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세법개정안에는 많은 내용들이 포함돼 있지만, 소득세에만 관심이 집중됐다. 소득세 부담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인상도 중산층 이상에만 적용되고, 규모도 연 16만원 수준이다. 오히려 개정안에서 가장 부담이 높아지는 세목은 법인세였으나, 이에 대해선 전혀 관심이 없었다.
박근혜 정부는 무상복지 공약을 실현하겠다고 공언했다. 무상복지의 혜택은 소득수준과 관계없이 무차별적으로 지급된다. 영유아를 가진 가구는 연간 300만원 이상의 무상보육 혜택을, 자녀를 가진 가구는 무상급식 혜택을 본다. 무상복지를 실행하기 위해선 세금인상이 필연적이다.
세금정책, 우리 미래위한 중요 사안
이 정도의 혜택을 고려할 때, 중산층 정도면 연간 16만원 부담은 어쩌면 당연한 정책방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인식구조엔 무상복지는 당연한 것이고, 세부담 인상은 절대 불가라는 생각이 깔려있다.
야당에선 이 정도의 세금인상을 ‘세금폭탄’으로 단순 명료하게 비판했고, 여론몰이에 성공했다. 세금폭탄이란 용어는 과거 노무현 정부시절, 현재 여당이 야당일 때 사용한 정치용어였다. 지금 ‘세금폭탄’이란 용어는 여·야 할 것 없이 세금이 조금이라도 오르면 정책의 합리성을 따지지 않고, 무차별적 여론몰이를 할 때 내세우는 ‘언어무기’가 됐다.
정치권에선 정치적 지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올바른 정책방향에 대해 국민을 설득하는 것보다 감성적 언어를 통한 세몰이로 지지를 확보하려 한다. 정치권에서 빈번하게 사용하는 또 다른 세금관련 감성적 용어인 ‘부자감세’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부자감세’는 부자에게만 감세해 준다는 의미로, 진위를 떠나서 국민들의 감성적 쏠림을 자극하는 용어다.
정치권은 세금정책에 대해 국민들의 공감대를 유도할 책임이 있지만, 실제론 세금정책을 통해 정치적 지지를 선점하려는 경쟁을 한다. 그 결과 우리 정치권에선 세금정책을 평가하는데 두 가지 정치적 용어만 남게 됐다. ‘세금폭탄’과 ‘부자감세’가 그것이다. 여·야 할 것 없이 이 용어를 적당한 시점에 사용해서 정치적 지지를 두고 경쟁한다. 우리의 세금정책 결정과정에서 전문가들의 조언을 토대로 진지하게 사회적 합의를 유도하는 정치과정은 전혀 볼 수 없다.
세금정책은 경제적 합리성이 아닌, 정치적 과정에 의해 이뤄진다. 세법개정안이 발표될 때 마다 정치권에서 ‘세금폭탄’이나 ‘부자감세’란 용어로 국민들을 감성적으로 선동하게 되면 절대 합리적인 세금정책을 펼 수 없다.
세금정책의 방향은 우리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사안이다. 무상복지를 추진하려는 정부의 정책방향이 세금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국 우리 자식세대가 부담해야 한다. 이것이 재정건전성 문제이고, 그리스· 이태리· 포르투갈 등 유럽 국가들에서 세금과 정부혜택 간 균형이 깨져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정치권에서 세금정책을 논할 때 감성적 용어보다 ‘세금가격’이란 관점에서 평가해야 한다. 세금은 공공서비스의 댓가이기 때문이다. 미국 국세청 입구에는 다음과 같은 문귀가 걸려있다. “세금은 문명 혜택에 대한 댓가다” 무상복지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댓가가 이번 세법개정안에서 보여준 일부계층에 대한 세부담 인상이었다.
‘세금폭탄’ 용어로 국민 선동 안돼
국민들이 세금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전에는 ‘세금가격’ 논리가 ‘세금폭탄’ 논리를 이길 수 없다. 이제라도 국민들에 대한 세금가격 논리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어차피 정치권은 국민들의 인식방향에 편승하려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자발적 정화를 기대하기 보단 국민들 인식의 전환에 기대하는 것이 낫다. 세금정책 평가에 ‘세금폭탄’이 아닌 ‘세금가격’ 논리가 주된 개념이 돼야 한국에 미래가 있다.
현진권 한국경제연구원 사회통합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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