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문화지도를 바꾼 한류의 나라 대한민국이 아니었다. 피겨스케이팅의 역사를 새로 쓴 김연아의 대한민국이 아니었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와 붉은 악마의 길거리응원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대한민국이 아니었다. IT강국 대한민국이 아니었다.
마지막 승객을 구할 때까지 배를 지켜야 할 선장이 가장 먼저 빠져나갈 때, 조난신고를 선원보다 승객 가족이 먼저 했을 때, 신고 후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구조작업이 시작되었을 때, 탑승자 수와 구조자 수가 시시각각으로 바뀔 때, ‘학생 전원 구조’ 소식이 오보로 드러났을 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해경의 발표가 번번이 잘못된 내용이었을 때 대한민국의 민낯은 정말 참담했다.
물론 사고는 정부의 책임이 아니다. 1차 책임은 안전 규정을 무시한 무리한 운행과 책무를 포기하고 자신들만 살아남은 무책임한 선장 등 선원들에게 있다. 그러나 세월호 침몰 이후의 처리에 무능했던 정부는 2차 책임을 져야 한다. 정부의 초기 상황 오판과 그에 따른 부실한 대응이 피해를 키웠다. 세월호가 물 위에 떠있던 2시간 20분 동안 눈에 보이는 사람들만 구조하는 사이 세월호는 수백 명의 소중한 목숨과 함께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배 안에 타고 있던 사람은 단 한 명도 구조되지 못했다.
대통령이 현장을 찾아가 가족들을 위로하고 최대의 노력을 약속했지만 단 한 명의 목숨도 살려내지 못했다. 국무총리가 승객 가족들과 대화하고, 장차관과 국회의원 등이 다녀갔지만 정확한 사고원인조차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가장 큰 피해를 당한 단원고가 안산시에 있어서 경기도민들의 관심과 안타까움이 더욱 강했다. 그런데 일부 경기도 인사들의 부적절한 행동이 구설수에 올랐다.
빠른 해결을 요구하는 피해자 가족들에게 김문수 경기지사가 사고현장이 경기도가 아니라 자신의 영향력이 없다며 해수부 장관에게 미뤘다는 보도는 믿고 싶지 않다. 김 지사는 애도시를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가 누리꾼들의 비판에 글을 지우기도 했다. 새누리당 경기지사 예비후보인 남경필 의원도 지적을 받았다. 시청률과 인터넷 기사 클릭 수를 의식해 피해자 가족들의 아픔과 인권을 나 몰라라 한 언론보도도 많았다.
지금은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있지만 세월호가 인양이 되고 피해자들의 영결식이 치러지고 나면 가슴에 못이 박힌 가족 친지들이 아니라면 조금씩 잊어갈 것이다. 그러나 세월만이 약은 아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안전한 대한민국’을 핵심 국정철학으로 제시하였다. 행정안전부가 안전행정부로 이름이 바뀌었고, 국민안전종합대책이 세워졌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최우선 국정과제인 안전은 1년 만에 구멍이 났다.
김영삼 대통령 때 너무나 많은 사고가 터졌다. 땅에선 열차가 탈선하고 백화점이 무너졌으며, 하늘에선 비행기가 추락하고, 바다에서는 훼리호가 침몰하고, 강에선 다리가 붕괴되고, 호수에서는 유람선에 불이 나 수많은 국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기차가 탈선하고 비행기가 추락하고 배가 가라앉고 다리와 백화점이 무너진 것이 김영삼 정부의 책임은 아니다. 그러나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의 위기관리능력 부재와 무책임은 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신뢰와 지지를 약화시킨 게 사실이다. 이런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처리에도 이후의 대책마련에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 안전만이 살 길인 것이다.
손혁재 수원시정연구원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