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호 인천시 자치경찰위원장, “안전한 인천, 시민 체감 높일 것” [인터뷰]

한진호 인천시 자치경찰위원장은 ‘더 안전한 인천’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2024년 취임했다. 인천경찰청장을 지낸 한 위원장은 경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인천시민들이 안전함을 체감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만들어가고 있다 ■ 인천시 자치경찰위원회를 이끌어 오신 지 1년이 됐다. 그간의 소회와 감회는. 지난해 처음 위원장직을 맡으며 시민의 안전과 권리를 최우선에 두겠다고 다짐했다. 지역사회와 경찰, 행정이 긴밀히 협력해 자치경찰제의 취지를 실현하고 인천만의 치안 철학을 만들어가기 위해 많은 분들과 함께 고민했다. 때로는 갈등을 조율하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나아갔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시민 목소리를 가까이에서 듣고, 그 목소리가 정책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던 시간이다. 지역 치안 사각지대를 살피고 청소년 보호와 교통안전, 여성·아동 대상 범죄 예방 등 삶의 질을 높이는 치안정책을 추진한 모든 과정이 큰 배움이자 자부심이었다. 물론 부족했던 점도 많았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인천자치경찰이 더 단단해지고,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소중한 성장의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 지난 1년간 이룬 성과는. 자치경찰제의 실질적 기반을 지역사회에 안착시킨 것이 가장 중요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자치경찰제는 제도가 아니라 문화라고 생각한다. 시민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역의 특성과 요구에 맞는 맞춤형 치안을 실현하는 게 핵심인데 그 출발점은 시민과의 신뢰 형성이다. 지난 1년 동안 단순한 제도 운영을 넘어 시민 참여 기반의 치안 거버넌스를 구체화하고 실질적으로 작동시키는 데 집중했다. 예를 들어 지역 맞춤형 범죄 예방 대책, 교통안전 강화, 사회적 약자 보호 정책 등은 시민 목소리를 반영해 ‘현장 중심의 정책’을 추진했다. 특히 청소년 보호와 학교폭력 예방, 여성 대상 범죄 예방, 112 치안 대응체계 개선 등은 실제 시민 체감도 면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기도 했다. 또 하나 중요한 성과는 경찰과 지방자치단체, 시민사회 간의 협력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경찰 업무였던 분야들이 이제는 지역과 함께 고민하고 추진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고 그 과정에서 자치경찰위원회가 조정자이자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 과거 인천경찰청장과 서울경찰청장 등 경찰 고위직을 두루 경험하셨다. 업무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는지. 큰 자산이 되고 있다. 현장과 조직을 잘 안다는 것은 단순히 행정의 효율성뿐만 아니라 정책이 어떻게 작동하고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가늠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치안은 단순히 ‘안전’을 넘어 시민의 삶의 질과 직결된 분야이기에 단 하나의 제도나 지침이 현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과거 경험은 현실적인 감각을 유지하는 데 밑거름이 되고 있다. 다만 늘 마음에 새기는 것은 ‘과거 방식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는 경계심이다. 익숙한 틀에서 벗어나 시민의 눈높이에서 새롭게 생각하고 더 유연하고 열린 자세로 소통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 어려움이나 제도적 한계는 무엇이었는지. 자치경찰제는 중앙 중심의 치안 체계에서 벗어나 지역 특성에 맞는 맞춤형 치안을 구현하겠다는 취지로 도입했다. 그러나 법적·행정적 권한이 여전히 제한적이다. 특히 예산과 인사 권한이 중앙에 집중되다 보니 위원회 차원에서 정책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데 제약이 따른다. 정책을 설계해도 실행 단계에서 경찰 조직과의 조율이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시간이 늦어지거나 현실과의 괴리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 또 하나는 시민과 일선 경찰의 제도에 대한 이해 차이가 있다. 시민 입장에서는 자치경찰이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고 경찰 내부에서도 종전 위계 구조와의 차이에서 오는 혼란이 있었다. 제도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선 인식 개선과 교육, 홍보가 지속적으로 병행돼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 ■ 인천만의 자치경찰 운영 특징이나 차별화 정책이 있다면. 인천은 도심과 농어촌, 원도심과 신도심이 공존하는 도시다. 이러한 생활권의 특성이 다양하고 복잡하다. 인천자치경찰위는 지역 맞춤형 치안 정책을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시민 참여 기반의 ‘우리 동네 교통 환경 개선 사업’이다. 이 사업은 지역주민과 공무원 등 현장을 잘 아는 분들로부터 직접 제안을 받아 이를 토대로 실제 교통안전 환경을 개선하는 시민 협력형 모델이다. 2024년에만 1천151건의 제안을 접수, 이 중 536건을 개선해 시민 체감도를 높였다. 올해도 3~6월 1천195건의 제안을 접수해 순차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 지역 특화 치안 정책에서 어떤 변화를 이끌었는지.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안심할 수 있도록 범죄 예방 환경 개선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원룸 밀집 지역이나 공원 산책로, 학교 통학로 등 지역 특성과 주민 수요를 반영한 맞춤형 환경 조성을 통해 체감 안전도를 높이고 있다. 주거 취약지에 대해서는 방범시설을 확충하고 범죄 취약 요소를 사전에 제거하는 방식으로 지속적인 개선 사업을 추진했다. 경인국철 1호선 부개역 일대에 조성한 ‘범죄안전 보행로’ 사업은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도 했다. 2023년 대비 올해 범죄 발생률이 25% 줄었고 112신고 건수도 14.4% 감소했다. 앞으로도 지역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범죄예방 대책을 추진할 계획이다. ■ 대표 정책이나 프로그램이 있다면. 먼저 생활안전 분야에서는 자율방범대 지원 사업을 중점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 총 6억9천800만원의 예산을 들여 안전 장비와 피복 구입비를 지원했다. 대원들이 해마다 들어야 하는 112시간 직무교육을 위해 1천400만원을 들여 교육 동영상을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정신질환 관련 범죄 대응도 강화하고 있다. 최근 고위험 정신질환자의 이상 동기 범죄나 응급입원 건수가 증가하면서 선제적 예방과 효율적인 대응을 위해 ‘정신응급 합동대응센터’ 운영을 시작했다. 고위험 정신질환자에 대한 위험성 판단과 치료 연계를 신속하게 추진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만 1천594건 중 882건이 입원 처리되는 등 전국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여성·청소년 보호 분야에서도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학교폭력은 경찰만의 대응으로는 한계가 있어 교육청 등과 협력해 ‘강당 순례’ 시책을 운영하고 있다. 각 기관이 학교 강당을 순회하며 학생들과 직접 소통하고 폭력 예방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운영 중이다. 이 밖에도 교통 분야에서는 ‘가시적 홍보 교통안전사업’ 등을 추진했다. 신호를 잘 지키는 양심 운전자에게 홍보물품을 제공하거나 고령자를 대상으로 음주체험 교육 등을 했다. 이와 함께 지난해 무인단속장비 29대를 새로 설치해 스쿨존 내 어린이 교통사고를 43.2% 감소시켰다. ■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중점적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과제나 계획은. 임기 동안의 경험을 통해 확인한 건 자치경찰제가 단시간에 완성되는 제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제도의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시민과 현장이 함께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만들기 위해선 지속적이고 점진적인 변화 축적이 필요하다. 그래서 앞으로 남은 기간 세 가지 과제에 중점을 두고자 한다. 첫째는 지역 맞춤형 치안정책의 고도화다. 지금까지 기반을 다지는 단계였다면 앞으로는 지역별 특성과 데이터에 기반한 정밀 치안정책으로 도약하려 한다. 예를 들어 도서지역은 순찰 공백을 해소하고 원도심은 취약계층 보호를 강화하는 등 맞춤형 치안 전략을 정교화할 예정이다. 둘째, 청소년·사회적 약자 보호 정책 강화다. 학교폭력과 디지털범죄, 위기청소년 발굴 같은 영역은 반드시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육청·복지기관과의 협력 체계를 강화하고 현장 경찰관의 대응 역량 교육도 확대하겠다. 셋째, 자치경찰제도에 대한 시민 체감도 제고다. 자치경찰이 시민 삶에 어떤 변화를 주는지 명확히 전달하고 자주 소통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시민 의견을 모으는 채널을 확대하고 생활 속 자치경찰 정책 홍보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궁극적으로는 “자치경찰이 있어 내 삶이 조금 더 안전해졌다”는 말을 듣는 게 목표다. 그동안 성과가 제도 정착의 초석이었다면 이제는 그 기반 위에 ‘지속가능하고 체감도 높은 변화’를 이뤄내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남은 임기 동안에도 초심을 잃지 않고 시민 안전과 현장 중심 행정이라는 2개 축을 끝까지 지켜나갈 계획이다. ■ 끝으로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지난 1년간 인천시 자치경찰위원회를 이끌면서 무엇보다 큰 힘이 된 것은 바로 시민들의 관심과 응원이었다. 자치경찰제가 인천에서 뿌리 내리고 성장할 수 있던 것은 시민 한 분, 한 분이 함께해 주셨기 때문이다. 안전은 결코 경찰 혼자서 만드는 게 아니다. 시민과 경찰, 지역사회가 함께 만들어 가는 공동의 가치다. 앞으로도 시민들과 늘 소통하며 더욱 안전하고 따뜻한 인천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시민들의 일상이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며 인천의 내일이 오늘보다 더 안전하고 희망차길 바란다.

류윤기 iH 사장 “신뢰·공감 가득한 공기업으로…인천시민과 함께 미래 만들 것” [인터뷰]

류윤기 인천도시공사(iH) 사장은 지난 4월1일 취임한 이래 ‘Global Top10 City를 위한 인공지능(AI) 미래도시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시민 중심의 책임 경영’에 중점을 두고 인천을 세계적인 도시로 발전시키기 위한 중추적인 역할을 해 나가고 있다. ■ ‘인천형 AI 혁신 미래도시’ 실현을 위한 네 가지 핵심 과제 마련 류 사장은 인천을 세계적인 도시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인천형 AI 혁신 미래도시’를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인천의 장기적 비전 설정, 원도심 활성화, 개발사업의 혁신, ESG경영을 통한 지속가능한 경영 실현 등 네 가지 핵심 과제를 실천해 나간다. 먼저 류 사장은 인천의 향후 20년 청사진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단기 성과가 아닌 미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20년 청사진은 미래를 준비하는 설계도이자 시민, 전문가, 기업 등 다양한 주체가 함께 공감하고 협력할 수 있는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류 사장은 신재생에너지 사업, 항공 운송수단 사업, 공원개발 사업 등 종전 사업 외 사업범위를 다각화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해 나간다는 구상이다. 또 류 사장은 인천지역 원도심 활성화를 통한 미래도시의 기반을 마련한다. AI 미래도시의 핵심은 기술, 사람, 도시의 조화다. 이 조화를 가장 먼저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이 원도심이며 류 사장이 목표로 하는 AI 기반 미래도시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신도심에만 국한된 발전은 도시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에 따라 류 사장은 원도심의 지역별 맞춤형 개발 전략을 수립할 계획이다. 그는 “원도심과 신도심 간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균형 있는 발전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천원주택 같은 인천형 주거복지 서비스를 고도화해 주거 취약계층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저출산 및 지방소멸 극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류 사장은 개발사업의 혁신을 통해 난개발을 방지하는 것은 물론 인천을 미래도시로 업그레이드시키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AI 스마트 건설 기술을 도입해 친환경 제로에너지 주택 등 미래주택을 건설하고 노후 임대주택을 재정비해 지속가능한 주거 환경을 조성해나갈 방침이다. 특히 장기간 중단되거나 방치된 현안 사업을 집중 관리해 원활한 사업 추진을 이뤄내겠다는 목표다. 끝으로 류 사장은 ESG 경영을 통한 지속가능 경영 혁신 등을 약속했다. 각종 공공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차별화한 안전관리를 통해 안전도시로 조성한다. 그는 “탄소중립을 위한 로드맵을 수립하고 인권경영을 강화하는 등 환경 및 인권 친화적 공기업으로 앞장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 인천 대규모 개발사업 통한 지역 주민 간 ‘상생적 가치 실현’ 목표 iH는 도시개발, 주택건설, 도시재생, 주거복지, 그리고 사회공헌까지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먼저 구월2지구 공공주택지구는 남동·연수·미추홀구 일대 약 221만4천여㎡(67만평) 규모의 부지에 주택 1만5천900가구를 공급하고 3만9천명의 입주민 생활 터전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지난 2023년 10월 지구 지정돼 2027년 착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사업은 구월 구도심과 남동산단간 물리적 단절을 해소하고 상업시설 및 교통시설이 접한 위치적 특성을 반영해 지역주민들의 주거 안정과 함께 도시의 균형 발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 류 사장은 이 같은 개발이 단순한 주택 공급을 넘어 인천을 상징하는 미래도시의 비전과 자연이 공존하는 안전한 도시공간을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계양테크노밸리(계양TV) 신도시 개발 사업은 ▲1만7천여가구의 주택을 공급해 안정적 주거환경 조성 ▲판교테크노밸리 대비 1.7배의 자족 공간을 만들어 첨단산업 육성 ▲여의도공원 4배 규모의 공원 녹지를 통해 시민들에게 쾌적한 공간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계양TV는 향후 인천의 첨단산업 육성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의 중심지로 작용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류 사장은 지속가능한 도시 환경 조성에 중점을 두고 개발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일대 교통망 확충 및 산업단지와 주거지역 간의 연계성을 강화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다. 올해 원도심 지역 핵심 개발 사업은 동인천역 일대 복합개발사업과 인천 내항 1·8부두 재개발 사업 등이다. 동인천역 일대 도시개발사업은 교통 요충지인 역세권에 새로운 활력소를 제공하는 중요한 사업이다. 지난해 11월 도시개발구역 지정 및 개발계획 고시를 마쳤으며 보상 절차를 마무리하는 대로 2026년 실시계획 인가 등 후속 절차 등에 나설 방침이다. 류 사장은 “인천시와의 협업을 통해 역세권 개발뿐만 아니라 주변 상권과 연계된 문화·상업시설 확충, 편리한 생활 인프라 구축 등을 통해 인천의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천항 내항 1·8부두 재개발사업은 오랜 기간 침체돼 있던 항만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프로젝트다. 문화와 관광, 상업시설이 어우러진 복합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민관 협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해양 친화적 디자인과 스마트 물류 시스템을 도입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항만·도심 융합형 도시로 만들 계획이다. 지난해 12월 해수부 및 공동사업시행자 간 실시협약을 맺었으며 올해 안에 실시계획 승인을 목표로 속도감 있게 사업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류 사장은 이 같은 다양한 사업을 통해 인천시민들이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주거 안정, 생활SOC 확충, 일자리 창출이 함께 어우러지는 종합적인 성과를 만들어내겠다는 각오다. 특히 류 사장은 이 같은 사업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지역주민과의 소통, 유관기관과의 협업 등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상생적 가치 실현을 중심으로 한 정책 기조를 이어가겠다”며 “시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지역 기반 신뢰받는 공기업’으로서의 역할을 더욱 공고히 하겠다”고 말했다. ■ 천원주택 등 확대 통한 ‘인천형 주거복지 서비스’ 고도화 류 사장은 인천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라고 지칭한다. 다만 신도심에 비해 원도심의 경우 역사적·문화적 유산 보호, 원주민의 복잡한 소유권 문제, 도시 계획의 제약과 규제, 경제성 및 개발 비용, 환경 및 교통 문제 등 여러 장애물이 존재해 개발에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류 사장은 이러한 수많은 제약이 원도심별로 상이하기 때문에 원도심과 신도심 간의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인천이 지속가능한 도시로 나아가기 위한 가장 큰 숙제라고 강조한다. 이에 류 사장은 인천형 주거복지 서비스의 고도화를 통한 서민주거 안정 및 저출산, 지방소멸 극복 방안 마련에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인천형 신혼부부 및 신생아 주거정책인 천원주택 입주자를 모집해 올 한해 총 1천가구를 공급할 예정이다. 천원주택은 하루 1천원, 즉 월 3만원의 임대료로 신혼부부, 한부모가정 등에 주택을 제공하는 정책이다. 류 사장은 “이 같은 천원주택은 단순한 임대주택이 아니라 신혼부부의 안정적인 주거권 보장을 통해 미래시대 인천의 지속가능한 도시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상징적인 주거복지 사업”이라고 말한다. 현재 iH는 천원주택 이외에도 영구·매입·전세·공공·민간임대·행복주택 등 약 1만6천가구에 이르는 다양한 유형의 임대주택을 지속적으로 공급하고 있으며 도시재생과 연계한 정주여건 개선에도 힘쓰고 있다. 류 사장은 “교통·경제·주거·문화 등 지역의 특성과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지역주민이 협력해 인천의 지속가능한 발전 방안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동시에 탄소중립, 스마트시티 등 환경과 기술을 접목한 지속가능한 도시개발 전략도 병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투명하고 효율적인 경영 운영…체계적인 조직문화 완성 류 사장은 iH의 재정건전성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iH의 올해 부채 규모는 6조205억원(부채비율 195.6%)으로 지난해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끌어내리는 등의 성과를 이뤄내기도 했다. 다만 구월2지구 등 여러 대단위 사업을 추진 중이어서 일시적인 부채비율 상승은 불가피하다. 사업 지연은 곧 비용의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에 사업의 적기 추진을 위한 부채비율의 안정적인 운영 등이 필요하다. 류 사장은 중장기 재무관리 계획을 수립하는 것은 물론 개발 계획의 신속한 사전 준비 절차 완료, 투자 우선순위 조정, 민관 협력 등을 통해 재정 리스크를 줄여 나갈 계획이다. 류 사장은 “공사의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업 구조를 다각화하고 리스크 관리를 철저히해 투명하고 효율적인 경영을 실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류 사장은 더 나은 iH를 만들기 위한 조직 내부 혁신 등에도 나선다. 류 사장은 “‘일하는 방식의 혁신’이 조직의 경쟁력을 좌우한다”고 말한다. 이에 iH 내부적으로 유연한 조직문화 조성과 디지털 역량 강화 교육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또 성과 중심의 공정한 인사 시스템을 통해 동기 부여와 책임 있는 조직문화를 함께 키워갈 방침이다. 그는 원활한 사업 추진은 직원들의 사명감과 책임감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고 직원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iH의 ‘적극행정 문화’를 정착시켜 나갈 계획이다. 류 사장은 “iH는 시민들과 함께 도시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공기업”이라며 “앞으로도 시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신뢰와 공감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도시, 더 나은 인천을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공간의 재발견_인천 연수구 ‘공원 속 작은도서관’

인천 연수구가 주민들의 독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마련한 공립작은도서관. 연수구 내 행정복지센터 다섯 곳과 공원 네 곳에 작은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그중 문화공원, 솔안공원, 해찬솔공원, 누리공원 내에 마련된 도서관을 통해 대형도서관과 차별화된 최대 60여평(214㎡) 남짓의 작은도서관이 갖는 특징과 장점을 알아본다. 아지트처럼 친근한 도서관 생활권 가까운 곳에 도서관이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집 가까이 도서관이 있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나 주민 생활과 밀접한 모든 곳에 대규모 공공도서관이 들어설 수 없는 노릇이다. 인천 연수구는 이런 아쉬움을 타개하기 위해 행정복지센터 다섯 곳과 공원 네 곳에 9개의 작은도서관을 조성해 운영 중이다. 옥련1동, 옥련2동, 송도2동, 송도3동, 연수1동 등 행정복지센터 내 작은도서관 외 공원에 마련된 작은도서관 네 곳은 도서관이 주는 무게감이나 부담감, 허물없이 들를 수 있어 가족단위 방문객이 많이 찾는다. 지역주민들의 생활밀착형 도서관이 되기 위해 2021년 연수동 소재 문화공원과 솔안공원에 작은도서관을, 2022년 송도동 소재 해찬솔공원과 누리공원에 작은도서관을 개관했다. 각 도서관은 작지만 차별성 있는 운영을 위해 특화 주제를 갖고 운영하고 있다. 문화공원 내 작은도서관은 지상 1층, 연면적 198㎡로 어린이 특화도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적한 서재 느낌을 살린 솔안공원 도서관은 지상 2층, 연면적 210㎡ 규모로 문학 특화도서관으로 조성됐다. 해찬솔공원 내 도서관은 지상 1층, 연면적 214.59㎡로 자연·환경 분야를 특화해 운영 중이고 2022년 3월 개관한 누리공원 작은도서관은 지상 1층, 연면적 176.4㎡ 규모로 한옥으로 조성된 건물과 어울리는 한국사 특화도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공원 내 위치한 작은도서관은 산책 및 나들이를 나온 인근 주민들이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가족단위 방문객들이 타 도서관에 비해 많은 편인데 젊은 부부와 어린 자녀들의 방문이 주를 이룬다. 상대적으로 청소년 및 노년층의 방문이 적은 편이어서 연수구도서관 관계자는 “청소년과 노년층이 도서관을 격의 없이 방문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풍부해진 도서관 인프라만큼 이용객도 늘어 일반적으로 규모가 큰 도서관은 형식적이고 조직적으로 운영되는 반면 작은도서관은 사서와 이용자가 한데 어우러져 함께 만들어 가는 공동체적 특성이 강하다. 실제로 작은도서관에 가보면 사서들이 동네 아이들 이름을 꿰고 있고 아이들도 스스럼없이 도서관에 들어와 노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 연수구도서관 관계자도 이 점을 작은도서관의 특징이자 장점으로 꼽는다. “작은도서관은 이용자들에겐 동네 아지트처럼 활용되기도 하고 근무하는 사서들은 주민들과 소통하며 도서관을 함께 가꿔가기에 또 다른 면에서 공공도서관의 성격이 극대화됐다고 볼 수 있으며 그 때문에 이용객과 직원 간의 유대감도 큰 편입니다.” 대형도서관이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문화·복지 측면을 강조하는 것처럼 작은도서관 네 곳도 특화 주제에 맞는 프로그램과 행사를 소규모로 운영해 이용자들의 참여와 방문을 독려하고 있다. 어린이 특화도서관인 문화공원 작은도서관은 초등 저학년생을 대상으로 한 ‘그림책으로 키우는 문해력’ 및 ‘진짜 진짜 재밌는 그림책 읽기 놀이’ 행사를 진행했으며 누리공원 작은도서관에서는 ‘신나는 한국사’, ‘고려에서 읽고·걷기·쓰기’ 등 한국사 특화 주제에 맞는 프로그램을 어린이뿐 아니라 성인을 대상으로 발굴해 운영하고 있다. 한편 공원 내 작은도서관의 장서가 다소 적은 것처럼 보여도 상호 대차를 이용해 원하는 도서가 비치돼 있는 연수구립공공도서관에서 원하는 도서관으로 신청해 대출할 수 있다. 연수구의 경우 2023년 6월 기준 20개 도서관이 상호 대차에 참여하고 있으며 공립작은도서관 네 곳도 이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다. 연수구도서관 관계자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연수구 주민들은 120만권의 책을 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관계자는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고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은 도서관이 지역주민들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증거”라며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많은 도서자료가 이용되길 바라고 앞으로도 책을 통해 지역주민들의 삶이 풍요로워지는 도서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우리나라 공공도서관 인프라에 대해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고 풍부해진 편”이라며 각자 거주지, 근무지 등 생활권의 도서관에 부담 없이 들러볼 것을 권했다. “꼭 책을 읽지 않아도 도서관은 생각보다 재미있고 다양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곳입니다. 주변의 도서관을 꼭 한번 방문해 보시길 권합니다.”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연민, 냉전의 흔적을 기록하다 [인터뷰]

1984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11년간 사진기자로 일한 박종우 작가는 우연히 히말라야에 다녀온 후 ‘이곳이 평생 작업의 바탕으로 삼아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티베트의 차마고도를 국내에 처음 소개하고 민간인으로서는 최초로 비무장지대(DMZ)를 촬영한 그의 이력은 다큐멘터리스트로서 자신이 주체가 돼 기록하는 행운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평생 기록하는 사람으로 살아온 그의 다음 기록은 무엇이 될까. 민간인 최초로 DMZ를 담다 6·25전쟁 정전 70주년인 지난해 7월 경기도박물관과 독일에서 박종우 작가의 DMZ 사진이 전시됐다. 분단이 만들어낸 현실과 미래를 담았다는 점에서 두 전시는 큰 의미를 가졌다. 독일 전시는 올해 3월까지 이어졌으며 이미 몇 년 전 독일 사진집 전문출판사 슈타이들을 통해 DMZ 사진집이 출판된 바 있다. 여전히 종전이 아닌 휴전 상태에 있는 남한과 북한 사이엔 휴전선을 기준으로 서해에서 동해까지 38도선을 따라 248㎞에 걸쳐 폭 4㎞의 DMZ가 설정돼 있다. 박종우 작가는 이 냉전의 흔적을 민간인 최초로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했다. 2009년 국방부 6·25전쟁 제60주년 사업단과 조선일보가 협약을 맺은 사업에 박 작가가 합류하면서 DMZ 촬영은 가속화됐다. “오랜 세월 인간의 출입이 제한된 곳이고 첨예한 군사적 대립이 있어 날이 서 있을 것 같지만 막상 DMZ에 들어가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냥 우리나라의 산과 들, 자연 그 자체였지요. 드문드문 부대와 초소가 있지만 생각한 것보다 훨씬 평온한 모습이었습니다.” 2009년 10월 촬영 제안을 받아 답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그해 12월부터 DMZ를 찍기 시작한 박종우 작가는 DMZ 작업 중 GP(Guard Post·최전방 감시초소)를 기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다. “GP 개수 자체는 군사기밀인데 2009~2010년 당시엔 80~90개로 추정되는 상황이었어요. 국방부의 특별 허가에 따라 그곳을 다 찍을 예정이었고 물론 촬영 후 국방부 확인을 받기로 돼 있었죠. 2009년 12월부터 석 달 동안 GP 10개 정도를 방문했는데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GP에 진입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가을까지 6개월여 DMZ 철책 밖을 찍으며 상황이 나아지길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상황이 좀 누그러져 국방부에서 GP에 대한 재허가가 났는데 다시 GP에 들어가기로 한 사흘 전인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사건이 일어났습니다.” 2009년 10월부터 준비한 DMZ 촬영은 그렇게 끝났다. 작업을 아예 못한 것은 아니지만 개인 작업도 포기하고 매달린 프로젝트 치곤 미진한 1년이었다. 군 헬기를 타고 DMZ를 왕복하며 사계절을 담기로 한 계획도 가을 촬영 한 번으로 만족해야 했다. 전쟁의 흔적과 삶의 흔적 박종우 작가가 기록하는 전쟁의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땅에서는 보이지 않던, DMZ 상공에서 발견한 어떤 구조물을 최근까지 사진으로 담고 있다. “군 헬기에서 DMZ 풍경을 담을 때 처음 보는 구조물이 눈에 띄었습니다. 군인들에게 물어보니 ‘대전차 장애물’이라고 하더군요. 6·25전쟁 당시 북한군이 탱크로 서울까지 밀고 들어왔죠. 우리 군은 탱크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을 수밖에 없고, 탱크를 막는 것이 국방의 주요 과제였습니다. 그래서 서울 북부에 있는 웬만한 국도와 하천변, 해안에 탱크 저지선인 용치 등 대전차 장애물을 설치해 놨습니다.” 세월이 흘러 전쟁의 모습도 바뀌었고 대전차 장애물도 무용지물이 됐다. 도로 건설 때마다 걸림돌이 되고 홍수가 나면 떠내려가기도 하는 대전차 장애물은 우리 시대 흉물 취급을 받고 있다. “지자체에서는 없애고 싶고, 군에서는 쉽사리 없애지 못하는 현실인 거죠. 최근 독일에 방문했을 때 알게 된 사실인데 이런 전쟁의 흔적은 독일을 비롯한 영국, 네덜란드, 폴란드, 이탈리아, 스위스 등 전쟁을 겪었거나 위협이 있던 유럽 대부분 나라에 산재합니다. 나라마다 생김새도 다르고 형태고 다른데 영국은 탱크를 막겠다고 몇천 ㎞에 달하는 해안선에 대전차 장애물을 설치했어요. 지금 보면 어리석은 생각이기도 하지만 전쟁과 침략에 대한 공포가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습니다.” 신문기자 출신인 그가 회사를 나와 다큐멘터리스트로 전환한 후 세계 오지를 탐사하며 사진과 영상을 남기는 궁극적인 목적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연민 때문이다. 서울, 부산 등 국내 도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기록하며 지금은 지나치는 것들을 훗날의 사람들에게 남기고자 한다. “중학교 때 처음 사진을 배웠는데 그땐 처음이니까 창경궁도 찍고 석조전도 찍고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어요. 당시 우리 집이 서대문 근처였는데 집 앞에 서울의 마지막 대장간이 있었어요. 기둥에 말과 소를 묶어두고 말굽을 갈거나 박는 작업을 서울 한복판에서 볼 수 있었는데 사진을 한 장도 남기지 않은 것이 무척 아쉽습니다. 그땐 너무 익숙했고 그런 일상이 영원할 줄 알았어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훗날 후회하지 않게, 사라지는 것들을 기록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지구'가 남긴 발자국을 쫓는 ‘지구프로파일러’ [인터뷰]

과학커뮤니케이션은 1980년대 유럽에서 시작했다. 1986년 영국에서 처음 발견된 광우병 파동으로 인해 대중은 과학에 대한 신뢰를 잃었고, 그 즈음 유럽의 과학자들과 지식인들은 어떻게 하면 과학 이슈를 대중에게 더 쉽게 전달할지 고민했고 이러한 배경에서 ‘과학커뮤니케이터’라는 직업이 탄생했다. 국내에서 과학커뮤니케이터를 발굴한 지 10년, 최근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과커 지구씨는 “과학에 대한 관심은 깊이를 떠나 자주 회자되고 대화의 소재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지구를 이해하기 위한 학문 영국의 첼튼엄에서는 매년 6월 과학 축제가 열린다. 2002년 시작된 ‘첼튼엄 과학축제’는 과학·수학·공학 분야를 주제로 한 강연 위주로 진행되는데 일주일 남짓한 축제 기간 매일 수십 개의 강연이 열리며, 대중과 과학자 간 소통의 장이 마련된다. 그리고 이 축제에서 세계 최대 과학커뮤니케이터 발굴 대회 페임랩(FameLab)이 열린다. 우리나라에서도 2014년부터 페임랩코리아를 개최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고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주관하는 이 대회는 매년 본선 진출자 10명을 과학커뮤니케이터로 위촉하고 수상자에겐 영국 페임랩 국제대회 참가 및 참관 기회를 제공한다. 과학커뮤니케이터 지구씨도 2021년 페임랩코리아를 통해 과학커뮤니케이터가 됐다. 과학커뮤니케이터로 활동을 시작한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설문을 통해 정해진 활동명 ‘지구’는 어쩌면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구씨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선 과학탐구 선택과목 중 물리·화학·생물 등 세 과목만 가르쳤다. 그러던 중 지구씨는 우연히 EBS 인강을 통해 지구과학에 빠졌다. “공부가 너무 하기 싫은데 하는 척은 해야겠고, EBS 인강을 뒤적이다가 지구과학은 뭘 배우나 보다가 빠져들었습니다.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만 하는 성향이 아주 강한 편인데, 그날부터 정말 지구과학만 공부했어요. 혼자 문제집 사다가 풀고 모의고사 때도 전교생 500여명 중 저만 지구과학을 선택해 맨날 1등이었죠(웃음).” 그렇게 지구과학에 스며든 지구씨는 대입을 앞두고 하고 싶은 공부와 취업이 잘되는 전공 사이에서 고민했고 후자를 택해 수도권에 있는 공대 토목환경공학과에 진학했다. “한 학기도 다니지 못하고 자퇴했지만 잠깐 경험한 토목공학은 인간 중심의 학문으로 느껴졌어요. 어떻게 하면 인간이 편한 대로 자연을 변화시키고 발전시킬지를 연구하는 학문 같았죠. 이걸 전공해 평생 직업으로 삼고 싶진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지구씨는 원래 하고 싶었던 공부, 지질학을 택해 강원대에 입학했다. 멀쩡히 잘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지방으로 지질학을 공부하러 가겠다고 하자 주변의 만류는 컸지만 지구씨는 학부 시절 4년이 가장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통상적으로 지질학이라고 불리는 학문은 사실 지구물리학, 지구화학, 지구생물학 등 여러 학문으로 세분화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중 암석지구화학을 전공했는데요. 암석의 구성 성분을 통해 그 암석이 있던 지역의 역사와 땅을 이해하는 연구를 합니다. 암석을 분석하면 우리가 일기장에 날짜를 적듯이 암석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작용에 의해 변화를 겪었는지 등을 알 수 있습니다.” 기후변화가 만들어 낸 ‘돌’ 지구씨의 충남대 대학원 석사 시절 쓰시마섬에 있는 화강암류 및 휘록암 등 암석을 분석, 동해 형성 과정을 연구했다. 돌 연구는 우선 돌을 망치로 깨 샘플을 확보한 다음 두 가지로 분류한다. 첫 번째 샘플은 얇게 저며 현미경으로 보고, 두 번째 샘플은 완전히 갈아 가루로 만들어 최대한 균질한 평균값에 맞춘 후 산(acid)에 여러 과정을 거쳐 녹인다. 납, 아연 등 원소별로 분리해 질량분석기에 넣고 암석을 구성하고 있는 각 원소의 비율을 알아낸다. 이 비율을 알면 암석이 어떤 환경에서 만들어졌는지 파악할 수 있다. “질량분석기가 개발되기 전까지는 암석 연구 시 얇게 저민 돌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게 전부였습니다. 기초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지구를 연구할 수 있는 폭이 더 넓어지고 지구에 대해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더 많아진 거죠. 지질학은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을 알아가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꼭 필요한, 그리고 아주 흥미로운 학문입니다.” 지구가 쌓아온 흔적을 통해 지구를 알아가는 학문 지질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주제가 ‘기후변화’다. 지구씨도 암석을 연구하다가 우연히 본 돌 사진 한 장을 계기로 기후변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저는 웬만한 암석 사진을 보면 무슨 돌인지 이름을 댈 수 있다고 자부하거든요. 나름대로의 재주인데(웃음). 사진 속 돌은 아무리 봐도 뭔지 모르겠더라고요. 알고 보니 플라스틱이 햇빛에 녹았다 굳었다를 반복한 결과물이었어요. 장한나 작가가 진행한 ‘new rock’ 프로젝트 작품이었는데 지질학적으로도 맞는 말이에요. 200년 전에는 있을 수 없는, 현대의 새로운 유형의 돌인 거죠. 이 사진을 계기로 지구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내가 그동안 기후변화에 대해 소홀했던 걸 반성했어요. 이건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는 일이라는 판단에 강연 주제로 기후변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지구씨는 기후변화 대응에 대해 “늦었다 혹은 늦지 않았다고 고민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노력하면 나아질지, 해결될 일일지 고민하기보다는 무조건 해야 하는 행동이라는 것. “지구 역사에서 생물들이 대량으로 빠른 시간 안에 사라진 것을 ‘대멸종’이라고 합니다. 대부분 기후변화에 의한 것이었는데 지구의 생명체들은 본인이 살던 최적의 환경이 변하면 생존이 힘들어져요. 우리는 지구의 역사를 통해 그 위험성을 알고 있고 더 큰 위기가 오기 전에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해결이 개인의 실천 없이 과학 기술만으로는 불가능해요. 개개인의 텀블러 사용이 당장은 큰 영향력이 없어 보여도 거의 모든 사람이 텀블러를 사용하면 정치인들에겐 환경을 외면할 수 없는 무언의 압박, 상징이 될 겁니다.” ‘실패해도 괜찮은’ 과학 지구씨는 대학원 졸업쯤 천문연구원 홍보팀에 입사했다. 얼핏 행정직으로 과학과는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지구씨는 연구원 홍보팀이 하는 일이 과학커뮤니케이터 역할이라고 말한다. “천문연구원 연구 성과를 대중에게 쉽게 알리기 위한 굿즈 개발, 유튜브 제작 등이 저의 주요 업무였는데 정말 열심히 했어요. 연구원의 연구 내용을 활용해 2주간 직접 기획하고 밤도 새워 가며 보드게임을 만들었고 지금도 천문연구원 굿즈로 쓰이고 있습니다. 천문연구원에 재직하면서 천문학으로 발을 넓히는 계기가 된 점도 저에겐 큰 수확입니다.” 한편, 지구씨는 우리나라 헌법 127조 1항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는 조항을 언급하며 “‘과학=경제발전’으로 귀결되는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발전을 전제로 과학에 접근한다면 ‘블랙홀 연구해 우리나라 경제가 얼마나 좋아지냐’는 질문에 아무도 답하지 못할 거예요. 그런데 관측이 어려운 블랙홀을 연구하려다 보니 잡음은 제거하고 신호는 강하게 하는 방법을 연구하다가 와이파이를 개발하게 됐고 MRI를 만들게 된겁니다. ‘첨단(尖端)’, 즉 지식의 끝에 있는 분야들은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미리 가치를 논할 순 없어요. ‘실패해도 괜찮은’ 경제 너머 과학의 가치가 존중되길 바랍니다.”

바리스타 서수민, 고요 속 커피로 세상과 소통하다 [인터뷰]

유아교육을 전공한 서수민씨는 유치원 교사가 꿈이었다. 교사가 되기 위해선 졸업 전 현장 실습이 필수였는데 서씨는 청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실습할 유치원을 찾지 못했고 그렇게 졸업했다. 유치원 교사는 되지 못했지만 커피에 꿈을 담아 바리스타가 된 서씨. 청각장애인 바리스타 서수민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커피 잔에 담긴 이야기 지난해 9월 2일 서울 강남구청에서 열린 2023년 제5회 청각장애인 바리스타 전국대회에서 서수민씨(29)가 1위를 차지했다. 서씨는 청음복지관의 ‘직업적응훈련 커피전문가 양성과정’ 프로그램에 참여해 교육 수료 후 바리스타 2급 자격을 취득했다. 서씨는 커피를 업으로 삼아 일한 지 5년 차에 자신의 실력을 점검해 보고자 대회에 참여했다. 라떼아트를 두고 경연했는데 예선에 40여명이 참가했고 본선에 최종 12명이 선정됐다. 1, 2차는 토너먼트 형식으로 진행됐으며 3차전에 진출한 최종 3인에 대해선 점수를 매겨 순위를 가렸다. “라떼아트 대회여서 더욱 참가를 결심했어요. 제가 워낙 라떼아트 하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이 있는 편이거든요. 대회 참가만으로도 얼마나 성장했는지 확인하는 의미가 있었는데 우승까지 해 무척 기뻤습니다.” 2018년부터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자격을 취득한 서씨는 한미약품 사내 카페 ‘The H’에서 3년째 바리스타로 근무 중이다. 자격 취득 후 다른 카페에서 일한 경험이 있긴 하지만 장애를 이해하지 못하는 동료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우선 The H 카페는 같은 청각장애인 바리스타들과 일하고 있어 서로 잘 이해하고 어려운 점은 소통하며 해결해 나가고 있습니다. 과거 일하던 카페에선 동료나 매니저가 장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나머지 모진 말을 해 상처를 받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그저 지나간 일로 여기고 좋은 동료들과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현재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카페에서 일하던 초기엔 손님의 주문 내용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일이 잦았다. 그러나 바리스타들을 배려해 펜과 메모지를 구비해 뒀고 요즘은 키오스크로 주문을 받다 보니 한결 수월해졌다. “어린 시절부터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냉대를 겪다 보니 사실 일하기 전부터 불안함이 적지 않았습니다. 잘할 수 있을지, 주문받는 데 실수하지는 않을지,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싫어하진 않을지…. 하지만 다행히 많은 분들이 청각장애인이라는 점을 이해해 주셔서 종이 주문서도 꼼꼼히 작성해 주시고, 크고 작은 배려를 해주세요. 그 덕에 바리스타의 꿈을 차곡차곡 쌓아갈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의 가장 큰 힘 어려서부터 아이들을 좋아했던 서씨는 유치원 교사가 되고자 유아교육을 전공했다. 유치원 교사가 되기 위해선 졸업 전 현장 실습이 필수인데 서씨를 받아주는 유치원은 없었다. 청각장애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아이들에게 삶의 지혜를 나누는 나침반이 되고 싶단 생각에 유치원 교사를 꿈꿨습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실습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아 당시엔 참 많이 힘들고 속상했던 기억입니다. 다른 꿈을 가질 수 있을까 고민도 많았어요.” 그 무렵 막막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찾은 카페에서 서씨는 우연히 새로운 꿈을 발견했다. “머리도 식힐 겸 예쁜 카페에 다니는 것이 취미였는데 어느 날 ‘이거다’ 싶었어요. 몸과 마음이 지친 분들이 맛있는 음료 한 잔에 행복해하는 모습에 나도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인을 통해 청음복지관에서 바리스타 교육과 취업 연계, 바리스타 대회 등 다양한 지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서씨는 그 길로 청음복지관의 문을 두드렸고 지금껏 도움을 받으며 바리스타로 성장했다. 청음복지관은 고(故) 운보 김기창 화백이 1985년 설립한 국내 최초 청각장애 복지관으로 청각장애인이 좀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과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바리스타 대회 이후 청음복지관은 우승자 서씨에게 세계 라떼아트 경연대회 WLAB(World Latte Art Battle) 출전을 지원했다. 비장애인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당당히 겨룰 수 있도록 강사 섭외, 제반 비용, 대회 접수 등을 도왔으나 결과는 아쉽게도 예선전에서 탈락했다. “카페에서 일하고, 대회에 참가하면서 커피를 더 잘 알고 싶고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어요. 올해 3월부터 청음복지관에서 진행하는 ‘청각장애인 바리스타 역량강화 지원사업’에 참여해 바리스타 1급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세계대회에서도 성과를 거두고 더 큰 세상에서 인정받는 바리스타가 되고 싶습니다. 제 이름을 건 저만의 카페를 운영하는 것도 먼 미래의 꿈이에요” 냉혹한 현실 속에서 새로운 꿈을 찾아 씩씩하게 삶을 살아내고 있는 서씨는 힘든 순간을 겪을 때마다 위로가 되는 존재들을 떠올리며 힘을 얻는다. “힘들 때마다 응원해주는 사랑하는 가족, 주변 사람들이 저의 원동력이 되고 디딤돌이 돼요. 어렵게 품은 꿈을 포기하지 말길, 꿋꿋이 나아가길 제 자신과 모두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도시 숲을 돌보는 ‘나무의사’를 아시나요?

공원에, 아파트 단지 안에, 가로수로 식재돼 있는 나무들은 과연 누가 관리할까. 도심 속 숲과 공원이 늘어나는 만큼 나무들이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선 정확한 판단과 진료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무를 전문적으로 진단하고 진료하는 ‘나무의사’ 제도가 도입됐다. 도시숲은 선택이 아닌 필수 2만명 이상 거주하는 행정구역 내에 조성된 숲을 ‘도시숲’이라고 한다. 산림청에서는 ‘도시에서 국민의 보건·휴양 증진 및 정서 함양과 체험활동 등을 위해 조성·관리하는 숲(산림과 수목)’으로 규정하며 도시숲을 생활숲, 가로수 등과 함께 분류하고 있다. ‘도시숲’은 ‘자연공원법’에 따른 공원구역, 즉 국립공원·도립공원 등과 구분되고 있어 그야말로 도시에 조성된 숲과 공원을 가리킨다. 도시숲의 기능은 크게 ▲기후보호형 ▲경관보호형 ▲재해방지형 ▲역사·문화형 ▲휴양·복지형 ▲미세먼지 저감형 ▲생태계 보전형 등으로 나뉜다. 폭염·도시열섬 등 기후여건 개선, 심리적 안정감과 시각적 풍요로움 기대, 소음·매연 등 공해 완화, 미세먼지 등 오염물질 차단 및 흡수, 생태계와의 조화 등 도시숲의 역할과 기능은 다양하다. 경기도는 지난해 9월 2024년도 ‘기후대응 도시숲 조성사업’에 국비 47억원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산림청 공모에 선정된 대상지는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 일원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 일원 ▲부천시 오정동 일원 ▲남양주시 진접읍 일원 ▲안산시 단원구 성곡동 일원 ▲평택시 포승읍 일원 ▲파주시 월롱면 일원 ▲연천군 전곡읍 일원 등 8개 시·군 8개소다. 이곳에는 생활권 미세먼지 확산 차단을 위해 9.4ha 규모의 숲이 조성될 예정이다. 수목진료는 ‘나무의사’에게만 맡기세요 한편 ‘나무의사’ 제도는 산림보호법 개정안 발의에 의해 2016년 신설됐다. 직장과 생활권의 도시숲이 늘어남에 따라 올바른 나무 관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의해 생겨난 제도로 2018년 6월 신규 도입됐다. 2018년 나무의사제도 도입에 따른 갈등과 혼선을 최소화하기 위한 경과조치로 5년간 시행하던 유예기간이 지난해 6월 28일 종료되면서 나무의사제도가 본격 시행됐다. 나무의사제도가 도입되기 전 아파트 단지나 학교, 공원 등 생활권 수목 관리는 실내소독업체 등 비전문가들이 주로 시행했고 그로 인해 농약의 부적절한 사용 등 국민안전과 수목 환경을 위협하는 부작용이 빈번했다. 이에 따라 수목 피해를 진단·처방하고 그 피해를 예방하거나 치료하기 위한 모든 수목진료 활동은 나무의사와 수목치료기술자 두 종류의 국가전문자격자를 보유한 1종 나무병원에서만 수행할 수 있게 됐다. 산림청은 수목진료 분야의 전문성과 교육 인프라 확보 등을 심사해 양성기관 15곳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대 식물병원 ▲(사)한국수목보호협회 ▲신구대 식물원 ▲경상대 수목진단센터 ▲경북대 농업생명과학대학 ▲전남대 산학협력단 ▲충남대 수목진단센터 ▲강원대 수목진단센터 ▲충북 산림환경연구소 ▲전북대 산학협력단 ▲공주대 산학협력단 ▲국민대 산학협력단 ▲국립안동대 산학협력단 ▲동아대 융합디자인연구소 ▲순천대 산학협력단 등이다. 나무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수목진료와 관련된 학력,자격증 또는경력 등의응시자격을 갖추고, 양성기관에서 150시간 이상의 교육을 이수한 뒤 국가자격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나무의사 자격시험은 1차(선택형 필기)와 2차(서술형 필기 및 실기)로 이뤄져 있으며 1차 시험에 합격해야 2차 시험 응시 자격이 주어진다. 1차 시험은 수목병리학·해충학·생리학·토양학·관리학 등 5과목에서 각 100점 만점 기준 과목당 40점 이상, 전 과목 평균 60점 이상 득점해야 합격으로 인정된다. 2차 시험은 서술형 필기와 실기로 이뤄지며 각 100점 기준 과목당 40점 이상 전 과목 평균 60점 이상을 얻어야 합격한다. 나무의사 제도 도입 이후 2022년 7월 기준 나무의사 742명이 배출됐으며 나무병원은 전국에 2024년 기준 808개소가 운영 중이다. 계속되는 기후변화 영향에 따른 돌발 병해충 발생률이 증가함에 따라 농경지 및 산림지역 외에 생활권에 해당하는 아파트 단지, 공원, 가로수까지 피해가 번지고 있어 이를 막기 위해 나무의사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또 탄소배출 저감을 위한 다양한 과업 중 도심 수목 관리는 나무병원과 나무의사가 주도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핵심 과제 중 하나다. 이에 나무의사의 종합적이고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오늘도 쓰레기 잘 버리셨나요?' 환경인플루언서 홍다경 [인터뷰]

1997년생 환경인플루언서 홍다경씨는 매일이 바쁘다. 불러주는 곳은 없어도 찾아갈 곳도, 만나야 할 사람도 많다. 어떻게든 환경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이 하는 일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책도 쓰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도 열심이다. 개인 유튜브 채널 ‘청년환경운동가 홍다경’도 운영하며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진 진정한 환경 ‘인플루언서’가 되길 꿈꾼다. 환경과 나, 운명인가? 청년동아리 ‘지구를 지키는 배움터’(이하 지지배)의 대표이자 환경인플루언서로 활동하고 있는 홍다경씨의 환경 사랑은 2016년 뉴질랜드에서부터 시작된다. 고등학교 졸업 후 지구시민 발런티어(봉사활동)를 위해 떠난 뉴질랜드는 초원과 바다가 넓게 펼쳐진, 그야말로 천혜의 자연이 살아 숨 쉬는 나라였다. 그러나 환상은 곧 깨졌다. “우연히 들른 식당에서 현지 주방장이 음식물과 일반쓰레기를 분리하지 않고 한꺼번에 버리는 모습을 목격했어요. 온갖 보디랭귀지를 섞어 가면서 왜 분리하지 않는지 물었는데 그 사람의 답을 듣고 잠시 멍해졌죠.” 주방장은 “이렇게 버리면 바다로 간다”고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홍씨는 ‘쓰레기를 바다로 버리는’ 현장을 본 것에 충격을 받았다. 현지 주방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뉴질랜드에서는 여태껏 쓰레기를 바다에 버리고 있었겠구나’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1년간의 뉴질랜드 생활을 마치고 홍씨는 대구에 사는 부모님을 떠나 서울에 자리 잡았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급선무였는데 마침 발견한 서울시 청년 일자리 공공근로에 지원했다. 그리고 여기서 또 한번 운명처럼 환경과 만났다. “참 신기하게도 저에게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청소 일이 배정됐어요. 보통 공공근로 청년들은 주민센터 단순 사무보조나 민원 안내 업무를 하는데 말이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5시에 일어나서 어르신 근로자 한 분과 함께 200여명이 근무하는 사무실을 청소했습니다. 몸은 정말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큰 공부가 됐어요. 회사에서는 분리배출을 어떻게 하는지도 알게 됐고, 청소 직원이 열심히 쓰레기를 분리해도 선별장 수거 과정에서 다시 섞인다는 것도요. 쓰레기가 제대로 버려지려면 개개인 모두가 환경에 대한 인식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쓰레기 만들지 마세요! 2018년 중국에서 쓰레기 수입을 금지하면서 전 세계 재활용 시스템이 큰 충격을 받았다. 우리나라 역시 ‘쓰레기 대란’ 사태가 벌어졌고 그제야 정부와 시민들은 쓰레기에 관심을 갖게 됐다. 지지배 동아리 활동을 하며 지속적으로 환경운동에 목소리를 내오던 홍씨도 문득 ‘내가 분리해 내놓은 재활용 쓰레기가 제대로 재활용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래서 전국의 쓰레기 선별장, 소각장, 매립지 현장에 가보기로 했다. 혼자서. “선별장, 소각장, 매립지는 대부분 사람들이 살지 않는 외곽 지역이 많아 대중교통으로 가는 건 한계가 있겠더라고요. 급한 대로 부모님과 가기도 하고, 차가 있는 친구와 움직이기도 했어요. 또 지지배 활동에 관심을 갖고 계시던 분들, 저의 이야기를 들은 선별장 사장님 등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 한 달 정도 각 지역의 재활용 선별장과 매립지를 돌아다녔습니다.” 홍씨는 더운 여름 전국의 쓰레기장을 찾아다니며 분리배출의 중요성과 자원순환의 필요성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러나 최고의 대안은 ‘소비를 줄이는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쓰레기를 잘 분리해 버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쓰레기를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걸 절실하게 느꼈어요. 그러기 위해선 소비 형태도 바뀌어야 하고요. 최근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는 리사이클링 및 업사이클링 제품을 쓰거나 제로웨이스트숍도 더 늘어야 하고요. 무엇보다 이러한 제품이나 가게가 많아지도록 대기업의 관심과 참여가 많아지길 바랍니다.” ‘선거 마무리는 수거’ 최근 홍씨의 관심사는 선거 공보물과 현수막이다. 2022년 6월 있었던 지방선거 때부터 ‘선거 마무리는 수거’라는 타이틀을 갖고 선거운동 때 발생하는 폐기물을 잘 처리하도록 당사자들에게 의견을 전하고 있다. 그중 첫 행보는 지방선거 후보자들에게 당사자들의 공보물을 보내는 일이었다. “2022년 6월 지방선거가 끝난 후 전국 후보자들이 뿌렸던 명함, 전단 등 공보물 1200여장을 수거했어요. 함께 활동하는 지지배 회원들과 하나하나 분류해 그해 연말 43명의 당사자들에게 우편으로 보냈습니다. 그중 소수 정당 두 곳에서 ‘쓰레기 없는 선거 만들겠다’는 답변이 왔죠. 아직 반응은 미미하지만 ‘제로웨이스트 선거운동 캠페인’은 지속적으로 할 계획입니다.” 홍씨와 함께 지지배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원종준씨가 주도한 이 캠페인의 골자로는 현수막 철거와 관련해 공직선거법 제276조 현 ‘지체없이’를 ‘3일 이내’로 개정해 철거 의무화를 강화하고 유권자로 하여금 공보물 받는 형식을 지금처럼 종이로 받을지 온라인으로 받을지 선택할 수 있게 하자는 내용이다. “이 사안에 대해 저희의 최종 목표는 입법을 통해 법이 바뀌고 친환경 선거가 되는 것입니다. 지난해 11월 30일 ‘시군구 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일 후 현수막 미철거 단속 소홀에 대한 감사청구 연명서’를 감사원에 제출하는 것으로 활동을 시작했고요. 저희의 작은 목소리가 4월에 있을 총선 후를 조금이라도 바꾸길 기대합니다.” 홍씨는 “최근 환경 관련 콘텐츠가 많아지고 관심이 늘면서 오히려 시민들은 무감각해지고 있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 환경 문제가 익숙해지고 그만큼 피로감이 커졌다는 것. 지지배 커뮤니티에서 진행하는 플로깅 등 쓰레기 줍기 모임에도 20~30명씩 참여하던 인원이 요즘엔 10명 남짓으로 줄었다. “환경이야기가 피곤하고 듣고 싶지 않아진 탓이겠죠. 그런데 이런 때일수록 개개인이 더욱 관심을 갖고 힘을 내야 합니다. 현재가 힘들어 외면할수록 앞으로 기후위기는 더 심각해지고 삶의 질도 더욱 떨어질 테니까요. 저 역시 현실이 불안하기만 한 청년 환경운동가이지만 끝까지 버티겠습니다.”

오롯이 음악과 하나되는 시간, 의정부음악도서관

‘당신이 절대적으로 알아야 할 유일한 것은 도서관 위치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이다. 경기도 최초 도립도서관인 경기도서관이 2024년 12월 준공될 예정인 가운데 막상 우리 가까이에 있는 ‘동네’ 도서관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반세기 동안 군사도시 역할을 수행한 의정부시가 ‘책 읽는 도시’로 변모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의정부음악도서관을 시작으로 우리 주변의 도서관과 그 지역의 특색 있는 독립서점을 소개한다. 군사도시에서 문화도시로의 전환, 의정부음악도서관 “우리 집 가까이에도 음악도서관이 있으면 좋겠다”, “근처 사는 주민들이 정말 부러운 시간이었다” 등 의정부음악도서관을 다녀간 방문객들의 리뷰는 대부분 칭찬과 부러움의 글이다. 2021년 6월 3일 개관한 의정부음악도서관은 연면적 1천691.27㎡, 지상 3층 규모로 도서 9천571권, CD 6천519점, LP 1천288점, DVD 1천55점, 악보 3천170점 등 다양한 음악 자료를 시민이 향유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의정부시가 특화도서관을 기획하게 된 계기는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의정부시는 의정부정보도서관을 건립하면서 명칭에 걸맞은 전자태그(RFID) 시스템을 갖춘 최첨단 공공도서관을 개관했다. 2007년에는 과학도서관과 의정부어린이도서관을 오픈하며 공공도서관 3개 관과 시에서 직영하는 도서관 14개소를 하나로 통합하는 시스템을 구축했고 2008년부터는 직영 17개 도서관을 하나의 도서관처럼 이용할 수 있는 상호대차서비스를 시작했다. 이후 45만 인구 대비 공공도서관 인프라가 부족하다고 판단한 의정부시는 2010년 도서관 확충 사업을 시의 주요 정책으로 추진했다. 여기에 반세기 동안 군사도시의 역할을 수행한 의정부시의 이미지를 탈피할 만한 문화시설 확충이 필요하 다는 판단이 더해졌다. 이에 의정부시는 2015년 지금의 부지에 도서관 건립 계획을 수립하고 2017년까지 3회에 걸쳐 인근 시민들을 대상으로 원하는 도서관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시민들의 선호도와 지역적 여건 등을 고려해 음악 분야 특성화 도서관 건립을 결정했는데 이는 기존의 의정부음악극축제와 블랙뮤직페스티벌이라는 의정부만의 음악적 문화 자산을 확장·재해석한 의미도 담겨 있다. 의정부음악도서관은 음악 중에서도 ‘블랙뮤직’을 모티브로 공간을 디자인했다. 블랙뮤직이란 재즈, 블루스, 가스펠, 솔(soul), 리듬 앤드 블루스(R&B), 힙합 등 20세기 이후 서양 대중음악의 원천이 되는 장르를 통틀어 일컫는 말로 미군부대 주둔의 영향으로 자리 잡은 문화를 의정부시만의 차별화된 콘텐츠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음악을 읽고, 듣고, 체험하다 의정부음악도서관에 들어서면 1층 정면에 팝, 케이팝, 재즈, 힙합 관련 음반과 서적이 진열돼 있어 음악도서관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1층 북스테이지는 일반도서, 어린이도서, 음악전문도서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도서를 비치해 가족이 함께 같은 층에서 독서를 즐길 수 있도록 꾸몄다. 이 모든 공간에 구획을 나누지 않아 경계 없이 자유롭게 책을 읽고 음악을 들을 수 있으며 한쪽에 비치된 그랜드피아노를 활용해 1층은 소규모 공연장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M층은 1층 천장이 뚫려 있는 메자닌(Mezzanine) 구조의 중층으로 음악 입문자와 연주자를 위해 악기별로 나눠 놓은 악보 코너가 가장 핵심이다. 이곳엔 난이도별로 다양한 악보가 구비돼 있으며 독주 악기를 위한 악보 외에도 오케스트라 총보 등 평소 접하기 어려운 악보들이 마련돼 있다. 악보 외에도 음악에 관한 고전문학, 시, 매거진 자료가 있으며 M층 벽면 미디어 월에는 20회를 넘은 ‘의정부음악극축제’와 3년째 개최하고 있는 ‘블랙뮤직 페스티벌’에서 축적한 데이터를 모두 디지털화해 보관하고 있다. 3층 뮤직스테이지는 의정부음악도서관의 정체성,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뮤직홀은 스타인웨이 앤드 선즈(Steinway&Sons)의 자동 연주 피아노 스피리오(Sprio) 모델이 들어서 있는 공연장이다. 마침 취재 당일 매달 1회 진행하고 있는 ‘사서와 함께하는 도서관 투어’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뮤직홀의 고품질 음향을 경험하도록 음악이 극대화된 영화와 연주를 체험할 수 있었다. 도서관 투어가 없는 날에도 이곳은 상시 열려 있으며 매일 오후 1시간씩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통해 자동연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오디오룸은 보다 온전히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다양한 오디오 기기와 스피커가 설치돼 있어 최적의 환경에서 영상과 음악을 즐길 수 있다. 스튜디오 A는 큐베이스프로 등 작곡 프로그램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스튜디오 B에서는 연주하는 사람만 들을 수 있는 사일런스 기능이 있는 야마하 업라이트를 치고 싶은 순간 언제든 칠 수 있다. 보통의 공공도서관이 이러한 공간을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는 것에 반해 의정부음악도서관은 예약 없이 이용할 수 있다. 이외에도 의정부음악도서관은 음악감상 동아리, 실내악 연주 모임, 시니어 합창단 등 시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할 다양한 음악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안나의집 김하종 신부 “지금, 바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나누는 기쁨” [인터뷰]

1990년 김포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온 이탈리아 출신 사제 빈첸시오 보르도. 그는 자신의 한국 이름을 김대건 신부의 김, ‘하느님의 종’으로 살겠다는 의지를 담아 ‘김하종’으로 지었다. 그는 사제의 신분이지만 스스로를 주방에서 밥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일주일에 6일, 하루 평균 500여명의 한 끼 식사를 책임지는 그는 언젠가 ‘안나의 집’을 아무도 찾지 않아 문을 닫는 날을 꿈꾼다. ‘안’아주고 ‘나’눠주고 ‘의’지가 되는 ‘집’ 김하종 신부(67)는 오전 5시부터 깨어 있다. 함께 사는 신부 2명과 미사와 기도를 드린 후 9시에 출근하기 전까지 이메일이나 메신저 체크로 간단히 업무를 시작하고 출근길엔 청소년 쉼터, 노숙인 자활시설을 들러 잠깐이라도 그들의 얼굴을 보며 안부를 묻는다. 사무실에 도착해선 안나의 집 대표로서 본격적인 행정 업무를 본다. 확인할 것도, 만나야 할 사람도 많고 여기저기 부탁하는 일도 그의 몫이다. 그렇게 정신 없이 오전 일과를 보내고 나면 어느새 밥할 시간이 된다. 식사시간은 3시부터지만 일찌감치 급식소를 찾아온 손님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1998년 모란역 근처 식당 한 편에서 80여명에게 식사를 대접했던 것이 지금은 하루 500명 이상으로 늘어났습니다. 코로나 시기에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도시락을 만들어 나눴습니다. 가난한 사람, 어려운 사람 돕고 싶어 사제가 됐고 그들을 찾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때때로 힘든 일도 있지만 이들에게 배우는 점이 더 많습니다.” 김 신부는 자신의 삶을 변화시킨 네 명의 스승이 있다고 말한다. 첫 번째 스승은 인도 출신의 시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그의 작품을 통해 아시아를 알게 됐고 간디, 부처, 공자, 그리고 김대건 신부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아시아 문화를 공부했다. 그 덕에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했고 사제서품 전 이미 한국행을 결심했다. 두 번째 스승은 한 장애인이다. 한국에 들어와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 1992년에 성남으로 왔다. 가난하고 힘든 사람을 위해 할 일을 찾던 중 우연히 낡은 집에 가게 된다. “지하에 있는 집에 들어서니 옅은 전등에 기대어 한 남자 분이 누워 계셨습니다. 20대 때 건설노동자로 일하다가 허리를 다친 이후로 거동이 불편해진 분이었는데 주변 이웃들이 그를 기억하면 하루에 한 끼 먹을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굶는다고 하더군요.” 김 신부는 급한 대로 집 청소를 한 후 그 옆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김 신부는 문득 “한 번 안아 드려도 될까요” 물은 후 그를 안았다. 잘 씻지 못한 육체에선 냄새가 났지만 김 신부는 그를 안는 순간 참된 마음의 평화, 기쁨, 행복을 느꼈다. “그 순간 신께서 그곳에서 저를 기다리고 계셨음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날, 평생 어려운 사람을 위해 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분은 막연히 가난한 사람을 돕고 싶었던 저의 마음에 확신을 주신 두 번째 스승이시죠.” 삶이 아름다운 선물 IMF 외환위기가 찾아온 1998년 김 신부에게 오 마태오씨가 찾아왔다. 모란역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오씨는 외환위기 이후 모란시장 광장에 새벽부터 몰려드는 실업자들을 마주하고 수소문 끝에 김 신부를 찾았다. 어르신들을 위해 밥을 짓던 신부에게 오씨는 하루 한 끼도 해결하지 못하는 젊은 노숙인들을 도울 의향이 있는지 묻고,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마태오 형제님이 먼저 저에게 식당 일부 공간을 제공하고 식사 준비를 후원하겠다고 제안하셨습니다. 일자리를 잃고 잘 먹지도 못하는 실업자들을 도와야 할 것 같다면서요. 마태오씨 본인도 부자가 아니었고 보통의 식당 사장이었지만 있는 그대로 나눠주신 덕분에 그 씨앗이 자라 오늘의 안나의 집이라는 커다란 나무가 됐습니다.” 세 번째 스승 오씨 덕에 만난 네 번째 스승은 바로 노숙인들이다. 김 신부는 가난과 고통에 매몰되기보다는 자신이 건네는 빵 한 조각, 옷 한 벌에 감사하며 “삶이 아름다운 선물”이라고 말하는 노숙인들을 만나 “인간으로서, 사제로서 많이 배웠다”고 말한다. 마땅히 사랑받아야 할 존재, 청소년 안나의 집은 최근 청소년 문제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할 일이 없어 노숙인이 된다고 알고 있지만 김 신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 한국은 일거리가 충분히 많고 외국인 노동자가 없다면 공장 운영도 멈추고 농촌 사회도 무너질 겁니다. 그러면 왜 이들은 일을 안 하고 노숙인이 됐을까. 이 분들은 각자 어떤 ‘문제’를 갖고 있어 노숙하는 겁니다. 심리적·정신적 고통, 사회적·육체적·경제적 문제 등을 안고 있죠.” 김 신부는 노숙인들이 갖고 있는 여러 문제의 원인을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로 봤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받아야 할 최소한의 사랑과 관심,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감을 잃고, 그들이 올바른 사회인으로 성장하기 어려워진다는 것. “노숙인들과 홀몸어르신에게 식사 대접하는 것만큼 청소년들을 올바르게 이끌고 사랑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 신부와 안나의 집 사회복지사들은 매일 밤 아지트(아이들을 지켜주는 트럭)를 타고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청소년을 찾아간다. 사회가 그들을 보호하고 있음을 알게 하고 그들이 원한다면 단기 쉼터에서 상담과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도 가정 복귀가 힘든 경우엔 중장기 쉼터에 입소해 혼자 생활이 가능할 때까지 생활하도록 지원하고 집과 생활 편의를 제공한다. 현재 안나의 집 쉼터 안팎에서 관리하고 있는 청소년은 100여명. 아이들의 교육비, 식비, 의류비뿐 아니라 용돈까지 책임지다 보니 어르신들 식사 대접과는 차원이 다른 부담이 따른다. “사회가 빠르게 변하고 복잡해질수록 소외된 사람들은 일상을 따라가기 더 힘들어집니다. 청소년들이 일상에서 멀어지기 전에 사랑, 음식, 옷, 공부를 제공하는 것은 아이들의 인권이에요. 아이들이 길 위에 있는 것은 부모뿐 아니라 사회와 우리 모두의 잘못입니다.” 최근 김 신부는 안나의 집 25주년을 기념해 그간의 소회를 담은 책 ‘오늘 하루도 선물입니다’를 출간했다. 40%의 보조금과 60%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안나의 집은 500여명의 노숙인, 100여명의 청소년, 55명의 직원과 1천명의 봉사자들이 사는 큰집이다. “바쁜 일상 중 1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그 시간을 나눠주세요. 그 1시간이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킬지 아무도 모릅니다. 조건을 앞세우기보다 지금, 바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나눠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