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인터뷰]‘교구설정 50주년’ 천주교 수원교구장 이용훈(마티아) 주교

신앙선조들 ‘순교신심’에 뿌리… ‘쇄신·참여·소통’으로 100주년 향해 갈 것

천주교 수원교구가 1963년 서울교구에서 분할된 후 교구설정 50주년을 맞았다. ‘불과’ 반세기만에 서울대교구에 이어 두번째로 큰 교구로 성장했다. 신자 약 80만 명, 그야말로 ‘일취월장’이다. 한국 천주교 발상지인 천진암 성지(광주시 퇴촌면)를 품에 안고 있는 저력 덕분일까.

수원교구는 단순하게 신자의 양적 성장뿐만 수원교구 내에는 현재 140여 개의 복지시설이 운영 중인 가운데 아동ㆍ청소년, 여성, 노인, 노숙인, 교정, 나환우 등 고통받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돌봄과 섬김의 정신을 실천하고 하면서 질적성장을 도모해왔다. 반세기 동안 신자와 비신자 구분 없이 동등하게 복음적 가치관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9년부터 수원교구장으로 일해온 이용훈(마티아) 주교를 만나 수원교구의 비약적인 성장배경과 ‘대희년’을 보내고 있는 교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2013년, 교구 설정 50주년과 신앙의 해라는 겹경사를 맞은 ‘대희년’을 보내고 있는 소감이 궁금합니다.

A. 하루가, 일주일이, 한달이 어찌 지나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하하) 올해는 수원교구의 과거와 현재를 살피고 미래를 내다보며 교구설정 100주년을 향한 교구 공동체의 비전을 선언하는 해입니다. 특히, 교구 설정 50주년 기념해 추진한 영성운동 ‘잘 섬기겠습니다’는 현대사회의 지배와 폭력과 죽음의 문화에 맞서 그리스도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과 봉사로 무장돼 새로운 삶의 양식을 창출해보자는 시도였습니다.

Q. 2010년 5월 열린 50주년 기념준비위원회 1차 총회를 시작으로 2년 여 동안 50주년을 준비해 왔다고 들었습니다. 1년 동안 다양한 희년 행사가 진행됐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행사는 무엇이었나요.

A. 지난 4월 전세계를 감동시킨 프랑스 신부님들과 신자로 구성된 팝페라 그룹 ‘레 프레트르’ 초청공연과 8월 열린 ‘기념음악회’는 교구민들이 희년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던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기념음악회에서 소통, 쇄신, 참여라는 가치를 교구의 미래를 향한 비전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다만, 다채로운 행사에 장소와 시간적인 제약 때문에 보다 많은 교구민들이 참석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큽니다.

Q. 특히, 지난 10월 3일 ‘천주교 수원교구 설정 50주년 기념 신앙대회 및 감사미사’가 4만5천여 명이 참가하는 등 역대 최대 규모로 개최되며 성공적인 행사로 평가받았습니다.

A. 정말이지 깊은 감동을 받은 하루였습니다. 그날의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약 80만 명의 교구민 가운데 5%에 해당하는 대표성을 지닌 4만5천여 명이 참여한 이번 행사는 수원교구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자리이자, 교구민의 진실된 모습을 온전히 주님께 보여드리는 뜻깊은 날이었습니다.

수원교구 설정 50주년 구호를 외치는 4만5천여 명 신자들의 소리가 우레같이 울려 퍼졌고, 희년을 맞은 수원교구 공동체의 기쁨을 절정으로 끌어올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입장식에서 선보인 ‘순회 십자가 행렬’와 ‘필사 성경 행렬’은 온 교구민이 함께 영적으로 준비하고 참여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장관이신 페르난도 필로니 추기경님과 함께 봉헌한 감사미사는 이번 행사의 절정, 백미였습니다. 추기경님이 함께 하심으로 우리 교구의 희년을 보편교회 차원으로 그 지평을 넓혀주는 일이었습니다.

Q. 이번 신앙대회 및 감사미사 때 봉헌된 헌금 1억6천여 만원을 아주 특별한 곳에 쓸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A. 도내 희귀병ㆍ난치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가 있는 50가정을 선정해 치료비를 지원할 예정입니다. 교구 설정 50주년을 맞아 사회복지공헌을 실천하기 위한 일환입니다. 최근 중증장애인과 새터민, 다문화가정 등 취약계층을 위한 치과병원을 20억 원을 들여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에 치과병원을 건립해서 경기도에 기부채납하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의 사업입니다.

Q. 1963년 본당 24개, 사제수 28명, 신자 4만 2천500명이었던 수원교구가 불과 반세기 만에 본당 202개, 사제수 423명, 신자 80여만 명으로 한국교회 두번 째 규모의 교구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입니까.

A. 성직자 없이 갓 태어난 한국 천주교회는 성사적 은총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뿐 지상의 사목적인 면에서 볼 때는 목자의 시야와 손길에서 멀리 떨어진 가시덤불 속의 양들이나, 부모 없는 고아들과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원교구가 양적으로 성장가능했던 것은 바로 ‘평신도의 힘’과 ‘순교신심’ 덕분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외국 선교사를 통해 천주교를 접한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직접 천주교에 관한 책과 성경 등을 들여와 연구하고 자발적으로 천주교를 받아들였습니다.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자랑스러운 역사입니다.

한국 천주교 발상지인 천진암 성지가 있는 수원교구는 죽음 앞에서도 당당히 신앙을 증거했던 신앙선조들의 ‘순교신심’에 뿌리를 두고 성장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 신자 수가 35년 전, 100만 명에서 현재 약 550만명의 공동체를 이루는 동안 수원교구도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룬 것입니다. 

Q. 교구 설정 50주년을 기점으로 앞으로 수원교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비전은 무엇입니까.

A. 우리는 교구 설정 50주년 기념 축제를 세상의 복음화를 향한 새로운 열정을 깊이 다지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다짐한 ‘소통과 참여와 쇄신’이라는 세 가지 교구 미래 핵심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시각, 새로운 비전과 열정으로 복음화에 매진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신앙의 여정 속에서 영적 쇄신을 바탕으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이웃형제, 지역사회와 하나되어 어둡고 탁한 이 세상에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과 몫을 다해야겠습니다. 수원교구는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때까지 계속 앞으로 전진할 것입니다.

Q.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최근 밀양 송전탑 사건부터 쌍용차 사태, 국정원 등 사회적 이슈와 관련해 현장으로 달려가셨습니다. 교회의 사회적 참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신앙인이 사회문제와 아무런 관계 없이 살아도 된다는 생각은 매우 편협된 것이고, 위험한 신앙관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정신에서 근본적으로 탈선하는 태도라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사회운동은 조용하게, 보이지 않게, 아픈 이들과 함께 하자는 주의입니다.

Q. 민감한 사안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장에 가면 어려움도 많을 것 같고, 가슴 아팠던 경우도 있을 것 같은데.

A. 솔직히 저항을 많이 받습니다. 지난 3월 25일 고가사다리차를 이용해 15만볼트의 전기가 흐르는 송전탑에 올라, 126일째 고공농성을 벌여온 전국금속노동조합 한상균 전 쌍용차 지부장과 복기성 비정규직 수석부지회장을 만났습니다. 24명의 노동자가 아프게 세상을 떠났는데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현실을 그대로 두고 보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부와 지방정부, 회사, 해고자 대표들이 함께 대화를 빨리 나눠야 사태 해결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지난 5월 28일에는 경남 밀양 송전탑 건설현장을 방문, 송전탑 건설의 부당함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70대 노인이 분신해 숨지는 일까지 발생했는데 우리 사회가 이토록 무정한 사회인가 싶습니다.

Q. 최근에 읽으신 책 중에 감동받은 책이 있다면.

A. 책을 읽는 게 소원이라면 믿겠습니까.(하하) 교수 시절에는 책도 집필하고 그랬는데 요즘엔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도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도 재미있게 읽었고 최명희의 ‘혼불’도 정독했습니다. 일할 때 조직과 직원을 믿고 99% 일임하는 스타일이지만 주교로서 챙겨야 할 일이 많다보니 요즘엔 좋아하는 광교산 등반도 못하고 있습니다.

Q. 교구 설정 50주년을 마무리하고, 100주년을 향해 나아가는 수원교구 사제, 수도자, 신자들에게 한말씀 해주시죠.

A. 50주년은 교구가 미래 100년을 향하는 청사진을 만드는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미래 우리 후손들에게 더 나은 신앙의 기초를 놓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과 희생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현대 사람들은 쾌락, 돈, 불의에 현혹되기 쉽기 때문에 자신이 믿는 하느님이 누구인지, 믿는 그분께서 어떠한 삶을 사셨는지, 그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삶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더욱 분명한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교구민들께서 부활하신 주님을 굳게 믿는 가운데 그분께 온 삶을 의탁하며 현 시대에서 당당하게 주님의 제자로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 삶으로 실천하는 증인이 되어주길 바랍니다.

대담=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추상철기자 scchoo@kyeonggi.com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