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通인터뷰] 박정준 자동차 튜닝 마니아

나의 애마 ‘성형수술’ 새생명

‘바퀴가 번쩍이고 피스톤이 펌프질하는 꿈의 기계/ 핸들을 잡으면 기어 소리뿐, 기름을 넣을 때 난 마치 병에 걸린 것 같아/ 난 내 차와 사랑에 빠졌지~’  영국의 전설적인 록그룹 퀸(Queen)의 노래 ‘난 내 차와 사랑에 빠졌다(I’m in Love with My Car)’의 가사는 자동차에 보내는 애절하고 절절한 연애편지다.

퀸이 이 노래를 불렀던 1975년은 그랬을 수도 있겠다. 원체 차가 귀했던 시기였으니.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눈에 채이고 차이는 게 자동차다. 어떨 땐 사람보다 차가 더 많아 보일 때도 있다.

똑같은 색상, 비슷한 생김새. 주차장 안에 있으면 찾기도 힘들다. 이제 차는 탈 것 이상의 의미나 가치는 없다. 그냥 기름 덜 먹으면서 씽~씽! 빨리 달리는 차면 ‘장땡’이다. 식상한 차들의 시대. 차가 곧 ‘자신’과 같다 말하는 이가 있다.

그는 차도 사람처럼 각기 다른 성격과 개성을 지녔다고 한다. 그래서 그에 맞게 차를 가꾸고, 아끼며,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동차 튜닝 마니아 박정준씨(35)의 이야기다.

금빛 휠·48개 LCD 패널 장착… 지난해 ‘예쁜 차 선발대회’ 우승

지난 2월 16일 화성 반송동의 한 카센터 차고지에서 본 박 씨의 ‘크라이슬러 C300’의 첫 인상은 평범했다. 특이한 구석은 없어 보였다. 그냥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외제차였다.

방송인 노홍철의 ‘홍카’처럼 요란한 무늬로 치장하지도, 그 흔한 LED도 별도로 부착된 것 없는 밋밋한 외관 그 자체였다. ‘도대체 뭘 바꿨다는 거지?’. 마음속 의문의 말마디가 꼬리를 물 즈음, 뭔가 반짝였다.

황금색 도장이 입힌 타이어 휠. 일반적인 은색 휠 보다 고급스러움이 눈길을 끌었다. 무거워 보이는 흰색 차체와 금빛 휠이 절묘하게 어울렸다.

박 씨는 “일반적인 휠에 아노다이징이라는 특수기법을 이용해 금색 도장을 입힌 것”이라며 “금속 내에 도장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휠을 깎아내도 색이 동일하다”고 말했다.

비용은 4개 휠 모두 합쳐 1천만 원이 들었다. 휠 자체도 한국에서 구할 수 없는 탓에 미국에서 직접 공수해왔단다. 이뿐이 아니다. 박 씨는 내부에 비하면 외부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강조했다.

박 씨가 자신 있게 차 앞문을 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좌우측 차량 문에 매몰 설치된 십여 대의 LCD 패널. 차 문이 열리고 시동이 걸리자 전원이 들어온 모니터에는 영상이 물 흐르듯 차례차례 재생됐다.

차량 트렁크는 더욱 별났다. 클럽을 차량 안에 옮겨온 듯 화려함 그 자체였다. 스피커의 모양을 따라 동그란 모양의 LED가 휘감은 카오디오, 안정적인 전력공급과 관리를 위한 퓨즈박스, LCD 패널이 설치돼 있었다.

오디오를 조작하자 스피커에서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에 따라 LED 조명도 함께 춤을 췄다. 박 씨는 “차 안에 있는 LCD 패널만 모두 48개에 달한다”며 “캠핑이나 레저, 튜닝 쇼 등에 사용하기 위해 기능적인 부분보다는 미적인 부분을 살려 설계한 차량”이라고 밝혔다.

LCD 패널과 LED조명, 스피커 등을 다양하게 운영하다 보니 제작기간만 무려 2년이 걸렸다. 여기에 소요된 제작비용만 6천만 원. 중고로 매입한 차량가격이 1천500만원임을 고려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심혈을 기울인 덕인지 좋은 소식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국토교통부에서 주최한 ‘2014 예쁜 차 선발대회’에서 1등을 한 것. 심사위원과 현장투표에서 좋은 평가를 얻어내며 함께 참가한 90여 대의 차량을 가뿐히 제쳤다.

그는 “정부 주최로 열린 첫 행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개인적으로 뿌듯하다”며 “무엇보다 튜닝을 불법으로 여기던 정부의 변화된 인식을 엿볼 수 있어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차에 관심… 미국 유학시절 어깨 너머로 배워

박 씨가 본격적으로 튜닝에 취미를 붙인 것은 대학에 들어간 이후부터다. 사실 차에 대한 관심은 어릴 때부터 있었다. 자동차 뿐만 아니라 자전거와 오토바이 등 특히 탈 것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문구점에서 판매하는 차량 프라모델을 구입해 조립하고 색칠하는 것이 유년시절 유일한 취미기도 했다. 그러다 중학교 때부터는 사이클을 시작했다. 차츰 실력이 쌓이면서 고등학교 때인 1998년 말부터 2000년 중반까지 산악자전거(MTB) 국가대표 선수생활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비인기 스포츠 종목의 비애가 그렇듯 군 입대와 동시에 선수생활도 접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는 자동차로 풀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과 함께 차량 튜닝을 하며 경험과 지식을 습득했다. 전문적인 영역에 진입하게 된 것은 2006년 미국 어학연수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

미국 플로리다 주 올랜도의 한 카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것이 인연이 됐다. 한국보다 큰 시장에서 어깨 너머로 전문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차량 스캐닝부터, 서스펜션, 스태빌라이저 바, 브레이크 튜닝 등 차츰차츰 기본기를 다져갔다.

그러다 1년 4개월 뒤에 한국으로 돌아와 포털의 튜닝 커뮤니티 활동을 하며 회원 간 친목과 국내 활동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확대했다. 이때부터 2009년까지 모두 4대의 튜닝차량을 운행하며 그동안 갈고 닦은 튜닝실력을 뽐냈다.

하지만 불행은 어느 날 갑자기 닥쳤다. 하나 밖에 없는 형이 갑작스런 교통사고 숨진 것이다. 충격은 컸다. 다시는 자동차 핸들을 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고통을 감내할 수 없어 지금껏 모아둔 모든 튜닝 차량을 전부 매각했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형이 하던 농수산물 경매업체를 물려받아 사업을 시작했다. 그 사이 마음에도 변화가 있었다. 무엇보다 허전함을 떨칠 수 없었다. 자동차를 다시 시작했다. 처음에는 부모님의 반대가 너무나 완강했다. 그래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말조차도 건네지 못했다. 몰래몰래 한 두 대씩을 구매해 튜닝을 했다.

지인의 차고지에 모셔놓고 돈이 모일 때 마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마다 부품을 갈았다. 그렇게 지금까지 다섯 대의 튜닝 차량이 생겼다.

그는 “형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등지면서 튜닝에 대해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며 “갈등이 많았지만 꾸준히 부모님을 꾸준히 설득했고, 튜닝 분야에 대한 사업적 비전과 튜닝 대회 우승으로 차츰 닫혔던 부모님의 마음도 열렸다”고 말했다.

국내 자동차 튜닝 시장 ‘봄날’… 인식의 변화 기대

기회도 왔다. 경진대회 우승과 함께 지난해 12월 국토해양부가 차량 튜닝 분야에 대한 개방과 지원 정책을 발표했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기조 중 하나로 자동차 튜닝 시장의 가능성을 인정한 것이다. 이와 함께 튜닝 시장 활성화를 위해 4조 원의 투자 계획도 발표했다.

아직 구체적인 언급과 계획은 없지만 무엇보다 정부가 불법과 합법의 경계에 있던 튜닝 시장의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는데 의의가 있다.

특히 기아나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의 순정 부품 독점 공급으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튜닝 부품 등 애프터마켓 시장의 규제 완화와 지원 대책 성격이 강하다.

이 같은 기조에 부응해 박정준씨도 지난 1월부터 ‘K-SPORTS’라는 이름으로 튜닝 부품 사업을 시작했다. 미국의 부품 사업체의 한국 총판을 획득해 현지에서 생산되는 브레이크와 서스펜션을 전문적으로 수입해 국내에 공급하는 사업이다.

이미 국내에도 몇 곳의 비슷한 업체가 있지만 소비자가가 비싼 단점이 있었다. 통관 절차가 복잡하고 일부 품목의 국내 유통이 불법이다 보니 업체들이 위험부담을 이유로 가격을 높이 책정하기 때문이다.

튜닝시장의 저변확대를 위해 이윤을 대폭 줄이고 온·오프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공동구매를 진행, 기존가보다 저렴한 가격에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현재까지 50개 가량의 물량 주문이 접수되는 등 점차 입소문을 타고 있다.

그는 “인식과 규제가 다소 완화되기는 했지만 미국이나 유럽, 일본에 비하면 풀어야할 숙제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며 “튜닝 시장이 일자리는 물론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영역이 만큼 다양한 지원과 인식 변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 _ 박광수 기자 ksthink@kyeonggi.com 사진 _ 추상철 기자 sccho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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