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어 보양식으로 입맛 돋우다
낙후(落後) 소리를 듣던 중구 신포동 시장이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 민어 때문인데, 민어를 찾아 시장 골목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 주말 같은 때는 성시(成市)라 해도 좋을 정도다.
젊은 층들은 닭강정이니 어묵꼬치니 거기다가 공갈빵이라고 불리는 허풍선이를 먹으러 오지만 좀 연령이 높은 사람들은 단연 민어를 찾는다.
생선 경력 39년 솜씨 ‘신포시장 일인자’
신포횟집은 중구 신포시장 안 두 골목 중간 지점에 있다. 신포시장의 구조는 동서로 뻗은 이 두 개의 나란한 긴 골목으로 되어 있다.
패션거리 다음의 닭강정, 어묵꼬치 따위로 번잡해진 시장 안 골목이 윗골목, 그리고 인파가 비교적 뜸한, 수입품코너, 인삼가게 등이 몰려 있는 골목이 아래골목이다.
동쪽에는 요즘 비상하게 이름이 뜬 H횟집이 있고, 서쪽에는 시장 안에서 민어회 원조 노릇을 하는 K횟집이 있다. 신포횟집은 바로 동쪽 H횟집을 비스듬히 건너다보는 위치에 있다.
신포횟집이 문을 연 지는 이제 겨우 10년 남짓하다.
전에는 시장을 오가며 어쩌다 농어를 주문해 가져가거나, 소반에 얹힌 말린 어란(魚卵) 따위를 사들곤 하던 생선 가게였다. 그러던 곳이 10년 전 시장을 정비할 때, 횟집으로 변모한 것이다. 2002년 후배 한(韓) 모 군이 지방선거에 나와 일심으로 도왔는데 참으로 아쉽게 패배하고 만 뒤 그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 처음 들어서지 않았나 싶다.
아무튼 대부분의 횟집은 다 남자가 주방을 책임지는데 반해 이 집은 주인 윤인자(尹仁子)씨가 회칼을 잡는다. 흰 위생복도 입지 않고 머리에 요리모도 쓰지 않지만 썰어내는 회의 맛은 남성 숙수(熟手)가 내는 것 이상이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윤인자씨가 횟집을 경영한 것은 10년이지만, 생선을 다루기는 39년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웬만한 경험자도 윤인자씨를 따르지 못한다. 시장 안에서는 최근 자기 가게를 세 주고 잠시 물러난 H횟집 주인이 조금 앞서는데 그가 잠시나마 떠난 마당에는 이제 신포시장 안에서 일인자인 셈이다.
사실 고객 입장에서는 이런 주인에게 신뢰가 더 갈 것이다. 생선의 모양만 살펴도 그 물이 좋고 나쁨을 대번에 헤아리고, 육질을 판별해 내고, 처치의 방법을 훤히 꿰어 터득하고 있을 터이니….
경기도 군자 출신 윤인자씨가 불과 28세 무렵에 인천 신포시장에서 생선전을 열게 된 동기는 흔한 말로 먹고살기 위해서였다. 이런 여인에게는 예외 없이, 그렇듯 쓸데없이 통 큰, 그러면서 철저하게 실패하고 마는, 그리고 끝내 술과 미숙한 일상생활로 삶을 겉돌다 일찍 떠나고 마는 남편이 있게 마련이다.
시댁에서 어느 저수지와 관련한 토지를 매각하여 당시 돈 150만 원을 분배받았는데 남편의 사업 빚 100만원을 변제한 후 수중에 남은 50만원 중 45만원으로 여인숙 방 하나를 전세낸 것이다. 바로 지금 횟집 건너편이다.
그리고 남은 돈 5만원으로 부부는 생선 가게 경영에 나선다. 남편은 자전거를 샀다. 담배도 헐한 것으로 바꾸며 7년 동안 열심히 가게를 운영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윤인자씨가 35세가 되는 해, 나이 마흔한 살의 남편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그 동안 아들 둘과 먹고 산 것, 그것만 해도 고맙고, 더 이상 뭐….” 그녀에게 일찍 여읜 남편에 대한 애상이 왜 없고, 말 못할 한과 고뇌와 상처가 왜 없었으랴. 그것은 쉽게 물을 일도 아니고 어쭙잖게 받아 적을 일도 아니다.
밑반찬 어란과 민어·농어 건작찜 맛 ‘일품’
번듯한 횟집 다 놔두고 왜 작고 옹색한 이 집을 글로 쓰고 있는가 물을지 모른다. 그러나 민어회는 어느 횟집이건 거의 동일하다. 배받이라고 부르는 어복 부분, 진한 살 부분, 씹을 때 탄력이 느껴지는 지느러미와 꼬리 부분, 슬쩍 데쳐 말아놓은 껍질과 버터덩이 같이 생긴 부레 등등. 심지어 접시에 놓이는 모습도 대동소이하고 밑반찬도 비슷하다. 거기에 서덜이탕까지도 같다.
그러나 이 집에는 시장 내 어느 집에서도 볼 수 없는 다른 것이 있기 때문에 이 집을 택한 것이다. 이 집에는 밑반찬이 순서에 따라 두 가지 다른 것이 나온다. 먼저 여러 밑반찬과 함께 얇게 썬 어란이 몇 쪽 나온다. 그리고 회를 다 먹고 식사를 할 무렵, 민어나 농어 건작(乾作) 찜이 상에 올라온다.
어란은 민어 알을, 기름을 발라 햇빛에 건조시킨 것으로 좀 짜기는 해도 씹히는 맛이 쫄깃하다. 양주 안주로도 좋을 것이다. 찜은 꾸덕꾸덕 마른 민어, 농어 살을 마늘, 파, 잘게 썬 붉은고추 등으로 양념을 한 뒤 싱겁지 않게 간을 보아 증기로 하얗게 쪄 내는 것인데 옛날 어른들처럼 물만 밥에 먹는 맛은 그야말로 최고다.
다른 반찬 품목은 몰라도 경인간 일대 민어 횟집에서 이 두 가지를 내놓는 집은 여기 신포횟집뿐이다. 장마철이나 요즘 같은 불볕에는 살이 물크러지고 탄력이 없어져 말리지 못한다고 한다. 어란도 마찬가지다. 당장은 아쉽지만 이 같은 신포횟집의 특징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삼복이 다 나가고 민어철도 피크가 지났지만 그래도 과거 인천의 민어 절기는 추석 무렵까지 이어졌었다. 거기에 볕이 기울면 어란과 건작이 나올 터이니 그것을 기다리는 마음으로도 이 글을 쓴다.
·문의 : (032)765-3088
·주소 : 인천 중구 신포동 3-18
글 _ 김윤식 시인 사진 _ 홍승훈 자유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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