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초대석] 여인국 과천시장

시장으로 살아온 12년 마침표 이제 시민으로 지역발전 응원

대답은 단호했다. 끊는 말에는 힘이 넘쳤고, 철학도 있었다.

12년 행정의 성과를 묻는 기자가 당황하기는 처음이었다. 그는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재임기간 성과나 업적은 시민이 평가하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는 여느 행정 관료와는 달랐다.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했고, 석사도 박사도 도시계획을 공부했다. 24회 행정고시 출신으로 주요 요직을 거쳤고, 한 번도 힘든 시장직을 민선3기부터 5기까지 세 번이나 연임한 성공한 관료였다. 그 정도의 관록이라면 으레 스스로를 치적을 과장할 법도 하지만 오히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드러내며 낮추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권위와 영광의 가면에 포장된 가공된 ‘멋’스러움 따위는 없었다. 답답하게 닫힌 단추를 풀며 시작된 인터뷰는 소탈하고 진지하게 진행됐다. 지난 5월 22일 오전, 12년 간 과천 시정 운영을 끝으로 시장직을 내려놓는 여인국(58) 과천시장을 만났다.

시장으로 때론 색소폰 연주자로… 시민·직원과 감성적 소통

그에게 ‘권위’란 다른 정의(定義)였다. ‘따르게 하는 힘’이 아니라 ‘다가서는 힘’에 가까웠다. 권위에 의한 접근보다는 소통을 위한 접근이었다. ‘색소폰’을 배운 것도 그 때문이었다. 공통의 관심을 가지고 친근하게 다가서기를 원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인근 학교로 달려가 음악선생님에게 색소폰을 배웠다. 처음에는 육중한 몸체덕에 소리를 내보기는커녕 두 손으로 들기 조차 힘들었다. 그렇게 몇 달을 배우고 어느 정도 운지법 익힐 수 있게 되자 시청내 관심사가 같은 직원을 대상으로 음악밴드도 만들었다.

이른 바, ‘시티밴드’. 각자 실력이 들쭉날쭉, 중구난방 이다보니 음정·박자는 가뿐히 무시됐다. 점차 연습량이 많아지면서 서로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고,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시청에서 주최하는 작은 무대에서 첫 공연을 가지기도 했다.

여 시장은 “처음 무대에 섰을 때 선거에 임할 때만큼 떨리고 긴장됐다”며 “혹여나 실수라도 하면 시장이 자기 직함만 믿고 무성의하게 무대에 섰다고 구설수에 오를까봐 두렵기도 하고 떨리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다행히 첫 무대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 뒤에도 5년 째 과천시청의 공식·비공식 음악밴드로 크고 작은 무대에 섰다. 재능기부 일환으로 바쁜 일정을 쪼개 지역 내 복지시설에 공연을 다니기도 했다. 그렇게 시장과 직원, 시청과 시민과의 물리적 거리를 좁혔다.

“공연 때는 민원인을 대할 때처럼 완벽하게 연습하지 않으면 무대에 서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불철주야 연습을 했다. 그럼에도 ‘삑삑’ 거리며 실수를 한다. 그래도 관객이 많이 이해해주고 권위적인 모습보다 친근한 이미지로 시민과 직원이 기억해주는 것 같아 좋다”

그는 친목과 화합을 중시한다. 특히, ‘시티밴드’처럼 직원 간 동아리 활동을 강조한다. 그 역시도 밴드활동 이외 ‘테니스’와 ‘낚시’ 등 몇 가지 동아리 활동을 지금도 함께 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관심사가 같은 직원끼리 동아리를 만든다고 하면 아낌없이 지원한다.

여 시장은 “과 마다 나눠져 있어 다른 과 직원들을 만날 기회가 없다. 그러다 보면 업무할 때도 서로 서먹서먹해진다. 하지만 함께 활동을 하면 같이 어울릴 수가 있다.

서로 마음이 통하고 서로 이해할 수 있어 업무가 생기면 다가서기 수월해진다. 이것이 결국 업무 효율과 시민에 대한 서비스 질 향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인국 시장의 취임이후 12년 간 과천이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히는 이유도 그의 합리적 소통의 방식과도 무관하지 않다.

‘주민소환’ 정치적 위기 직면… 그럼에도 소중한 기억 ‘일상이 기적’

따뜻하고 감성적인 소통을 강조하는 여 시장이지만 위기가 없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11년 일부 시민에 의해 주민소환을 당했다. 지금에서는 ‘허허∼’하고 웃고 말지만 그 때 당시는 마음고생이 심했다.

과천시장 주민소환은 개발제한구역인 지식정보타운 부지에 보금자리주택 건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40년 간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재산권 행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보금자리주택으로 풀어갈 방법을 찾았다는 찬성 측과 보금자리 주택이 들어서면 전원도시로서의 가치가 훼손된다는 반대 측 주장이 대립했다.

보금자리반대운동은 결국, 여 시장에 대한 주민소환으로 이어졌고, 주민들은 찬반으로 나뉘어 반년 간 다툼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여 시장은 20일 간이나 직무정지를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보금자리를 반대하는 주민들은 과천시장 주민소환운동본부를 구성하고 “시민의 의사를 묻지 않고 보금자리지구지정을 수용하는 등 정부과천청사 이전 대책에 소홀한 여 시장에게 책임을 묻겠다”며 서명을 받아 주민소환 투표를 청구했다.

여 시장은 문제해결을 위해 국토해양부와 합의해 지식정보타운 내 보금자리주택 건설 물량을 50% 축소하는 등 계획을 수정했으나 일부 주민들의 돌아선 마음을 잡지는 못했다.

결과적으로 투표함 개봉은 최저 투표율 33.3%에 못 미치쳐 무산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여 시장이 받은 심적인 스트레스는 상당했다.

“잠을 이루지 못했을 정도로 마음의 고통이 심했다. 주민소환의 사유도 처음에는 보금자리 문제였다가 행정 전반의 문제로 비화했다. 합리적인 이유가 되지 못했다. 정치적인 색을 띠기 시작했고, 의도적이고 악의적인 비난이 이어졌다. 그냥 당시는 ‘반대를 위한 반대’였다”

주민소환 투표가 무산된 이후 여 시장은 주민소환제도가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언론과의 인터뷰나 중앙정부 요구사항에 주민소환에 대한 명확한 규정과 기준을 세우고, 막대한 국가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소환 당사자에 대해 책임을 묻는 등 제도개선 요구를 강조하기도 했다.

한 차례의 큰 파고를 겪은 여 시장은 더욱 단단해졌다. 허무주의에 빠질 수도 있었지만 스스로를 다져갔다. ‘범사(凡事)에 감사하라’는 성경 속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또 새겼다.

민선 5기 선거 공약을 새웠던 81개의 단위사업 중 76개의 단위사업을 차질 없이 마무리해 공약 이행률이 93.8%에 달했다. 또 남은 5개의 단위사업도 현재 추진 중이거나 완료 단계에 왔다. 고난의 계절에도 감사하며, 일상을 기적처럼 여기는 삶의 자세가 그의 가슴에 박힌 성경의 글귀처럼 실천됐다.

살기 좋은 도시 ‘과천’… 시민의 자리에서 다져갈 것

여 시장의 시정 역점 과제는 ‘교육’과 ‘복지’였다. 하지만 그를 실현하기에는 예산이 턱 없이 부족했다. 인구가 7만을 조금 넘는 작은 도시로 일 년 투입되는 예산은 2천억 원이 채 안됐다. 그럼에도 ‘교육’과 ‘복지’ 부분의 예산은 줄이지 않았다.

사실 과천이 매년 조사하는 ‘살기 좋은 도시’에 항상 1위로 꼽히는 이유도 이들 분야를 특화한 탓이 컸다. 학자금 대출이자 전액을 지원한 것도 전국 지자체 중 과천이 처음이었다. 또 방과 후 온종일 교실, 학부모보조교사제 등을 운영해 공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또 지난 2007년 2월 여성비전센터 개소를 시작으로 2010년 노인복지관 증축 개관, 장애인복지관 및 종합회관 개관, 건강가정지원센터 개소, 중증장애인 자립생활지원센터 개소, 육아종합지원센터 개관 등 지역사회 내 다양한 계층이 이용할 수 있는 복지시설을 늘려갔다.

여기에 복지수혜자별 복지증진과 생활안정, 재활지원 및 사회참여 촉진 등 다양한 복지기금을 확대 조성해 현재 노인복지기금 50억, 장애인복지기금 30억, 보훈복지기금 30억, 여성발전기금 30억 등 140억 원의 기금을 운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시민들의 시정 만족도도 점차 높아졌다. 과천시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자체 조사하고 있는 ‘과천 시민 의식구조조사’에서 주거체감 만족도는 매회 90%에 이른다.

시장으로서 임기는 이달 말 끝이 난다. ‘3선 연임 제한’에 걸려 이번 지방선거에는 출마하지 못했다. 아직 퇴임 이후 계획은 구체화하지 못했지만 행정 출신으로 대학교에 출강을 나가며 학생들을 가르칠 계획도 있다. 또 정치를 계속 이어나가고 싶은 생각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퇴임 이후 일이다. 아직까지 남은 책임과 임무를 다해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고 말했다.

“항상 시민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 시민들의 응원과 격려가 없었다면 12년 간 과천시 행정을 운영하지 못했을 거다. 모든 주민이 원하는 부분을 다 완수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함도 있다. 앞으로도 과천시에 거주하며 영원한 과천시민으로, 과천에 뼈를 묻을 생각이다. 행복한 과천을 만드는데 미력하나마 버팀목으로 남고 싶다”

시장으로서의 임기는 끝났다. 하지만 초심은 여전하다. 과천을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가장 깨끗한 도시로 만들고자 하는 꿈은 이제 과천시민 여인국으로 이어질 것이다.

글 _ 박광수 기자 ksthink@kyeonggi.com 사진 _ 추상철 기자 sccho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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