 잎 무늬가 새겨진 바지 등. 우리나라 대표 현대무용가 ‘빡빡머리’ 안은미(51)는 어김없이 최강 비주얼을 자랑하며 인터뷰에 나섰다. 외모만 튈쏘냐. 그의 이력은 더 화려하다.

1988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무용단의 창단공연과 서울올림픽 개막식 매스게임 지도 등으로 이름을 알린 안은미는 세계가 주목한 무용가다. 1998년과 2002년 뉴욕문화재단 안무가상, 1999년 맨해튼문화재단 안무가상 등이 이를 방증한다.

한국인 최초로 영국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에 초청돼 도발적이고 파격적인 춤을 선보이기도 했다. 각종 사회 문제도 ‘안은미 스타일’로 풀어내고 있다. 지난 2011년부터 할머니, 아저씨, 주부 등 보통 사람을 무용수로 만드는 프로젝트도 그 중 하나다.

오는 28일 군포문화예술회관에서 펼쳐지는 군포시 할머니들의 춤 공연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에 앞서 만난 안은미는 말했다. 이 공연을 통해 ‘사람을 보라’고, ‘진짜 자유를 느끼라’고. 다음은 일문일답

Q. 유명한 무용가로 인터뷰도 많이 했는데, 정작 춤을 선택한 유년시절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당신에 춤은 무엇이며 왜 선택했나.

A. 내게 춤은 운명이었다. 어려서부터 말보다 행동이 편했다. 춤뿐만 아니라 책상 위 뛰어다니고 노는 게 좋았다. 다섯 살 때부터 직감적으로 춤을 췄다. 그 나이에 주체적으로 삶을 형성한 보기 드문 아이였다.(웃음) 그런 내게 춤은 말보다 큰 언어였다. 춤이 본래 그렇다. 인간이 가진 본능적 삶의 에너지가 곧 몸짓이다. 춤은 인간에게 원래 있던 것이고, 인류학적 기억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언어다.

Q. 그래서 보통사람들이 춤추는 공연을 기획했나. 무엇을 알려주고 싶은가.

A. ‘춤은 특별한 교육 없이도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라던 무용가 피나 바우쉬를 다룬 다큐멘터리 ‘피나’에 영감 받아 시작했다. 2011년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세운 현대무용 공연을 시작으로 2012년 청소년, 2013년 아저씨를 무대에 올렸다. 그들이 진짜 자유를 느끼기를 바랐다.

우리는 민주주의라지만 계급 사회에 살고 있다. 주인은 없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경쟁은 끝이 없다. 지친 사람들에게 잠시 낯선 사람이 다가가서 그만의 시간과 역사를 춤으로 끄집어내고 되돌아볼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일 필요없이, 본능적 몸짓을 드러내는 경험 자체가 그들에게 자유였다.

Q. 참여자나 관객이나 일반 무용공연과 반응이 확연히 다를 텐데, 어떠한가.

A. 어머니 무대는 그 어떤 슬픈 영화 필름보다 훨씬 강한 눈물을 흘리게 한다. 희생과 사랑 등 우리나라 특유의 어머니에 대한 정서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이를 본 관객은 놀란다. 기존에 생각해 온 어머니의 몸이 아닌 다른 몸을 보는 것에 충격이 있는 것 같다.

이 두 가지 감정이 공연장에서 마주치면서 더 뜨거운 감정이 만들어진다. 내년에 어머니들과 벨기에에서 공연하는데, 문화적 차이가 있기 때문에 또 다른 관객 반응이 예상된다. 참여자가 청소년일 때에는 또 다르다. 아이들은 불안한 미래에 암담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관객은 그저 일어서려는 모습에 손뼉을 쳐준다. 아저씨들은 가장으로서 쓰라리면서도 귀엽고, 특별한 복합적 코드가 있다. 참여자 계층이 달라도, 무대 위 공연하는 사람이나 관객의 반응이 맞부딪히면서 각기 다른 반응과 효과가 이뤄지는 것은 같다.

Q. 군포의 어르신들에게서 지역적 특징이 있었나.

A. 군포는 지역 규모가 작아 복잡하지 않고 좋다. 그래서인지 참여하는 어머니들도 순박하고 재미있는 분도 정말 많다. 군포의 지역적 분위기가 어머님들의 삶에 영향을 많이 준 것 같다. 특히 군포시는 다른 지역보다 할아버지가 많아서인지, 남성적 에너지도 강하다.

Q. 군포 할머니들의 공연이 기대된다. 청소년 교육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A. 요즘 아이들의 문제를 꿈이 없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과거에는 꿈이 있으면 비전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꿈도 빨리빨리, 심지어 부모가 결정한다. 학생들에게 이제 꿈을 묻기 전에 오늘을 살아가는 재미를 줘야 한다. ‘오늘 뭐하고 싶으냐’고 물었으면 좋겠다.

나처럼 운 좋게 운명적으로 춤추는 재능을 타고나서 그렇게 살아가는 샘플을 들이대면 안 된다. 태어난 대로 잘 살아주는 것이 좋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천천히 지역사회의 인재가 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교육의 역할이라고 본다. 하지만 지금은 선생님들마저 결과물을 내야만 하고 학부모 압박까지 받아서 힘겨운 것 같다. 안타깝다.

Q. 춤이 그 교육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나.

A. 대학입시나 교과과정에서 춤이든 체육이든 몸을 움직이는 한 과정이 필수였으면 좋겠다. 전쟁을 겪고 아이 7명 이상을 낳으면서도 밭일했던 세대를 보라. 얼마나 건강한가. 의학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힘이 있다. 그런 유전자가 이 시대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질병이 가득하고 비만을 걱정하며, 힐링과 치유를 찾는, 자기 몸을 잊어버리고 사는, 뇌만 활동하는 이 시대에 춤이든 그 어떤 인간의 본능적 움직임이 힘을 줄 수 있다고 본다. 다행히 학교가 배제한 것을 미디어가 대신하고 있다. 학생들이 아이돌 그룹을 보며 따라 춤을 추고 있다. 그나마 그 움직임으로 인간의 본능적 소통과 자기여과가 이뤄지는 것 같다.

Q. 한국에서 안정된 길을 걷다가 갑자기 뉴욕으로 건너가 도전하는 등 당신의 삶 자체가 학생들에게 롤모델이다. 그런데, 여성으로서의 안은미는 어떤가. 후회되는 것은 없나.

A. 80년대에 만든 나의 독특한 캐릭터를 지금까지 꾸준히 가져갈 수 있는 것은 힘든 일이다. 아직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여자로서의 안은미는 세계에서 가장 예쁜 여자. 어떻게 더 예쁠 수 있나.(웃음) 하지만 후회도 있다. 노력보다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하지만 후회도 자기반성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가끔 한다. 다만 유럽에서는 아직도 예술가들이 실험적인 것으로 소통하는 것이 가능한데, 우리나라는 어려운 이야기를 나누면 외면받는 분위기여서 아쉽다.

Q. ‘세계에서 가장 예쁜’ 춤꾼 안은미의 신작은 언제 볼 수 있나.

A. 구체적인 내용은 비밀이다. 역사적으로 재미있는 사건을 그 당시의 몸으로 기억해보는 공연이다. 내년 2월쯤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Q. 이전 작품 중 은미의 춘향이나 심포카 바리처럼 한국적 소재인가.

A. 사실 나는 무용가로서 우리나라의 춘향이를 매혹적으로 느끼지 않았었다. 다루고 싶지도 않았다. 서구문화에 길들여져서 가전제품은 외국 것이 최고라 생각했듯 춤이나 그 소재도 외국 것에 더 관심이 많았다. 뒤늦게 철들어서 적어도 한국사람이면 전통문화에 대한 기본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제 사회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많은 것을 받고 살아왔다. 이것을 어떻게 쓸 것인가 고민해야 하는데, 내가 잘하는 것이 춤이니까 여러 사람이 춤을 통해 미래 비전을 만들고 공존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 11월 아름다운 재단 가게 10주년을 기념해 아주머니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것도 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류설아기자 rsa11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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