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받는 이의 입장에서 기뻐하는 나눔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다. 대형마트나 백화점을 비롯한 각종 상점마다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지기 시작했고, 거리 곳곳에서 들려오는 캐럴이 연말연시가 다가오고 있음을 새삼 느끼게 한다.

해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지역 곳곳에서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려는 따뜻한 손길들이 모인다. 또한, 김장을 담거나 연탄을 배달하는 등 각종 정겨운 행사로 분주해진다. ‘마음 따뜻한 이웃들 덕분에 올해 겨울도 춥지 않게 보낼 수 있는 어려운 이웃들이 있겠지?’라고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벌써 훈훈해진다.

‘기부자의 기부 동기에 관한 연구 조사’에 따르면 순수한 이타심으로만 나눔 행위를 하는 경우는 10명 중 1~2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나 인천지역에는 5천 시간이 넘도록 자원봉사를 해온 봉사왕들이 무려 216명에 달한다. 그렇다면, 봉사왕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은 어떤 이유로 봉사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일까?

남을 돕는다는 것은 도움을 받는 이는 물론 도움을 주는 당사자에게도 기쁨이 된다. 누군가가 나로 말미 암 잠시라도 행복할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한 자기 위로와 자기만족이 주는 포만감이랄까? 그래서 남을 돕는 기쁨을 느껴본 이들은 마치 중독된 사람처럼 나눔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게 된다.

이외에도 나눔을 실천함으로써 얻는 보상은 다양하다. 사회적 인정과 존중이 따라오게 되며, 속한 집단의 신뢰가 구체적 이미지로 재탄생하게 되고, 이는 최종적으로 다양한 부가가치를 창출하게 된다. 대학입시, 취업 등에 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기업의 생산과 매출에도 큰 영향을 준다.

물론 타인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순수한 의도가 아니라고 해서 지탄받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도움이 필요한 곳에 내가 가진 것을 나눔으로써 주는 이와 받는 이가 모두 행복해 질 수 있다면 이처럼 생산적이며, 의미 있는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어느 동네에 홀몸 어르신이 뇌졸중에 간경화가 겹쳐 거동이 불편한 채 돌보는 사람 하나 없이 누워 있었다. 이를 발견한 한 지역 주민은 주민센터에 이 사실을 알렸고, 사회복지 담당자는 어르신의 상황을 고려해 집안일과 식사를 도울 요양보호사를 하루에 세 시간씩 갈 수 있도록 조치했다. 그러나 며칠 후 한 요양보호사는 어르신 집 창문의 방충망이 뚫어져 이곳으로 들고양이가 들어와 어르신의 이불에 대변과 소변을 보고 간다고 건의했다.

이어 매일 더러운 배설물을 치울 수 없다며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강하게 밝혔다. 이에 지역 주민들은 어르신의 집을 방문해 대청소를 비롯한 도배와 새로운 창틀 시공, 깨끗한 침상과 이불을 마련하는 등 쾌적한 환경을 새롭게 마련했다.

그러나 다음날 감사의 인사를 기대하며 어르신의 집에 찾아간 주민센터의 사회복지사는 오히려 어르신의 원망 섞인 호통만 들었다. 도대체 어르신은 왜 그러셨을까? 사실 어르신의 가장 큰 불편은 바로 외로움이었다.

개미 새끼 한 마리 오고 가지 않는 단칸 지하방에 우연히 들어온 들고양이가 할아버지의 유일한 친구였던 것이다. 그러나 새로 시공한 방충망이 길을 막아놓아 들고양이가 드나들 수 없게 됐으니, 어르신은 또다시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쾌적하고 위생적 공간이 어르신의 외로움을 달래 드릴 수는 없었던 셈이다.

누군가를 도울 때, 도움을 주는 이들은 자기 방식으로 도움받을 이의 필요성을 규정하거나 함부로 해결 방안을 마련해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이 그렇게 살게 된 데는 그만한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스로 바라고 생각한 해결 방안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올해 연말연시는 무작정 남을 돕기보다는 도움을 받는 이를 좀 더 배려한 나눔이 절실히 필요하다.

조현순 경인여대 사회복지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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