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통일은 현실문제이다

‘통일은 대박’이라는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은 적절치 못했다. 대통령의 이 발언이 나오자마자 정부 부처와 많은 언론은 통일한국의 핑크빛을 그리기 시작했다. 통일한국은 정치·경제적으로 몇 안 되는 세계 최강국으로 등극하게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만약 통일이 된다면 안보비용이 21조가 절감된다고 1면 톱기사에 싣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통일’에 대해 냉소적이었던 보수 언론이 더 집요했다. 흡사 ‘로또’에 당첨된다는 가정하에 상상과 계획을 짜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통일은 숱한 변수와 예기치 못한 과정이 예상되는 영역으로서 팩트(사실)를 금과옥조로 여겨야 할 언론들의 반응이 상당히 당혹스럽다.

통일은 엄연한 현실의 문제이다. 통일한국은 여러 각도에서 객관적·과학적으로 구상되어야 할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통일로 가는 분단해소과정에 대한 확고한 정부정책이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지금 국가정책으로서 통일정책은 정치적으로 단절과 갈등 및 대립으로 얼룩져 있는 상황이다.

6·25 한국전쟁 이후 남북한 간의 접촉을 당사자의 법적 지위를 기준으로 비교·구분할 때 1953년 제네바 회담은 전쟁 중인 교전단체 간의 회담이었고,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은 대치 중인 남북 간의 성명이었다. 반면에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를 정부 간의 합의라고 한다면, 2000년 남북정상회담은 정상 간의 만남으로써 국가 간의 회담으로 규정지을 수 있다.

그런데 6·15남북공동선언을 폄하하는 입장에서는 ‘6·15 선언은 무허가 통일방안에 의한 국가정체성의 변조 기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변조한 현대판 역모’, ‘DJ의 한여름 밤의 환각으로서 사문화된 문서’ 등의 무자비한 융단폭격을 가했다. 남남갈등의 해소 없이는 통일을 향한 남북관계 발전은 한 발짝도 못 나가는 극단적인 예다.

다행스럽게도 통일 및 북한과 관련하여 우리 사회를 이념적 스펙트럼에 비춰볼 때 ‘극단적·냉전적 사고를 가진 사람’과 ‘환상적 통일론자’는 양끝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대다수 국민은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통일정책과 남북교류의 활성화와 그 진척을 기대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 발언을 평가할 가치로 승화시킨다면 상당기간 동안 장롱 속으로 사라져버린 통일정책 논의를 재개하는 계기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과거 한때(유신 및 제5공화국 시기) 양심의 자유의 영역인 통일관의 형성에마저 국가가 관여하여 사회주의 서적도 읽지 못하게 했으며, 다양한 통일논의를 용공 시 하여 금기시하였던 적이 있었다.

정반대로, 적극적인 통일정책을 지향했던 시기(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시기)에 가장 큰 문제는 정부의 통일정책 추진에 대하여 남남갈등의 이데올로기적 정치공세가 지나치고 정치권에서는 이미 선거전략의 도구로 일상화되었다는 점에 그 심각함이 있었다. 향후 ‘바람직한 통일관 → 다양한 통일논의 → 일관된 통일정책’의 순서에 따라 형성된 국가의 통일정책이라면 정치공세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통일대박’이라는 대통령의 발언이 현실적 성과를 얻기 위해서 최소한 두 가지의 대내외적 조치가 뒤따라야 할 것 같다. 하나는 대통령이 국내적으로 각계각층의 다양한 통일논의와 공론화 과정을 수용하는 것이고, 대북조치로서는 북한 지도부에 대한 평화공세와 제의를 결코 김정은 정권에 대한 화해 제스쳐가 아니라 큰 틀에서 볼 때 북한체제를 움직인다는 거시적 안목이 필요하다고 본다.

대통령의 통일대박 발언에 대한 정부의 방침을 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북문제를 모든 국민과 함께 공감하기 위한 각계각층의 논의과정을 전문가들과 입체적인 해법을 찾는 것이다. 지금의 남북시대에서 대북통일정책은 이념의 영역이 아니라 전문가의 영역으로서, 대북문제를 보수·진보 간의 정치적·사회적 논쟁으로 끌고 가는 것은 정치·경제·문화의 대북 우월적 지위를 내려놓는 어리석은 짓이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헌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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