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아빠랑 머리 깎으러 가자
인천의 이발소가 젊어지고 있다.
1970~80년대를 생각나게 하던 낡은 이미지를 버리고 깔끔하고 세련된 분위기로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인천시는 올해부터 인천지역내 이발소를 미용실 부럽지 않은 곳으로 탈바꿈하는 이발소 부활 프로젝트 ‘아들아, 아버지랑 머리 깎으러 가자’를 시작했다.
이발소 4곳이 시범이발소로 지정돼 변신을 끝마쳤다. 전통식 이발소가 지금은 지역의 명물 이발소로 거듭나고 있다.
낡고 무거운 분위기의 이발소는 가라!
이발소는 1960년대부터 어느곳에서나 볼 수 있는 동네 터줏대감 같은 역할을 하던 친근한 공간이다.
아버지 손을 잡고 머리를 깎으러 가던 바가지머리 철부지 아들, 어느덧 사춘기에 접어들어 거뭇거뭇 수염이 나기 시작한 10대 소년에게 하얀 면도거품을 잔뜩 바르고 면도칼로 스윽스윽 면도해주는 하얀가운의 이발사는 남자의 ‘추억’과 ‘낭만’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빛바랜 사진과 마찬가지다.
세윌이 흘렀어도 이발소는 여전히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 남다른 공간이다. 단순히 머리를 깎고 면도를 하는 그런 곳이 아니라 몸을 쉬게 하고 마음을 내려놓는 ‘휴식’과 같은 곳이다.
하지만 이제 시대는 빠르게 변했고 남자가 미용실 가는 것이 쑥스럽거나 부끄러운 일이 아닌 요즘, 이발소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지난 2005년 인천에는 1천462개에 달하는 이발소가 있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822개로 줄었다. 이발소의 절반이 사라진 것이다. 반면 미용실은 4천109곳에서 4천913곳으로 늘어났다.
인천시가 지난해 미용실을 이용하는 남성 525명을 대상으로 이발소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를 조사한 결과 201명(38.3%)이 ‘폐쇄적인 분위기와 낙후된 환경 때문’이라고 답했다.
또 이·미용 기술수준 낙후 117명(22.3%), 접근성 취약 91명(17.4%) 등 이유도 다양했다. 시는 이발소의 낡고 오래된 듯한 환경이 싫다면 깨끗하고 세련된 공간으로 바꾸면 되고, 이발소가 시대에 뒤쳐져 있다는 오해는 풀어주면 된다고 해법을 내놨다.
시는 낡고 퇴폐적인 이미지 때문에 하루가 다르게 쇠퇴하고 있는 이발소를 다시 살릴 수 있게 이발소를 위한 변신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우선, 올해까지 이발소 10여 곳을 선정해 친근한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도록 간판을 교체하고 신뢰를 줄 수 있도록 인천시 지정업소 표지판 설치, 출입구 환경과 내부 이·미용 기구 정비 등을 돕도록 했다. 또 시·군·구 홈페이지에 지정 이발소 홍보공간을 마련하고 기술·친절·마케팅 교육도 실시하기로 했다.
시대·성심·한양·청명이발관 변신 또 변신
변신의 주인공이 된 이발소는 모두 4곳이다. 계양구 임학동의 시대이발관, 부평구 부평6동의 성심이발관, 연수구 동춘3동의 한양이발관, 남동구 간석동의 청명이발관이다. 4곳 모두 동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이발소였다. 하지만 이발소에 대한 애정과 열정은 남다른 곳이다.
인천시는 올해 초 ‘아들아, 아버지랑 머리 깎으러 가자’ 프로젝트에 참여할 이발소를 모집했다. 시가 간판과 외부 환경을 바꿔주고, 인테리어 상담, 친절교육 등을 해주는 대신 이발소 주인이 직접 인테리어에 투자하고 새로운 이·미용 기술도 익혀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모두 20곳이 신청했고 4곳이 우선적으로 선정됐다. 가장 첫 단추는 이발소의 얼굴인 간판을 바꾸는 일이었다.
간판 디자인은 인천대학교 학생들이 기꺼이 나서 디자인 재능을 기부해줬다. 노란 바탕에 동글동글 귀여움이 돋보이는 글씨체로 이발소 이름을 새겼다. 젊은 감각이 한 껏 묻어나는 간판이 속속 이발소 머리에 내걸렸다.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시커멓게 창문을 가리고 있던 유리창 코팅은 모두 떼어내고 햇빛이 좋은 날에는 이발소 안까지 따뜻한 햇살이 들어오도록 블라인드를 달았다.
내부도 싹~ 바뀌었다.
이발사는 상징과도 같던 하얀가운 대신 가볍고 경쾌한 느낌을 주도록 앞치마를 걸쳤다. 미용실처럼 손님이 편하게 누워서 머리를 감을 수 있는 기구도 들여놨다.
안심하고 옷과 소지품을 넣을 수 있는 옷장도 들이고 헤어스타일을 고를 수 있는 잡지와 읽을 만한 책도 생겼다. 이발소 안에는 잔잔하고 감미로운 음악이 깔리고 화사한 꽃으로 장식도 했다.
변신의 효과는 기대이상이었다. 한달도 채 안돼 이발소를 찾는 발길이 늘었다. 뜸하던 젊은 손님도 급격히 늘어났다.
부평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이성철씨(34)는 줄곧 미용실에서 머리를 다듬어왔다가 최근 이발소를 처음으로 머리를 잘랐다.
이씨는 “이발소는 그냥 아버지 나이대의 어르신들이 가시는 곳이라고 생각해서 미용실에 다녔는데 요즘 지나다니면서 보니 이발소 간판도 바뀌고 내부도 깨끗해 진 것 같아서 궁금한 마음에 한번 들러봤다. 서비스도 헤어스타일도 매우 만족스러웠다”며 “아버지 모시고 한 번 와야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성심이발관의 최병식 대표는 “처음에는 간판 바꾸고 인테리어 조금 바꾸는 것으로 될까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기대이상으로 손님들의 반응이 좋아 매우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스스로 바뀌려고 노력하는 동안에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이 가장 큰 성과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여성의 눈길까지 사로잡는 이발소
이발소의 변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시는 올해 시범이발소를 추가적으로 선정하고 모니터링을 거쳐 보완점을 찾을 계획이다. 시는 무엇보다 이발소가 완전히 되살아나려면 서비스 다변화가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외형을 바꾼 것 이상으로 내실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미용실처럼 다양한 서비스를 도입하고 내실을 다지려면 규제완화가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행 공중위생관리법에는 이발소에서 이발, 면도, 검은 머리 염색만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혜경 인천시 공중위생팀장은 “이발소 부활 프로젝트의 시작은 이발소가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갈 수 있는 편안하고 쾌적한 곳으로 바뀌는 것”이라며 “인천 전역으로 지원사업을 확대하는 한편 앞으로는 이발소에서도 미용실처럼 다양한 헤어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교육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발소의 변신이 완성된다면 여성들이 이발소를 찾는 것도 남성이 미용실을 찾는 것 만큼이나 당연한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생긴다.
글 _ 김미경 기자 kmk@kyeonggi.com 사진 _ 장용준 기자 jyju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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