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되돌아 본 ‘농진청 50년사’

보릿고개를 넘어 자급자족 시대 친환경 농업 새길

세계적으로 기후변화와 자원고갈, 무역장벽 철폐 등으로 여러 위기에 직면해 있는 가운데 농업은 신성장동력이자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경쟁력의 보고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우리 농업역사의 중심에는 지난 1962년 개청 이래 50여년간 우리나라 농업발전을 이끌어온 농촌진흥청이 있다.

우리 농업의 메카였던 수원의 현 부지에서 올해 전북혁신도시로의 이전을 앞두고 또 한번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농진청의 사업성과를 통해 국가농업발전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미래 비전을 모색해본다.

보릿고개 설움 씻어버린 ‘식량 자급시대’ 

한국전쟁 후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식량 자급이 국가정책의 지상과제였다. 이에 1964년 3월13일 농촌진흥청 대강당에서 개최된 식량증산연찬대회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증산정책을 지시했고, 농진청 연구 결과 식량의 자급자족을 이룬 녹색혁명의 주역인 ‘통일벼’가 탄생했다.

‘통일벼의 아버지’로 불리는 허문회 서울대 교수는 1960년대 후반 필리핀의 국제미작연구소(IRRI)가 개발한 인디카 쌀의 다수확 신품종을 접한다. 이어 농진청의 농업과학자들과 팀을 꾸려 본격적으로 신품종 개발에 나서고 200여명이 넘는 교환 파견 인력을 투입해 1971년 IR 계통 벼와 자포니카 계통 벼를 교잡한 다수확 신품종 통일벼 개발에 성공했다.

그렇게 통일벼 육성 후 지속적인 연구 개발 끝에 1977년에는 식량자급을 달성했다. 쌀 수량성은 60% 가량 늘고 국내 쌀 생산량도 1965년 350만t에서 1977년 600t이 된 것이다. 농가 소득도 1972년 호당(0.3㏊기준) 2만4천원에서 1977년 12만8천원으로 급등했다. 급기야 경지면적당 평균 쌀 생산량이 세계 최고를 기록하면서 ‘녹색혁명’을 통한 국가 경제성장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

이와 함께 동력경운기는 1960년대 인·축력에 의존하던 작업을 기계화한 우리나라 농업기계화의 대표적인 주역으로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보급돼 농기계의 상징적인 기종이 됐다.

비닐하우스, 식탁을 풍요롭게 하다 

1970년대 통일벼가 이룬 식랑자급 달성을 기반으로 1980년대에는 국민의 식생활이 크게 향상됐다.

채소가 단순한 부식에서 기호식품으로 바뀌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신선채소가 식탁을 주도하게 된다.

이와 같은 사회 변화에 따라 농진청에서는 신선채소를 연중 공급하기 위한 멀칭재배(농작물을 재배할 때 토양 표면을 덮어주는 것) 및 비닐하우스 설치에 관련된 다각도의 연구와 농가 기술보급 확대가 급속도로 진행됐다.

멀칭재배는 이모작을 손쉽게 할 수 있고 잡초 방제와 지온 상승, 가뭄 방지 등 1석5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이처럼 멀칭재배와 소형터널재배, 죽재하우스 등 다양한 연구와 기술 보급은 농가의 생산성과 소득 증대에 많은 기여를 했다.

시설 면적도 1985년 기준 2만8천588㏊로 1970년에 비해 무려 22배나 증가해 우리나라 들판 곳곳이 비닐하우스로 덮이면서 ‘백색혁명’이라는 용어가 탄생했다.

이와 함께 80년대에는 젊은 농촌 인력이 도시로 급격하게 이탈하면서 기계화기술 개발이 중요한 해결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벼 기계이앙 재배 연구로 경운에서 파종·이앙작업까지 기계화기술을 완성함으로써 육묘기간은 45일에서 30~35일까지 단축됐으며 이앙 노력시간 역시 기존 10a당 24시간에서 8시간으로 획기적으로 줄었다. 중묘기계이앙 재배의 경제적 기술가치는 1980년에서 2030년까지 약 6조원에 달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처음부터 기계이앙이 농민들의 환영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벼 이앙기 개발과정 초기에 농업공학부 시험포에 이앙기로 이앙하는 모습을 보면서 주변 농민들은 “올 가을에 벼를 수확한다면 내 손가락에 장을 지지겠다”고 비웃는 일이 다반사였다.

심지어 몇몇 농민은 기계이앙한 모를 뽑아내고 손으로 다시 이앙하는 일이 빈번했다. 그러나 기계이앙한 모가 일정기간이 지나면서 효과를 보이자 농민들의 인식도 바뀌게 됐고 본격적으로 벼농사 기계화가 급속히 진행되기 시작했다.

‘고품질 대량생산’ 품질혁명은 시작됐다 

1990년대에는 농축산물의 품질 향상이 중요한 과제가 됐다. 이 중 1970년대 수출산업으로 육성된 양송이산업은 중국 개방과 더불어 국제가격의 급격한 하락으로 1980년부터 위축되기 시작돼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버섯 품목 개발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에 농진청은 1989년에 세계 최초로 원형질융합품종인 ‘원형느타리’를 육성해 농가로부터 큰 호응을 얻은 이후 버섯산업이 활성화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90년대 집중 개발된 느타리버섯 연중재배방법과 재배환경 제어 기준설정, 병해충 방제, 그리고 세계 유일의 재배방식인 볏짚을 활용한 균상재배법은 고품질의 버섯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 했다. 느타리버섯 생산액은 1990년 908억원에서 1995년 2천18억원, 2000년 3천118억원으로 급진적으로 증가하며 농가 수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또 90년대에는 채소 묘를 일년내내 균일하게 대량생산할 수 있는 공정육묘 기술이 도입됐다. ‘모종 농사가 절반 농사’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모종 기르기(육묘)는 한 해 농사의 성패를 좌우한다.

농진청은 여러 개의 재배 용기가 연결된 플러그 트레이를 이용해 소요되는 종자의 양과 육묘공간을 절약하고 온도, 광량 등 환경관리 및 양·수분 관리기술와 생육조절기술 등을 개발했다.

이에 따라 재배 농가가 육묘를 위해 투자했던 시간과 노력을 크게 줄일 수 있게 됐고 전문 공정육모장에서 전문 육묘기술로 생산된 고품질의 채소 묘를 연중 안정 공급해 채소의 안정 생산에 기여했다.

융·복합, 사양산업에 ‘고부가’ 새 생명 불어넣다 

1990년대를 지나며 국내 농업계는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른 임금 상승과 노동력 부족, WTO와 우루과이라운드 수입 개방 등 굵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쌀 혁명 프로젝트인 ‘탑라이스’는 이런 위기 속에서 추진됐다. 탑라이스는 농진청이 품질 목표를 정하고 농가에서 생산·품질 관리 표준 매뉴얼에 따라 생산한 국내 최초의 쌀 품질 브랜드다. 2005년 19개소였던 탑라이스 단지는 2008년 42개소, 2011년 66개소로 늘어났고 최고 품질 생산 매뉴얼적용 사업 면적은 2008년 3만2천㏊에서 2011년 6만1천㏊로 두 배 가까이 확대됐다.

또 질소비료 및 단백질함량 감축으로 우리 쌀 밥맛을 향상시켰으며 완전미 비율이 2004년산 86.8%에서 2008년산 93.9%로 증가해 우리 쌀의 품질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이와 함께 1960~1970년대 우리나라 근대화를 뒷받침하며 전성기를 누리던 양잠 및 양봉산업이 급속한 쇠퇴를 맞이하면서 농진청은 기능성식품 및 의약용 소재화 고부가가치 연구에 뛰어들었다. 단순히 비단을 생산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뽕잎이나 누에분말로 기능성 식품을 만들고 실크비누, 천연 비아그라인 ‘누에그라’, 실크단백질을 이용한 인공고막까지 개발하게 된 것이다.

봉독을 이용한 식의약 소재화 연구는 2005년 봉독채집장치 개발과 2007년 봉독정제법 개발에 이어 2008년 가축 적용 천연항생제와 2010년 봉독 여드름전용 화장품을 탄생시켰다. 이처럼 전통적인 양잠·양봉산업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재도약하면서 양잠산업 총생산액은 2001년 210억원에서 2009년 700억원으로, 양봉산업 총생산액은 같은 기간 3천190억원에서 4천800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친환경 농업’ 희망의 씨앗 심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생태계와 환경을 훼손하지 않고 인체에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업에 대한 필요성과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농진청은 고효율 가축분뇨 퇴비 및 액비화 시스템(SCB) 기술을 개발해 퇴비화 기간을 60일에서 30일 이내로 단축시키고 가축분뇨 퇴비화시설 악취저감 기술 및 장치를 개발해 악취농도를 획기적으로 감소(암모니아 420ppm→35, 황화수소 210ppb→32)시켰다.

또 자원순환형 가축분뇨 퇴·액비 및 바이오가스화 기술 개발에 성공하면서 가축분뇨 자원화율이 지난 2006년 82.7%에서 2011년 87.6%까지 올라갔다. 가축분뇨가 축산폐수라는 오명을 벗고 환경친화적인 소중한 자원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급속한 도시화로 도시 생활 환경이 악화되면서 이에 대한 처방으로 도시농업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도 최근 농업의 변화다.

농진청은 공기청정기와 식물이 결합된 융합상품인 식물공기청정기 및 실내 공기질 모니터링 화분을 개발하는가 하면 벽면녹화식물, 옥상텃밭식물 등 112종의 도시녹화 식물을 선발했으며 재배기구, 원예치료프로그램 등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사회적으로는 텃밭 활동으로 도시민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동시에 도시민의 소통을 증진시키며 물리적으로는 도시 환경을 정화해 도시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있다.

이양호 농촌진흥청장은 “이제 농업·농촌은 가능성과 희망의 상징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지난 50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개발과 성과를 극대화해 희망찬 농업, 행복한 농촌을 만드는데 더욱 힘쓰겠다”고 밝혔다.

글 _ 구예리 기자 yell@kyeonggi.com 사진 _ 농촌진흥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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