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인터뷰]전광우 前 금융위원장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ㆍ세계3대 연기금 진입 ‘주역’

“금융이라는 생명체는 복원력이 강합니다.”

국제금융통으로 통하는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64)은 2008년 민간 출신으로 첫 금융당국 수장을 맡아 ‘1930년 세계공황 이후 근 100년만에 맞은 가장 큰 세계경제 위기’였다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성공적인 조기극복에 핵심역할을 담당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는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이자 미국 최대의 국립공원 중 하나이기도 한 미국의 ‘옐로우스톤’은 1980년도에 절반이 전소되는 대형 화재가 났다”며 “당시 100년 내에는 동식물이 복원되기 어렵다고 평가받았지만, 10년이 지나기 무섭게 새로운 동식물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전 전 위원장은 “자연의 복원력이 이렇게 강한만큼, 금융이라는 복원력도 강하다”며 “핵심은 어떻게 대처하느냐이다”라고 말했다.

2009년 국민연금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지난 4월까지 ‘글로벌 큰손’의 수장을 맡았던 그는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며 국민연금의 국민적 신뢰와 글로벌 위상을 제고하기도 했다.

앞선 1980년대 초 미국 미시간주립대 교수에 이어 12년간 세계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등을 역임했고, 1998년 정부 초청으로 귀국해 경제부총리 특보와 국제금융센터 원장을 거치면서 당시 IMF외환위기극복에도 기여했다.

또 2001년 우리금융그룹 총괄부회장, 2004년 이후 딜로이트 코리아 회장, 대한민국(외교통상부) 국제금융대사, 포스코 이사회 의장, 국제증권감독기구 아태지역위원회 의장 등을 거쳤다.

지난 5월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으로 석좌교수로 자리를 옮긴 전 전 위원장을 만나 그 당시에 대한 이야기와 고령화시대로 접어든 대한민국의 미래와 경제 전망에 대해 들어봤다.

▲초대 금융위원장으로서 글로벌금융위기를 극복하는데 일조했는데.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를 맞은 국민들의 체감 온도가 IMF 외환위기때보다 훨씬 덜했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데, 이는 너무 감사한 얘기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당시 새벽 2~3시면 미국시장을 파악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일어나는 등 잠도 몇시간 못자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피를 말리던 시기였다.

결과적으로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을 한 결과 글로벌 금융위기는 조기에 해결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가 다른나라에 비해 성공적으로 극복을 한 동력은 우선 은행자본확충펀드, 시장안정대책, 중기지원 Fast Track 등 신속하고 과감한 대응을 한것이 첫번째 요인이다.

두번째, 2008년 초 Bear Stern 사태 이후, 특히 리만브라더스 상황 악화되는 여름 이후에 긴밀한 모니터링과 시나리오별 대응전략체제 구축 등 사전준비 모니터링을 꾸준히 한 것도 성공적 극복 요인이다.

세번째로는 1997년 겪었던 외환위기의 학습효과다.

외환위기를 극복한 이후 G20, 국제금융 네트워크 활용 등 국제공조를 확대하는 등 당시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얻었던 노하우를 잘 적용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때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면.

2008년 거대투자은행을 헐값에 인수해서 글로벌 금융 시장의 주류로 발돋움할 수 있느냐에 대한 심각한 고민에 빠진 적이 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리먼브라더스 인수 시도가 그것이었다.

처음에는 국제적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국제적 M&A를 무작정 막을 일이 아닌만큼 가능성을 열고 신중하게 접근했다.

협상 초기에는 담당자들에게 빙산의 일각처럼 드러나지 않은 위험이 생각보다 더 클 수 있는만큼 너무 성급하게 움직이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후 담당자들은 뉴욕에서 간략하게 실사를 한 후에 리먼의 문제가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는 보고를 했다.

결국 거부 결정을 내렸고, 리먼과 산업은행이 진행하고 있던 인수 협상을 중단하라고 주문했다.

“월척 수준을 넘은 큰 물고기를 낚으려다가 낚시대가 부러지면서 사람까지 물에 빠질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당시 일부 언론은 내가 상황을 악화시킨 장본인이라고 꼬집으면서 리먼 인수 시도가 물건너가도록 결정타를 때렸다고 평했다.

그러나 제동을 건 결정이 옳은 선택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미국 제4대 투자은행이었던 리먼이 한국이 인수 중단 의사를 밝힌 바로 그 다음 주에 파산 선고를 한 것이다.

산업은행이 인수전에 더 깊숙이 발을 들였었다면, 우리나라 경제 회복은 훨씬 더 복잡한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역대 최장수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재임했는데.

2009년부터 2013년 4월까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맡으면서 자산 400조원 세계 3대기금으로 공단을 격상시켜, 역대 최초 연임과 최장기간 이사장의 명예도 함께 가졌다.

지난해말 1년 연장계약을 통해 국민연금 이사장으로 올해 12월까지 임기가 보장됐지만, 지난 2월 “때가 되면 스스로의 역할과 임무를 아름답게 마무리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정부의 성공적 출범을 돕겠다”며 사표를 제출했다.

재임기간 중에는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를 높여 가입자 171만명ㆍ소득신고자 188만명이 증가했고, 임의가입자도 5배나 늘어난 17만명이 증가했다.

그 결과 사상 최초로 가입자 2천만명 및 소득신고자 1천500만명 시대를 열었다.

무엇보다 소극적 채권중심이었던 기금운용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투자문화를 바꿨다.

국내채권 중심의 기금 포트폴리오를 국내외 주식과 대체투자 등으로 다변화를 추진했고, 장기적인 수익 기반 확충과 국내투자 집중에 따른 위험분산을 위해 해외투자 비중을 점진적으로 확대, 우수한 수익률을 달성했다.

취임 당시 270조원 정도였던 기금 규모는 지난 2월 400조원을 돌파, 일본·노르웨이에 이어 세계 3대 연기금에 진입했다.

임기 중 총 74조4천억원에 달하는 역대 최대 수익금을 만들어냈고, 3년 평균 수익률은 무려 6.4%에 달했다.

해외사무소 개설 등 글로벌 네트워크 및 경쟁력도 강화했다.

공단의 글로벌 위상을 높이기 위해 뉴욕과 런던에 해외사무소를 개설하는 등 인프라를 구축했고, 세계유수기관과의 전략적 제휴 등 국제적 네트워크를 강화했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재임시 채권을 벗어나 주식은 물론 다양한 투자를 했는데.

국민연금 포트폴리오(자산배분)는 대부분 국내 채권에 몰려 있었다.

주식투자 비중도 높였고, 해외투자 및 주식과 채권 이외의 원자재 및 상품 등에 투자하는 대체투자 확대도 꾀했다.

세계적인 골프용품 회사 타이틀리스트와 식음료 업체인 스무디킹 인수에 지분참여 했고, 영국 제2 공항인 개트윅공항과 브라질 광물회사인 니오븀에 공동투자해 좋은 성과를 얻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재정적자가 심각해진 각국 정부의 자산매각 프로젝트에도 관심을 가졌다.

특히 브라질이나 인도 등 신흥 강국이 아닌 미국과 호주 등 전통적인 선진국에 집중했다.

부동산 투자 용어로 말하면 ‘하방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로 랜드마크 빌딩(프라임 빌딩)만 투자했다.

그렇게 투자해서 재미를 본 것이 런던의 랜드마크 빌딩인 HSBC 본사 건물과 베를린의 소니센터, 시드니의 업무용 고급빌딩인 44층짜리 오로라플레이스 등이다.

IMF 때 우리나라 기업과 빌딩을 외국자본에 헐값에 팔아야 하는 아픔을 갖고 있지만, 글로벌금융위기를 겪은 2009년 이후에는 역으로 해외자산을 싼 값에 매입할 기회가 왔다는 역발상을 한 것이다.

▲대한민국이 고령화시대를 맞고 있는데

OECD 국가 중 최하위 출산율과 65세 이상 노인인구비율 12%의 고령화 사회 진입은 우리나라가 당면한 이중과제다.

젊은 층이 속된말로 국민연금을 받을 나이에는 ‘껌 값이 된다’라는 말을 하는데, 적은 비용을 내고 큰 효과를 보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비현실적 방안이다.

노후를 대비해 개인의 저축 외에 기댈 곳은 공공연금의 비중을 늘려 극빈의 노년층을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 100세 시대를 준비하는 현 세대와 최저 생활비로 생계를 이어가는 빈곤 노령층 간 공존을 위해 재무준비의 튼실함과 국민연금·장애연금·공무원연금공단 등 공공기관의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수익률 구조개선이 필요하다.

특히 공공기관의 공격적인 수익률 구조개선 과제야말로 현 세대의 복지비 부담을 줄이고 정권의 표밭으로 활용되는 복지제도 변동이라는 변수 없이도 많은 사람이 장기간 복지혜택의 수혜자가 될 수 있다.

현 세대는 새로운 두 세대가 융합된 민감한 시기로, 고령화 사회 세대와 뉴 노멀(New Normal, 저성장·저금리·저물가) 시대가 혼재한 시기인만큼 장기적 관점에서 일관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필요하다

▲현 경제상황과 전망은.

국제적으로는 중국의 연착륙 등 세계주요국이 하방 리스크를 가지고 있다.

양적완화의 축소시기 연장과 거시환경의 미약한 회복기조가 있지만, 진통제 및 영양제의 효과에 따른 한계가 있다.

국내 경제는 다소 개선 기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저성장 고착화 극복을 위한 모멘텀이 필요하다.

또다른 R&D(Reform&Deregulation) 개혁과 규제완화를 통한 투자와 고용, 성정의 선순환이 필요한 시기라고 본다.

이명관기자 mklee@kyeonggi.com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