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세 회장 INNO 철학 담은 제품 한 곳에 서울 DDP에 제품 전시장 오픈
한국에서 오늘을 사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김영세’와 ‘이노디자인’을 만났다.
그가 디자인한 제품은 소비 여부를 떠나 현대인의 일상과 기억 속에 뿌리 깊이 박혀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2004년 출시된 삼성 애니콜의 ‘SCH-V500’ 기종. 일명 ‘가로본능폰’ 이라 불리며 휴대폰 업계 일대 혁신을 가져왔던 그 폰이 바로 그의 작품이다. 이 뿐이 아니다.
실용성이 강조된 독특한 외관으로 신생에 불과했던 ‘아이리버’를 일약 세계적인 음향업체 반열에 올려놓은 ‘크래프트’ 모델 디자인을 맡은 곳도 바로 ‘이노’다. 그의 성공은 디자인을 기술의 하위라 여긴 기술 패권적 한국사회에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왔다.
오늘날, 디자인은 미래 고부가가치 창출의 강력한 수단이자, 창조경제를 움직이는 핵심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이노가 있다.
지난 3월 21일 이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서울 을지로7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배움터 3층에 자리한 ‘YKDM 둘레길 쉼터’가 바로 그곳이다.
글로벌 디자인 그룹으로 도약 ‘창조경제 리딩기업’
3월 21일. 서울 을지로7가에 위치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한 지 딱 7년 만에 디자인 전시공간으로 탈바꿈해 시민들 품으로 돌아왔다. 유려한 곡선이 돋보이는 비정형의 건축물. 곧게 뻗은 직선들이 점령한 서울의 하늘을 바꿀 혁신적 건축물임은 분명했다.
이 건물 배움터 3층에 자리한 ‘YKDM 둘레길 쉼터’도 이날 함께 개관했다. DDP와 이노디자인이 가진 혁신의 아이콘이 조응하듯 묘한 공간적 어울림이 있었다.
공간은 생각보다 넓지 않았다. 물리적 규모나 부피로 대체할 수 없는 인간 본연의 상상과 사유의 힘을 강조하는 김 회장의 철학을 닮은 듯 ‘심플’(Simple)하면서도 전시 작품과 도구가 유기적으로 관계하는 ‘콤플렉스’(Complex)한 공간이었다.
이날 2시에 시작된 오픈식에는 정운찬 전 동반성장위원장, 임창열 경기일보 대표이사 회장, 홍상표 한국콘텐츠진흥원장, 장 마누엘 스프리에 페르노리카 코리아 사장 등 모두 200여 명의 디자인 업계 관계자와 학생 등이 방문해 개관을 축하했다.
김영세 회장은 “지난 28년간 늘 한국으로 돌아와 디자인 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며 “내가 어린시절 디자인에 빠져든 계기가 있었듯 이 공간에서 젊은이들이 디자인에 대해 경험하고 나누고 함께 소통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개관 소감을 밝혔다.
가로본능·크래프트… 산업 디자인의 역사를 새롭게 쓰다
축사에 이어 김영세 회장의 소개와 함께 이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엿볼 수 있는 10분의 짤막한 영상물이 공개됐다.
‘하늘’을 뜻하는 ‘동그라미’, ‘땅’을 뜻하는 ‘네모’, ‘사람’을 뜻하는 ‘세모’ 즉, 천지인(天地人)의 조합을 통해 제작된 CI(Corporate Identity) 탄생기부터 MP3 플레이어, 휴대폰, 카메라 디자인 등 이노의 대표 디자인 소개가 이어졌다.
가장 눈길을 끈 대목은 ‘박물관 나들길’ 디자인 부분. 이날 소개 중 가장 비중 있게 소개된 나들길은 국립중앙박물관과 서울지하철 이촌역을 잇는 255m 길이의 지하보도다. 지난 2012년 12월 27일 개통된 이 길은 한국을 상징하는 태극과 4괘 문양인 건곤감리(乾坤坎離) 디자인을 적용해 천장 조명과 벤치를 모던하면서도 한국적으로 살렸다.
또 가야금 명인 황병기의 ‘실크로드’를 배경음악으로 깔아 박물관으로 걸어가는 8분의 시간 동안 한국적인 멋과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기획했다.
영상을 소개하며 김영세 회장은 “메인 박물관에서 정식 관람을 하기 전에 가볍게 애피타이저를 먹는 느낌을 선사하고 싶었다”며 “한국인의 유연함을 나타나는 태극의 곡선과 강인함을 뜻하는 4괘 적용해 실용적이면서도 한국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데 주력했다”고 소개했다.
이와 함께 전시장 중앙에는 그동안 이노가 디자인한 70여 개의 제품이 관람객을 맞았다. 2004년 9월 출시돼 반년 사이 50만 대의 판매고를 올린 애니콜의 명작(名作) ‘가로본능폰(SCH-V500)’과 삼성과 LG전자의 쿼티 계열 슬라이딩 스마트폰까지 10여 종의 휴대폰이 전시됐다.
가로본능폰과 함께 이노를 대표하는 제품 디자인인 아이리버(구 레인컴)의 ‘크래프트’(IFP) 모델 시리즈도 선보였다.
2002년 출시된 이 제품은 바(Bar) 형태의 MP3 플레이어로 항공모함을 닮은 멋스러운 디자인에 상하좌우로 움직이는 스틱을 채용해 사용자의 편의성을 극대화하도록 디자인된 제품이다.
이 같은 장점 덕분에 국내에서만 100만 대가 팔렸고, 이듬해 해외에 수출돼 시장점유율 1위를 달성하는 등 세계 산업 디자인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제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밖에도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를 채용한 ‘H10’ 모델, 크래프트에 곡선의 미(美)를 살려 놓은 ‘T10’, 목걸이형 MP3 플레이어 ‘N10’ 등 2000년대 초·중반 인기를 끈 추억의 제품도 함께 전시됐다.
이날 전시장을 찾은 대학생 김지은씨(여·20)는 “TV나 책에서만 보던 김영세 회장을 직접 만나 디자인 이야기도 듣고 제품도 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며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오늘 보고, 들은 것을 토대로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고 관람 소감을 밝혔다.
자체 디바이스 브랜드 ‘이노웨이브’ ‘T-LINE’ 공개
전시장에는 이노의 과거와 현재만 소개된 것은 아니다. 이노의 미래를 선도할 새로운 디자인도 선보였다. 최근 가장 주력한 모델은 이노디자인의 자사 디바이스 브랜드 ‘이노웨이브 헤드폰’이다.
기존 헤드폰과 달리 헤드라인 부분에 주름(wave)을 줘 착용했을 때 안락함과 편의성은 물론 컬러풀한 감수성까지 갖춘 제품이다.
이런 창의성과 독창성을 인정받아 최근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로 꼽히는 ‘2014 iF 디자인 어워드’ 프로덕트 디자인 AV부문에서 본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번 제품은 기업에 디자인을 발주한 것이 아닌 ‘이노’ 라는 자사의 디바이스 라인업을 통해 직접 제품 개발과 생산, 유통까지 전담한 제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여기에 아이돌 가수인 ‘엔씨아(NC.A)’를 전속 모델로 채용해 귀엽고 발랄한 제품 이미지를 홍보하고 있다.
이날 전시장에서 엔씨아는 직접 행사장을 방문해 관람객을 대상으로 추첨해 이노웨이브 헤드폰과 이노튜브를 증정 이벤트를 진행하는 등 적극적인 브랜딩 마케팅을 펼쳤다.
헤드폰 이외에도 블루투스 스피커인 ‘이노튜브’와 태극 문양의 분위기를 살린 브랜드 ‘T(태극)-LINE’도 론칭했다.
선글라스부터 넥타이, 손수건, 스카프, 접시, 가방, 노트 등 다양한 제품에 T-LINE 컬렉션을 준비했다. YKDM 둘레길 쉼터에서는 이들 제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별도의 구매공간을 운영 중이다.
김 회장은 “디자이너는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개발하고 가꾸어 나가는데 있다”며 “자체 브랜딩한 이노웨이브·T-LINE 모델이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번 YKDM 둘레길 쉼터가 디딤돌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글 _ 박광수 기자 ksthink@kyeonggi.com 사진 _ 김시범 기자 sbkim@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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