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 학자적인 양심이나 성실성과는 별개로 언어나 문자 자체가 안고 있는 한계성에서 오해와 곡해는 늘 있게 마련이다. 고양이와 강아지는 서로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 으르렁댄다고 들었다.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님을 절감하게 된다. 우리들의 생각이나 느낌을 전달하는 도구로 문자나 언어는 완벽하지 못하다. 이에 행간을 읽는다는 말의 의미와 입장 바꿔 생각함의 참뜻을 깨닫게 된다.
우리들은 너무나 당연시 여기던 사실이나 지식이 어느 순간에 실제와 다름을 알게 될 때 당혹하게 된다. 이런 까닭에 기존에 인식된, 이른바 지식이란 것도 얼마나 가볍고 알량한지를 새삼 되묻게 된다. 최근 중앙의 한 일간지가 본격적으로 다룬 국화(國花), 즉 ‘나라꽃’의 문제가 한 예가 된다. 우리나라 꽃이 무궁화로 다들 알고 있지만, 이는 국가나 정부가 지정한 것이 아니란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됐다.
중국과는 달리 미국도 일본도 어떠한 구체적인 꽃을 지정한 것은 아니니 일본의 사쿠라, 즉 벚꽃도 그들의 국화는 아니다. 하지만 사전 상 국화의 정의는 ‘한 나라를 상징하는 꽃’이니 국가지정 여부와는 별개로 우리나라의 무궁화나 일본의 벚꽃은 그들의 나라꽃으로 이해해도 틀린 것은 아니란 생각이다. 보물이나 국보로 지정받지는 못했으나 그에 버금가는 문화재를 일반적으로 국보나 국보급으로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때로는 기존의 인식 때문에 전체를 제대로 못 보는 경우도 발생한다. ‘조선의 그림 신선’으로 불리는 김홍도는 교과서에 <무동> , <씨름> , <글방> 등이 실려 흔히 풍속화가로만 간주되기 쉽다. 그러나 풍속화는 그에 두 세대 앞서 윤두서와 조영석 같은 문인화가들이 시작했으니 김홍도가 풍속화를 창시한 화가는 아니다. 아울러 산수화, 사군자, 신선 그림, 호랑이와 까치 등 각종 동·식물, 그리고 불화까지 전통회화의 모든 분야에 두루 뛰어났다. 글방> 씨름> 무동>
풍속화만 그린 화가로 봄은 분명히 틀린 것이다. 그는 그림뿐만 아니라 글씨도 잘 썼으며 피리와 거문고 등 악기를 다뤘고 시조도 남겼다. 서양의 르네상스 때 천재 예술가와 비교해 뒤지지 않는 거장이라 하겠다. 중인 신분의 직업 화가이나 그의 예술 세계는 별개로 시대를 넘어 모든 이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우리 문화예술의 위상과 특징을 대변했으니, 중국과 얼마나 다른가를 보여준 ‘조선적인, 너무나 조선적인 화가’였다. 결국 조금 아는 것 때문에 진면모나 전체를 못 보는 우를 범하게 된다.
조선왕조를 세운, 우리나라에서 김씨에 이어 가장 많은 성인 이씨의 경우 ‘오얏 이’라 하는 데 오얏을 배[梨]로 잘못 알고 있는 이들도 있으나 자두[李]를 지칭한다. 타인에게 자신의 본관과 성(姓)을 별 생각 없이 경주 김씨나 전주 이씨 등으로 말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씨가 아닌 경주 김가나 전주 이가로 말함이 옳다. 이때 사용되는 가는 성 밑에 붙는 접미사로 ‘노래 가(哥)’이니 ‘집 가(家)’가 아니다. 싹이 터 꽃을 피우고 결실을 맺은 이 수확의 계절, 내 자신 앎이란 열매는 모른 채 싹이나 꽃 단계에서 서성이는 애송이나 철부지 모습임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이원복 경기도박물관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