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체력ㆍ정신, 탁월한 지도력, 선수들 잠재력… 삼박자
고대올림픽에서 시작된 레슬링은 근대올림픽에서도 단 한번(1900년 제2회 대회)을 제외하고 줄곧 정식 종목의 지위를 잃지않은 상징적인 종목이다.
특히, 레슬링은 역대 올림픽에서 한국에 금메달 11개와 은메달 11개, 동메달 13개를 안긴 가장 대표적인 ‘효자 종목’이다. 건국 이후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선사한 주인공도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의 양정모 선수다.
그 뒤를 이어 두 체급에서 금메달을 휩쓴 심권호를 비롯해 박장순, 안한봉, 정지현, 김현우 등 많은 올림픽 영웅들을 배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레슬링계는 2000년대 들어 다소 침체의 늪에 빠져있다.
레슬링이 힘든 종목이라는 인식 때문에 지망생들이 줄어들고 있고, 국제레슬링연맹(FILA)의 바뀐 규정으로 인해 과거 화려했던 명성을 재현해 내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어려운 환경 속에서 올해로 창단 만 10년을 맞이한 수원시청 레슬링팀(감독 박무학)은 지방자치단체 팀이라는 불리한 여건에서도 꾸준히 우수선수를 배출하며 한국 레슬링 중흥의 선봉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지난 2004년 박무학 감독을 초대 사령탑으로, 단 4명의 선수로 창단된 수원시청은 불과 10년 만에 국내 최정상급 실업팀으로 도약하는 눈부신 성장세를 보였다.
창단 10년 만에 단체종합 우승만 모두 다섯 차례
지난 10년 동안 수원시청 팀이 거둔 전국대회 성적은 금메달 84개, 은메달 52개, 동메달 89개로 대기업 팀이 아닌, 지방자치단체 팀이 거둔 성적으로는 단연 최고다.
또한 지난 2008년과 2009년 전국종합선수권대회 그레코로만형 단체종합에서 2연패를 달성했고, 2010년과 2012년 같은 대회에서 자유형과 그레코로만형이 또 한번 패권을 안았으며 2011년 회장기 대회에서는 자유형 단체 정상에 오르는 등 지난 10년 동안 총 5차례에 걸쳐 단체종합 패권을 거머쥐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지난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남자 그레코로만형 120㎏급에서 ‘깜짝 금메달’을 획득한 김광석(은퇴) 선수의 쾌거는 당시 창단된지 2년 밖에 안되는 수원시청으로서는 일약 ‘명문’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 김광석의 금메달은 단순한 아시안게임 금메달 한개가 아닌, 인간승리의 드라마와도 같은 감동의 금메달이었다.
마산시청에서 선수로 활약하던 김광석은 운동에 회의를 느껴 매트를 떠난 뒤, 2년 동안 구두닦이와 청소부,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인생의 쓴맛을 경험한 뒤 레슬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2004년 청주에서 열린 대통령기대회에 울산OB팀 소속으로 출전, 은메달을 획득했다.
당시 김광석의 경기를 눈여겨 본 박무학 감독의 권유로 이듬해 수원시청에 입단한 그는 첫 대회인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우승하며 승승장구한 끝에 자신의 첫 아시안게임 출전무대에서 아무도 기대치 않았던 금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지난 2006년부터 꾸준히 금메달 획득
수원시청 레슬링 팀의 지난 10년 동안 거둔 성적이 돋보이는 이유는 대학을 졸업하는 A급 선수들을 3~4개 대기업 팀이 막강 금권력을 동원해 영입하는 현실 속에서 B급 선수들을 데려와 ‘군웅할거’의 전국무대를 제패하고 매년 꾸준히 국가대표 선수들을 배출해내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는 32개 실업팀이 운영되고 있는 가운데 삼성생명, LH공사, 조폐공사, 성신양회 등 4개 기업팀을 제외한 나머지는 지방자치단체 팀들이다.
4개 기업 팀들이 우수선수를 쓸어가는 가운데 수원시청은 주로 국군체육부대를 제대하는 B급 선수들을 영입해 육성하고 있다. 이는 국군체육부대에 들어가는 선수들의 기량이 어느 정도 검증이 된데다 군복무로 인해 정신적인 면이 안정돼 있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의 목표를 세우고 그를 향해 달려갈 준비가 돼 있다는 박 감독의 판단 때문이다.
이 같은 박 감독의 판단은 맞아 떨어져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김광석이 금메달을 따낸 것을 시작으로,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김광석, 김대성이 국가대표로 출전했고, 오는 9월 인천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는 그레코로만형 59㎏급 김영준, 자유형 97㎏급 윤찬욱이 국가대표로 출전하며 자유형 70㎏급 김대성은 2014 세계선수권 대표로 뽑히는 등 수원시청 소속 선수 3명이 태극마크를 달고 훈련 중이다.
또한 8명의 선수(그레코로만형 3명, 자유형 5명) 가운데 이들 3명의 현 국가대표 외에도 그레코로만형 59㎏급 임지남, 80㎏급 진경욱, 자유형 57㎏급 이우주가 국가대표를 지내는 등 6명이 태극마크를 경험했다.
수원시청 팀이 짧은 기간동안 국내 대기업 팀들과 견주어도 손색없을 만큼 ‘명문’으로 자리매김 한 것은 체력과 자율훈련을 강조하는 박무학 감독의 지도철학과 선수 스스로 자신의 목표를 향해 부단히 노력한 결과물이다.
박 감독은 최근 국제레슬링연맹의 바뀐 규정에 따라 체력이 승부를 가른다는 판단에 따라 새벽(런닝), 오전(웨이트트레이닝), 오후(매트훈련), 야간(튜브당기기) 등 4차례에 걸친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함은 물론, 매주 수요일에는 광교산 크로스컨트리로 선수들의 체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또한 동계 제주도 전지훈련과 하계 태백 전지훈련 시에는 한라산, 태백산 등반훈련을 주 1회 정도 빼놓지 않고 소화하면서 선수들의 체력보강과 정신력 무장에 힘쓰고 있다.
이처럼 강한 체력훈련과 지도자-선수간 신뢰를 바탕으로한 소통이 10년 만에 전국 최고의 팀 반열에 오른 수원시청 레슬링 팀의 상승 원동력이다. 박무학 감독과 8인의 레슬러들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 제패의 꿈을 향해 오늘도 매트를 땀방울로 흠뻑 적시고 있다.
글 _ 황선학 기자 2hwangpo@kyeonggi.com 사진 _ 전형민 기자 hmjeon@kyeonggi.com
[Interview] 박무학 수원시청 레슬링팀 감독
창단 10년 만에 레슬링 명문 ‘1등공신’
“우리팀 선수들이 훌륭한 선수로 성장해 한국 레슬링의 중심에 서 발전을 이끌고, 은퇴후 사회에 나가서도 꼭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수원시청 레슬링 팀을 창단 10년 만에 국내 남자 레슬링의 ‘명가’ 반열에 올려놓은 ‘덕장(德將)’ 박무학(53) 감독은 25년의 풍부한 지도자 경험을 바탕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지도자로 꼽힌다.
지난 1990년 실업선수로 활동하면서 당시 수원 수일중과 화성 경성고(현 홍익디자인고)에서 레슬링 꿈나무들을 지도하다가 2004년 수원시청의 창단 감독으로 부임한 박 감독은 ‘자율훈련’을 강조하고 있다. 박 감독은 “실업팀 선수라면 자신이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라며 “앞에서 끌어주는 것은 감독의 몫이고, 더 큰 발전을 위해 뒤따르는 것은 전적으로 선수들의 몫이기 때문에 뒤따르는 선수들 스스로의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 박 감독은 “현대 레슬링의 성패는 체력에 달려있다. 실업 선수들은 이미 중·고교와 대학에서 기술적인 부분은 충분히 배웠으므로 체력과 정신적 측면을 강조하고 이를 중점 훈련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선수들과의 소통을 통한 지도자와 선수간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박 감독은 “선수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지도자의 뜻과 선수들의 고충을 서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는 팀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소로 ‘밴드’를 만들어 은퇴선수들도 함께 소통하며 진로를 상담하는 등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올해 창단 10주년을 맞아 그동안 팀을 거쳐간 20여명의 선수들과 현재 활동하고 있는 선수들이 함께 어우러져 식사라도 하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는데 세계선수권선발전과 세월호 참사로 인해 미뤄졌다”며 “빠른 시일내 전·현 소속 선수들이 함께하는 뜻깊은 자리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앞으로 지도자로 이루고 싶은 꿈에 대해 박 감독은 “아직 올림픽 출전선수를 배출하지 못했다. 반드시 올림픽에 나가 메달을 획득, 국위를 선양할 수 있도록 선수들과 함께 더욱 노력하겠다”고 피력했다. 이를 위해 그는 현재 그레코로만형 3명, 자유형 5명인 선수를 그레코에 2명 정도를 보강해 맞춤 파트너별 훈련으로 기량을 끌어올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밝혔다.
‘레슬링계의 마당발’로 불릴만큼 폭넓은 대인관계가 장점으로, 좀처럼 자신의 감정을 내비치지 않지만 레슬링에 대한 열정과 승부욕은 단연 대한민국 최고라는 것이 그를 지켜본 지인들의 전언이다.
글 _ 황선학 기자 2hwangpo@kyeonggi.com 사진 _ 전형민 기자 hmjeon@kyeonggi.com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