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초대석] 농업인에게 실익 주는 기업문화 노조원들이 앞장서서 실천할 것
“출근하는 아침이 즐거운 직장, 노조원은 물론 농업인에게 실익이 되는 농업공기업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변종섭(46) 한국농어촌공사 노동조합 경기지역본부장은 지난 4월 취임 이후 매일 출근길에 경기지역본부의 1층부터 4층까지 모든 사무실에 들러 아침인사를 한다.
노조원들의 표정도 살피면서 사무실에 활기를 불어넣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일이다. 그는 “아침인사를 하면서 느낀 점은 대부분의 직원들이 목소리 톤이 밝지 않고 경직돼 있다는 것”이라며 “지사처럼 여러 사람이 의논하고 함께 하는 업무가 많은 것이 아니라 개인이 해야 하는 업무가 많고 쉴 틈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본부 특유의 시스템 탓인 것 같다”고 말했다.
변 본부장은 이어 “아침이 즐거워야 하루가 즐겁고 업무든 노조 활동이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여주 금사면 출신, 군의원 아버지 밑에서 엄격하게 자라
노조활동 선배들의 조언·조력이 큰 도움
여주 금사면 출신인 변 본부장은 어린 시절부터 밭일하고 모 심고 벼를 베며 자랐다. 자연스레 농어촌공사에서 하는 일들을 일찌감치 접할 수 있었다.
이포고와 여주대학을 졸업하고 1992년 공사에 입사한 변 본부장은 3대 노동조합 여주이천지부 대의원을 거쳐 4대 여주이천지부 지부장에 당선됐으며 연임에 성공했다. 연임 당시 반대표 한표 없었다는 사실이 변 본부장에 대한 노조원들의 신뢰가 얼마나 두터웠는지를 짐작케 한다.
그가 처음부터 노조활동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군의원을 지낼 만큼 보수적이고 점잖은 집안이었다.
그런 그에게 전환점이 된 것은 2000년 농지개량조합, 농지개량조합연합회, 농어촌진흥공사가 통합해 농어촌공사의 전신인 농업기반공사가 탄생할 시점이었다.
변 본부장은 “지사장이 업무지시하면 따르듯이 노조지부장이 지시하는 대로 따른 게 남들이 볼 때는 강하게 비쳐졌나보다”며 “자연스럽게 노조 일에 관심을 갖게 되고 점점 내 의견을 피력하게 됐다”며 멋쩍게 웃었다.
본부장 출마 계기에 대해서도 변 본부장은 “지부장을 6년 하면서 많은 부분을 건의했지만 의사전달이 명확하게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한발 더 나아가 중앙 집행부에 참여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며 “또 2011년 임금협상 테이블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좀더 논리적 개발이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함께 노조활동 하던 선배들의 조언과 조력이 도움이 많이 됐다”며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 그 분들이 아니었으면 이 자리에 있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공을 돌렸다.
말보다 행동으로 실천하는 노동조합 구현
제2의 인생 시작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
변 본부장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약자를 배려하는 조화로운 경기지역본부 건설’이라는 슬로건 아래 말보다 행동으로 실천하는 노동조합 활동을 구현하고 있다.
본부장 선거 때부터 공약으로 내세운 두 가지 목표는 직원 복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과 농업농촌 공기업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겠다는 것이었다.
변 본부장은 조합원들이 즐겁게 생활하고 근무할 수 있는 여건 마련을 위해 지난 6월에는 양평에서 1박2일간 경기지역본부와 지사 여직원 100여명이 참석한 ‘여성역량강화 워크숍’을 개최했다. 흩어져 있는 여직원들의 만남의 장을 마련해 여성 직장인으로서의 어려운 점을 토로하고 본사에 건의해보자는 취지였다.
이전 워크숍이 딱딱하고 지루할 수 있는 교육 위주였다면 이를 최소화하고 자유 토론 시간을 늘렸다.
이 자리에서 육아휴직 뒤 연차가 사라지는 문제점이 제기됐고 이후 차년도 연차를 당겨쓸 수 있도록 제도개선이 이뤄졌다.
또 복귀 후 재교육 프로그램을 추진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특히 워크숍 마지막 순서로는 자유시간을 넣어 여직원들이 사우나와 산책을 즐기며 그야말로 ‘힐링’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뜨거운 호응을 얻기도 했다.
변 본부장은 “향후에는 정년퇴직에 임박한 선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게 창업 자문 등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노조는 조직문화개선위원회를 열어 잦은 인사교류로 대화가 단절돼 있는 경기지역본부 직원들이 허심탄회하게 어려움을 터놓을 수 있게 하고 있다.
변 본부장은 “본사에서 실시하는 화목데이(화요일·목요일 정시퇴근), 화성수원지사의 직원 자유 토론회 ‘똑(Talk)! 똑(Talk)! 해요’ 등 좋은 제도를 벤치마킹하려 한다”며 “내년에는 우리 본부 차원의 다양한 복지제도가 실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사 한마음 서포터즈 봉사단 운영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 시스템’ 임기 내 반드시 개선할 것
변 본부장은 조합원만을 위한 이기주의적인 노동조합 활동이 아닌 공기업으로서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농업기반 생산정비사업, 영농규모화사업 등 정부정책과 공사가 하는 일이 농민에게 올바른 일인가를 고민한다고 강조한다. 변 본부장은 경영이양직불사업을 예로 들었다. 실제 경작하지 않는 자가 직불금을 신청하는 위반사례를 막고 농민에게 더 많은 혜택이 가도록 하기 위해 10년이 넘게 공사 노조에서 건의해 제도 개선을 이뤘다는 것이다.
변 본부장은 “농민과 대화할 기회가 많은 만큼 농민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도 우리 공사의 역할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노사 한마음 서포터즈 봉사단 운영도 그 일환. 전임 본부장 때부터 시작해서 4년차인 봉사단은 노조 지부장들과 각 지사장들이 1년에 2~3차례 모여 재해지역이나 소외계층을 돕는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여주 수해지역 농가에 방문해 복구작업을 돕기도 했다.
변 본부장은 임기내 인사 시스템도 개선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는 “노조에서 인사에 개입할 수는 없지만 원칙을 요구할 수는 있다”며 “공정하고 투명한 기준, 예측가능한 인사시스템을 구축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정확하지는 않아도 내가 언제쯤 어디쯤으로 갈 수 있다는 대략적인 정보는 미리 알 수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어 “6~7급 현장관리직과 기능직은 농어촌 자녀가 업무 이해도도 빠르고 지역사회 공헌 측면도 있어 지역인재를 채용하려고 하는데 공사 정원이 묶여있어 어려움이 많다”며 “정원 확보를 위해 정부에 요구하는 등 노력을 기울일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변 본부장은 일반적으로 노조활동에 소극적인 20~30대 젊은 직원들의 참여도 적극적으로 이끌어냈다. 변 본부장은 “일부러 젊은 직원들에게 일을 많이 맡겼다. TF팀도 양성평등실장도 사무장도 모두 젊은 친구들”이라며 “오히려 나와 친한 직원들에게는 직책을 준 것이 없다”고 말했다. 공사도 노령화돼 새로운 생각이 필요한데 이들에게 주제만 던져주면 참신한 아이디어를 발굴해서 토론을 통해 건설적인 방향을 도출해 내곤 한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단기 TF를 운영해 집중적이고 전략적으로 공사의 문제점을 발굴하고 개선해 나가려 한다”며 “현재 진행 중인 ‘복지제도 개선을 위한 TF’가 끝나면 ‘노조참여 활성화를 위한 TF’와 ‘경기본부의 바람직한 인사원칙을 위한 TF’를 잇따라 가동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농어촌공사 경기지역본부 노조사무실에 들어서면 눈에 띄는 것은 단연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걸개다. 변 본부장이 취임하자마자 붙였다는 걸개에는 ‘강한 노동조합, 행동하는 노동조합, 소통하는 노동조합’이라는 글귀가 담겨있다.
변 본부장은 “기본적으로 노조는 강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다만 한쪽에 치우치는 강함이 아니라 모두에게 공정하게 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열정적이면서도 소탈하고 합리적이면서도 정 많은 변 본부장의 모습에서 그의 소망대로 직원 모두가 서로 밝게 웃으며 아침인사를 나누는 농어촌공사 경기지역본부가 될 날이 머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글 _ 구예리 기자 yell@kyeonggi.com 사진 _ 추상철 기자 sccho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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