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경기도] 떠났던 아이들이 돌아왔다

작은 시골학교 교정 가득 ‘함박 웃음꽃’

남한산에 눈이 왔다. 처음엔 빗방울인 듯 사부작사부작 내리던 눈발이 갑자기 굵어지더니 100년 넘은 소나무가 금세 하얀 옷을 입었다.

갑작스레 쌓인 눈에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하굣길이 걱정이었지만 정작 아이들은 집에 가는 방법 따위엔 관심이 없다는 듯 운동장으로 뛰쳐 나왔다.

강아지처럼 운동장을 몰려다니던 아이들이 제 키만한 눈사람을 만들었다. 너나 없이 와르르 몰려들어 눈싸움을 하기 시작하니 조용하던 남한산 자락이 왁자지껄해졌다. 선생님이 나오신다.

‘빨리 들어오라’고 호통을 치거나 ‘조심하라’고 흥을 깨거나 ‘흙을 깨끗이 털어라’고 잔소리를 할 줄 알았던 선생님은 아이들과 함께 눈장난에 어울렸다. 코끝이 빨게지도록 정말 열심히 놀아줬다. 덕분에 아이들의 웃음이 눈꽃처럼 피어나는 이곳은 ‘행복한 학교’다.

지역사회·교사 노력으로 살아난 ‘남한산초등학교’

농어촌학교 통폐합 바람에 지난 2000년 전교생 고작 2명

지역 공동체 ‘꿈의 학교’ 의기투합… 현재 재학생 172명

남한산초등학교는 남한산성 등산로 입구, 학교가 있을거라 생각지 못한 곳, 수많은 등산객이 지나다니지만 관심이 없으면 알아채지 못할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남한산성 행궁권역 회전교차로 근처의 음식점 사잇길로 정문이라고 하기 민망한 입구를 들어서면 마치 다른 세상인 양 병풍처럼 둘러쳐진 남한산과 한옥모양의 단층 학교가 두팔 벌려 아이들을 반긴다.

현대 대한민국·경기도판 맹모삼천지교 열풍을 일으킨 혁신학교의 모델이라고 알려진 이 학교에는 현재 총 172명의 학생이 다닌다.

올해 102세인 남한산초등학교는 그리 순탄치만은 않은 역사를 가졌다. 1990년대 말 농어촌학교 통폐합 바람이 매섭게 불던 때, 학생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2000년 전교생이 26명 수준이던 학교는 폐교가 결정됐다. 사람으로 말하자면 사형선고다.

여기에 주목한 것은 주민들. 공교육의 변화를 바라던 학부모와 교사들이 합심해 꿈꾸던 학교를 그려나가기 시작했고, 집단전학이 이뤄지면서 몇달만에 학생수는 100명을 넘겼다. 그렇게 회생한 학교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학교였다.

우선 외관부터 달라졌다. 단층 건물 지붕 끝엔 처마가 있고, 교실마다 운동장을 향해 데크를 설치해 툇마루 기능을 살렸다.

덕분에 아이들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현관을 거치지 않고도 교실로 곧장 들어올 수 있다. 교실 벽면은 차가운 콘크리트 대신 잘 짜여진 선반 사이로 책이 가득하다. 어느 학급에나 있는 대형 녹색 게시판도 없다. 대신 학생들이 함께 만든 대형 그림이 있거나 꿈의 목록이 붙어 있다.

교무실은 더욱 생소하다. 교실보다 작은 교무실에는 선생님 책상은 온데간데 없고 'ㅁ'자 모양으로 회의책상만 배치해 뒀다.

학교 현황 등이 복잡하게 적힌 대형 칠판도 없고 벽면엔 책이 가득하다. 뿐만 아니라 교장실에도 손님을 응접하기 위한 편안한 소파와 탁자 대신 목공동아리 학부모들이 직접 제작한 회의 탁자가 있다. 교장선생님은 그나마 회의가 있거나 손님이 찾아오면 교장실을 내어 준다. 너무나 당연하게.

내형적으로 학교를 꿰뚫는 단어는 ‘자치’, 쉽게 말하자면  ‘스스로’다. 초기 남한산에서 시작된 학교의 변화가 선생님과 학부모의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한 체험교육이 주가 됐다면 이제는 학생들 스스로 선택하고 기획하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교육의 목표를 정하고 있는 것이다.

남한산초의 학부모는 열정적이다. 교육적 이상을 따라 산 밑으로 이사를 할 정도니 ‘맹모(孟母)’는 이미 따라잡은 셈이고, 학교활동 기여도는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없다.

올해 경기도교육청의 학부모회 조례가 시행되기 훨씬 전부터 학부모회가 활성화돼 있었던 것은 물론 학생들 만큼 많은 동아리를 구성해 학부모간 친목을 도모하고 소통의 계기를 만들고 있다.

선생님들은 얼굴을 맞대고 모여 앉아 수업과 아이들에 대한 문제, 선생님의 개인적인 이야기 등을 나눈다. 작은 학교라서 아이들을 모두 알고 있다는 점은 여기에서 매우 큰 장점이 된다.

우리 반 아이의 문제를 담임 혼자 해결해야 하는 구조의 큰 학교와 달리 아이들의 생활상을 모두가 공유하는 상태에서 동료교사들의 경험 나누기와 조언이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업무가 아닌 아이와 수업, 개인적인 이야기를 회의시간에 공유하면서 회의시간은 업무의 연장이 아닌 ‘힐링’ 시간이 된다.

장학금으로 일궈낸 번천초등학교의 기적

동문들, 폐교 위기 ‘모교 살리기’ 자발적인 동참

이낌없는 장학금·혁신학교 입소문 학생 늘어나

남한산초에서 나와 광주 방향으로 길을 잡아 10여㎞ 가량 산을 내려오면 광주IC 바로 옆에 번천초등학교가 있다. 번천초 역시 131명 규모의 작은 학교로, 동문과 지역 주민들의 도움으로 폐교 위기를 극복한 뒤 작은 학교로서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학교다.

규모는 작지만 큰 학교에 있는 것은 다 있다. 웬만큼 큰 학교에는 없는 운동장 트랙, 연못과 각종 수생물들, 모험놀이장, 야생화밭, 전통문화체험장 등도 갖추고 있다. 야트막하지만 광주 시내 어디서도 보이고 고려의 일곱 선비에 얽힌 전설이 남아 있어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칠사산(七士山)을 뒷산처럼 들락거릴 수 있는 학교다.

특히 번천초는 혁신학교는 아니지만 혁신적인 교육방법으로 학부모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끌면서 전입학 대기자가 넘쳐나는 곳이다.

농어촌학교 통폐합이라는 서슬퍼런 정책으로 무수한 시골학교들이 사라지고 있던 1990년대 말, 번천초는 학생수가 27명 수준으로 줄었다. 실거주자가 감소하면서 절대 학생수가 줄어든 것이다. 이후 폐교가 추진되면서 위기감을 느낀 동문들이 자녀들을 먼저 전학시키기 시작했고, 동문과 마을 주민들이 한 마음으로 한강수계관리기금 10억원을 모아 번천장학회를 만들었다.

이렇게 14년 전인 1999년 7월1일 본격적으로 출범한 장학회는 학교 졸업생들에게 파격적인 장학금을 내놓기로 하면서 본격적인 학교살리기가 시작됐다. 졸업생이 고교에 진학하면 50만원, 대학에 진학하면 100만원을 주기로 한 것이다. 장학회의 이같은 결정은 몇년만에 학생수 100명을 넘기면서 통폐합의 위기를 벗어나는 원동력이 됐다.

장학회는 지역내 졸업생들에게 꾸준히 장학금을 수여하는 것은 물론 재학생을 위한 지원도 넓혀갔을 뿐만 아니라 상번천리와 하번천리, 무수리 등 넓게 펼쳐진 통학구역 학생들의 등하교 편의를 위해 장학회 버스를 직접 운영한다.

버스 운영비는 물론 운전기사의 인건비까지 장학회에서 지원해 준 덕분에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지만 통학이 문제되지 않게 되면서 입학문의와 지원이 잇따랐다. 결국 번천초는 다른 학교들보다 1~2개월 먼저 학생을 모집하는 등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번천초는 번천장학회의 든든한 지원 덕분에 작은 학교의 성공을 거두면서 이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의 노력도 기울였다.

요즘 유행하는 ‘혁신학교’는 아니지만 번천초는 작은 학교이기에 자율적으로 수업시간을 편성해 블록수업을 진행하고 아이들이 맘껏 뛰어 놀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줬다. 작은 학교라서 가능한 일들을 다양하게 고민해내고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학교 건물을 중심으로 형성된 번천초생태학교는 학교의 자랑이다. 규모는 작지만 각종 동물이 자라고 있는 사육장과 문화체험장, 야생화단지와 연못, 모험놀이장 등이 학교를 둘러싸고 있어 굳이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웬만한 체험이 가능하다. 학교는 이런 시설을 외부학생에게도 개방하면서 관내 학교와 성남지역 학교 등이 함께 시설을 체험하는 기회를 주기도 했다.

지역주민의 힘으로 되살아난 학교로서 지역과의 소통 강화도 학교가 신경쓰고 있는 분야다. 학부모들이 공동으로 개최한 바자회를 통해 인근 노인회에 위문잔치를 벌이고, 노인회와 함께 체험학습을 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인근 지역으로 번져나간 ‘작은학교 살리기’

학부모 교육·교사연수 공유 ‘에듀벨트’ 구축

가슴 따뜻한 아이들 행복한 배움터 자리매김

남한산초와 번천초 등 작은 학교를 살리려는 노력이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광지원초등학교와 분원초등학교 등 인근 작은 학교들이 에듀벨트를 형성하기도 했다.

반경 10㎞ 안에 이웃해 있는 학생수 100~200명 규모의 4개 학교가 교육 과정을 공유하고 자원을 함께 활용하면서 작은 학교의 경쟁력을 갖추고자 한 것이다. 재정난으로 예산지원이 끊기면서 올해는 활동이 뜸해졌지만, 이 학교들은 학부모 교육과 교사 연수 등을 공유하면서 ‘작은 학교의 저력’을 보여줬다.

작은 학교 아이들은 학교에서 만난 낯선 사람을 경계하기보다 따뜻한 눈빛을 담아 먼저 인사를 건넬 줄 알았고, 자신의 의견을 스스럼없이 표출했다. 취재를 하는 몇시간 동안 쉬지 않고 눈이 내리면서 차량 위에 소복히 쌓인 눈을 치우고 있을 때 “제가 도와드릴게요”라고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아이들도 있었다.

우리가 교육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높은 학업적 성취만이 아니라면, 한번쯤 교육에 대해 고민해 봤다면, 교사와 지역주민의 역량으로 되살아난 폐교 위기의 외딴 지역 작은 학교들을 들여다 보자.

글 _ 이지현 기자 jhlee@kyeonggi.com 사진 _ 추상철 기자 sccho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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