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김원일 쯔루가메 셰프

일본보다 더 일본스러운 ‘日食’

‘절망이란 어리석은 자가 내리는 결론이다’.

일본의 인기 만화 ‘미스터 초밥왕’의 주인공 ‘쇼타’의 대사다. 이 우글대는 구절에 ‘삶’을 건 이가 있다.

국내 최고의 일본 요리학교를 만들겠다는 일념에 40억 원의 사비를 털었다. 하지만 시장은 척박했고, 인식은 편협했다. 각종 자격과 규제가 발목을 잡았다.

 그 만의 ‘도제’식 교육방식에 백기를 들고 나간 학생도 많았다. 결과는 실패. 그럼에도 그에겐 ‘절망’의 그림자가 없다. 교육자의 꿈은 버리지 못했다.

틈틈이 글을 쓰며 10여 권의 요리책을 썼다. 지난 2010년부터 지금까지 4년 간 10억 원이 넘는 돈과 열정을 쏟았다. ‘권토중래’(捲土重來)의 자세로 분기탱천하는 일식요리사 김원일 셰프(56)를 만났다.

유명 셰프에서 교육자로… 좌절된 실험

4월 15일 오후 3시, 성남에 위치한 일본음식점 ‘쯔루가메’. 주방 한 가운데에는 그가 직접 붓으로 그린 그림과 붓글씨가 눈에 띄었다. 한 눈에 봐도 보통 실력은 아니었다. 그는 영업이 끝난 뒤에 틈틈이 ‘붓글씨’를 쓴다.

일본 유학 시절, 요리를 배우면서 함께 시작했다. 그의 요리인생이 40년 임을 고려하면 붓글씨도 대략 4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오며 견고해졌다.

그는 세계 3대 요리학교로 불리는 일본 오사카의 ‘아베노쯔지’를 졸업했다. 한국에서 ‘요리’는 학교보다는 학원 프레임에 갇혀 있다. 그래서 그에 걸맞은 지위도 딱 그 수준이다.

‘아베노쯔지’ 만해도 400년이 넘는 전통과 역사를 지녔다. 이곳에서 음식을 배우기 위해서는 일본음식의 역사와 전통은 물론 예(禮)와 도(道)를 익히지 않으면 요리를 배울 수 없다.

성년이 되기 전, 김 셰프는 이곳에서 요리를 접하며 ‘붓글씨’와 ‘그림’, ‘꽃꽂이’ 등도 함께 배웠다. 붓글씨를 통해 차분하고 정갈함 마음가짐을, 그림과 꽃꽂이를 통해 음식의 미학적 감각을 익혔다.

그렇게 배운 실력으로 일본의 유명 레스토랑에서 수년 간 일을 하다 1995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사실 그는 셰프보다는 교육자의 꿈이 더 컸다.

국내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4년 간 수석 셰프 생활을 했다. 그러다 1999년 성남에 일본음식점을 오픈했다. 오너 셰프로서의 새 삶을 시작했다. 일본에서 행운을 기원하는 동물인 ‘학과 거북’에서 뜻을 따와 ‘쯔루가메’로 식당 이름을 정했다.

처음에는 1층으로 시작했으나 리모델링과 개축을 거쳐 현재의 3층 건물로 탈바꿈했다. 여기에는 다른 속셈(?)이 있었다. 바로 ‘요리학교’를 세우는 것.

여기에는 사비만 40억 원이 소요됐다. 조리 연습실과 교실을 만들고, 조리도구를 개수에 맞게 사왔다. 한국에는 적당한 교재가 없어 스스로가 직접 책을 쓰기도 했고, 일본에서 공수해온 교재를 가지고 제자들과 함께 강독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학교를 세우기 위한 초기 자본금과 시설 등 기본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학교설립이 좌절됐다. 하지만 벌여놓은 일이 많아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렵게 ‘학교’에서 ‘학원’으로 개설했지만 ‘반 쪽’짜리 출발이었다.

그래도 김 셰프의 명성을 듣고 많은 학생이 찾아왔다. 하지만 ‘주입식’에 길들여진 한국식 교육에는 ‘도제식’ 교육 시스템이 제대로 들어맞지 않았다. 특히, 적지 않은 교육비를 내고 하는 수업에서 처음 시작하는 일이 ‘붓글씨’와 ‘꽃꽂이’ 라니. 이를 수용하기는 쉽지 않았다.

다수의 학생이 중도탈락했다. 100여 명의 제자 중에서 김 셰프의 엄격한 커리큘럼을 통과해 수료한 학생은 8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요리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인만큼 누구나 쉽게 가르치고 배울 수 없다고 여겼다.

음식은 결국 사람에 관한 것

학원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 2008년을 끝으로 졸업생을 배출하지 못했다. 그래도 학생들은 미국과 호주, 일본과 국내 유명 호텔 주방 등 본연의 위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배움과 교육에 대한 미련은 남았다. 틈틈이 글을 썼다. 학교 설립시절 썼던 교재를 보강하고 틈틈이 새로운 글을 써서 책을 냈다. 글귀 하나하나 사진 한장한장 세심하게 써내려갔다. 음식을 담는 그릇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일본에서 ‘도자기’를 공수해 사진자료로 활용했다.

그렇게 올해까지 4년간 10억 원이 넘는 돈이 쓰였다. 자필로 빼곡히 기록한 노트에는 100권 분량의 원고와 50만 컷의 사진을 선별해야 했다. 까다롭고 힘든 작업이다 보니 선뜻 책을 내려는 출판사도 없었다. 그래서 김 셰프는 ‘도서출판 원일’이라는 출판사를 직접 차렸다.

이 때 까지 낸 책만 ‘일본요리1’, ‘일본요리2’, 자서전 형식의 ‘혼이 깃든 김원일의 외곬 요리인생’, ‘정통초밥요리’, ‘김원일의 디저트’, ‘면요리 백과’ 등 10여 권이 넘었다.

한 권당 10만원이 넘는 고가에 판매도 가게에서만 했지만 예비 요리사에게는 이미 바이블로 통한다. 이 때문에 일부 대학 조리·요리학과 교수가 교재로 쓰기 위해 김 셰프의 ‘쯔루가메’를 찾기도 한다.

직접 제자를 길러내고 싶다는 김 셰프의 꿈이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그간 펴낸 책들은 쯔루가메 입구에 있는 서재에 가득 꽂혀있다. 대충 봐도 그 분량이 상당했다.

김 셰프는 “요리도 책도 결국엔 사람에게 남는 것”이라며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나만의 비밀로 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알리고 가르치면서 확산하고 변화해가는 음식문화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음식 하나에 역사와 전통 … 맛은 기본

쯔루가메의 음식은 양이 적고 비싼 편이다. 정통 가이세키(일본식 정찬요리)만을 고집한다. 등급별로 횟감을 정해놓고 그때그때 마다 산지에서 활어를 직접 공수하고 있다.

그래서 요리 맛 좀 볼 줄 안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지만 다른 일식당처럼 문전성시를 이루는 경우는 거의 없다.

메뉴판도 독특하다. 정통 일본요리 전문점인 만큼 메뉴이름부터 가격까지 일본어와 한자로 씌어있다. 처음 음식점을 찾은 사람들은 메뉴판을 받아보면 열의 아홉은 당황한다.

어떤 것을 먹어야 할 지 손님들의 ‘알권리’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지 않다 ‘불친절’하다 여기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내 김 셰프의 친절한 설명이 이어진다.

횟감의 상태에서부터 스끼다시, 요리의 역사와 맛있게 먹는 방법까지 세세하게 설명한다. 김 셰프의 설명을 듣고 있다 보면 마치 ‘병원 차트’를 들여 보듯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진다.

“기본을 알면 창의도 자연스러운 겁니다. 소재의 해부학, 생태학을 다 알면 얼마든지 다른 맛을 끌어낼 수 있는데 그걸 모르고 자기가 만들어내려 하면 그건 창의가 아니죠. 생선 한 마리를 해체하더라도 기본을 지키면 최상의 맛을 낼 수 있고, 그게 토대가 되면 고등어 하나로도 500가지 요리가 가능한 거예요.”

‘오감쾌락’을 추구하는 가이세키 요리는 접시 위의 미적 표현이 관건이다. 요리를 담을 때도 계절감, 음양사상을 기본으로 그릇의 여백과 형태, 색감까지 고려하는 디자인 감각이 필요하다. 김 셰프가 서도와 어탁, 꽃꽂이를 연마하는 것도 예술적 요리의 완성을 위한 수련의 일부다. 추사 6대 제자인 장헌(章軒) 조득상에게 배운 서도는 ‘2010 한·중·일 베세토 서울전’에 출품할 정도.

그는 진정한 요리 발전을 위해서는 풍류와 문화가 함께 따라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대로 된 접대문화가 있어야 해요. 우리는 기생문화가 없어지고 고약한 룸살롱 문화가 생겨 나라를 망쳤어요. 일본 게이샤들을 보세요.

노래도 하고 악기도 다루는 예인들과 풍류를 즐기는 게 게이샤 문화예요. 개인적으론 기생문화를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요리 문화엔 풍류가 따라줘야 해요. 요리는 그냥 음식이 아니니까요. 외국인들도 요리에 깃든 문화에 매료되는 겁니다.”

글 _ 박광수 기자 ksthink@kyeonggi.com 사진 _ 전형민 기자 hmjeo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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