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경기도] 생태교통 수원 2013

자동차 사라진 도로 위 행복질주

우리는 언제부턴가 빌딩들이 가득찬 거리에 ‘빌딩숲’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별명을 붙인다.

그러나 나무로 가득찬 숲과 빌딩으로 가득찬 숲은 ‘빽빽하다’는 것 외에 같은 점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피톤치드와 매연, 자동차 소음과 풀벌레 소리, 아스팔트와 흙을 치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9월 한달간 마법같은 일이 벌어졌다. 도심 속 마을에서 자동차가 주는 편리함을 일정 부분 포기하니 마을에 숲과 비슷한 환경이 생겨나고 사람들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피어난 것이다.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에서 말이다.

자동차 없는 마을을 꿈꾸다

지난 9월 한달간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에서 펼쳐진 생태교통 수원 2013은 석유가 고갈되는 시기를 대비해 차 없는 생활을 가정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이 행사에서 인위적으로 차를 없애는 것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미래로의 지향이다. 다양한 대체 이동수단이 등장해 보행자 중심으로, 사람 중심으로 저탄소 녹색도시를 시도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생태교통 중심의 도로 운영과 지역 주민의 생태교통 실천 및 이동수단 전시 체험, 보행과 사람 중심의 지역기반 조성, 국제 컨퍼런스 개최 및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 등을 사업내용으로 한 준비작업은 2년여에 걸쳐 이뤄졌다.

특히 4천300여명의 주민이 생활하고 있는 공간에서 약 1천500대의 차량을 ‘빼내는’ 작업에는 주민과의 많은 대화와 설득이 필요했다.

반대하는 주민들도 있었지만 결국 행사의 뜻에 동참한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차 없는 마을을 만드는데 협조하기 시작했다. 개막식을 보름 앞둔 8월15일, 행궁동 행사장 주민들이 자동차를 외부 주차장으로 이동시키는 ‘자동차로부터 독립만세’ 행사를 개최한 것은 그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오후 5시 화서문로에 대기하던 자동차 100여대가 장안사거리를 출발, 정조로와 장안문을 지나 화홍문공영주차장까지 500여m를 줄지어 이동하는 장관이 연출됐다.

시는 화서문로, 신풍로를 특화거리로 만들고 옛길과 골목길의 하수관·불량노면 등을 정비했으며, 경로당이나 마을 입구에 쌈지공원을 조성해 사람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또 3개 지점에 도시텃밭을 만들어 환경적인 측면도 고려했다.

9월 한달 동안 수원 행궁동에 기적이 일어났다

매연 가득했던 도심속 마을의 행복한 변화

되살아난 옛길과 골목골목 마다 웃음 만발

행궁동이 달라졌어요

‘생태교통 수원2013’을 계기로 지난 한달간 차 없는 마을이 된 행궁동의 가장 큰 변화는 화성이 축조되던 정조시대부터 형성된 장안문길, 나혜석길 등 옛길과 신풍로, 화서문로 등 대표적인 구시가지가 현대적 디자인과 만나 새로운 활력을 찾았다는 점이다.

족히 수십년은 더 돼 보이는 상점들이 산뜻한 간판으로 갈아입고 입구에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외국어들이 병행 표기된 메뉴판을 비치해 생태교통을 체험하러 온 사람들의 편의를 높였다.

특히 100여곳이 밀집한 것으로 알려진 철학원 등도 ‘○○보살’, ‘◇◇장군’ 등 새로운 간판 덕분에 현대와 어우러진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또 오래된 구옥들은 예쁜 벽화를 입고 여느 관광지 못지 않은 분위기를 자랑했으며, 도로는 직선 없이 완만한 곡선으로 포장돼 차량이 속도를 낼 수 없도록 원천적으로 차단했고, 거미줄처럼 얽혀있던 전봇대 대신 가로수가 줄지어 자리잡아 시원한 그늘을 만들었다.

특히 입체벽화는 하나의 예술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골목길을 돌아설 때마다 아름다운 벽화가 담을 장식하고 있어 발걸음을 즐겁게 했다. 담에는 노란 해바라기가 피어있고 코스모스 분홍 꽃잎이 벽을 타고 날아다니며, 한쪽 담 전체를 채운 지름 2m 크기 주홍색 꽃은 행인들의 포토존으로 사랑받았다. 삼거리에는 어린이들이 사방놀이, 줄넘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고 있다.

골목 어귀에는 나무처럼 무럭무럭 자라는 듯 어린이들이 키를 재 보도록 나무 옆에 세로로 자를 그려놓았고, 처마 밑에 빨래를 널어놓은 것 역시 그림이다.

벽화 중 백미는 단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E.T를 모티브로 한 담벼락. 식물 채집에 열중하다 우주선에서 낙오된 E.T가 자전거를 타고 도망쳐 자신의 별로 돌아가는 장면이 떠오르는 이 벽화는 방문한 모든 사람들의 포토존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자연과 동화된 사람들

행사 기간 내내 행궁동에서는 훈훈한 장면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중년 부부가 2인용 자전거를 타고 함께 발을 맞추며 웃는 모습, 일행이 힘을 합해 발을 굴러야 움직이는 자전거버스를 타고 웃음꽃을 피우는 단체 등은 자동차를 포기한 사람들만이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었다.

특히 유모차에서 내려 자신의 몸집보다 큰 유모차를 밀면서 가는 유아가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마을은 보행자와 자전거의 천국이 됐다. 해설사가 들려주는 마을 이야기를 들으며 골목을 누비는 사람들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낯선 이가 지나갈 때 망설임 없이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웃으면서 건넬 수 있는 것도 마을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일어난 변화 중 하나였다.

방문객 뿐만 아니라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불편을 감수했던 마을 주민들도 여유롭게 변했다. 주민들의 얼굴에서 오래된 동네에서의 고단한 삶에 대한 강퍅함은 사라지고 곳곳에서 환담을 나누거나 이야기꽃을 피우고 지나가는 방문객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정겨움이 피어났다.

마을 입구의 작은 점포에 모여 가벼운 반주를 나누는 마을 어르신들의 너털웃음소리가 정겨운 마을이 된 것이다. 차 없는 행궁동의 변화는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석유가 고갈된 미래, 나쁘지만은 않겠다’.


행궁동, 세계가 주목하다

생태교통 수원 2013이 열린 9월 한달간 행궁동에서는 환경과 주민자치와 관련된 국제적인 규모의 행사들이 대거 개최되면서 행사와 행사가 이뤄지는 행궁동에 대한 관심이 모아졌다. 주요 행사는 다음과 같다.

사람과 환경, 새로운 길을 열다

생태교통 수원 총회

ICLEI가 주관한 수원총회는 기후변화 대응에 공감하는 세계 41개국 98개 도시 대표와 도시계획 전문가들이 ‘도시, 공간, 그리고 사람(Cities, Spaces and People)’을 주제로 9월 1일부터 나흘 동안 진행됐다.

9월 2일 개회식을 겸한 총회 1차 전체회의에는 염태영 수원시장, 오르테카 ICLEI 부회장, 짐머만 ‘생태교통 수원2013’ 페스티벌 발기인 겸 총책임, 참가국 도시 대표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어 4일에는 ‘지속가능한 도시교통을 전 세계에 확산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생태교통 수원총회 선언문/생태교통에 대한 충동(EcoMobility Impulse)’을 채택하고 폐회했다.

지속가능발전 전국대회

지속가능발전 전국대회는 9월 4일 행궁동 국제회의장에서는 전국 18개 지방정부 대표가 참가해 3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됐다.

이 대회는 전국지속가능발전협의회가 주최하고 수원의제21추진협의회, 푸른경기21실천협의회가 주관하며 환경부, 경기도, 수원시, ICLEI 한국사무소가 후원했으며 시장·군수 등 지방정부 관계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들은 ‘지방의 행동이 세계를 움직인다’는 슬로건으로 “지속가능한 지역공동체를 향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는 선언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환경영화제

수원환경영화제는 9월 7일부터 9일까지 3일 동안 행궁동 국제회의장, 수원천 남수문 앞 등에서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기후변화와 건강, 의식주 일상생활에서의 온실가스 배출 등을 주제로 한 극영화,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등 16편을 상영했다.

기후변화에 관심 없던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작가가 녹아가는 얼음을 찍기 위해 북극으로 출장을 갔다 가 기후변화의 부정할 수 없는 증거를 만나게 된다는 다큐멘터리 ‘빙하를 따라서(Chasing Ice)’가 개막작으로 상영됐으며, ‘태양광 택시로 세계일주를(Solartaxi-Around the World with the Sun)’, ‘GMO(유전자조작식품) OMG’,  ‘얼음의 땅, 깃털의 사람들(People of the Feather)’ 등이 관객들에게 환경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했다.

수원그린 국제포럼

세계 공원 관련 석학들이 참석해 도시 공원과 녹지의 가치를 확인하는 ‘수원국제 그린포럼’도 눈길을 끌었다. 포럼에서는 미국 뉴욕시 공공디자인 프로그램 운영을 역임한 제롬 초우가 ‘도시공원 개발의 민간 참여 관리방안’, 일본 동경도 녹지경관과장 미쿠리 메이요시가 ‘동경도 민설공원 제도’, 동아대 김승환 교수가 ‘녹색인프라 구축을 위한 민관 파트너십’ 등 사례를 발제했다.

특히 포럼의 참가자들은 수원 광교호수공원, 조원동 화장실문화공원, 효원공원 월화원 등을 둘러보며 수원의 공원녹지 정책을 둘러보기도 했다. 이 외에도 저탄소녹색도시 국제포럼(3일), 사회적기업세계로 페스티벌(10일), 수원시 평생학습축제(13~14일), 전국자원봉사센터대회(24일), 전국마을만들기대회(25~26일) 등 다채로운 행사가 방문객들의 눈길을 끌어 모았다.

글 _ 이지현 기자 jhlee@kyeonggi.com 사진 _ 김시범 기자 sbkim@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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