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는 모두 막걸리 DNA가 있다’고 할 만큼 막걸리는 우리 역사 속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막걸리의 역사는 삼국시대 이전의 벼농사가 자리를 잡은 시기에 시작됐다고 추정된다.
막걸리에 대한 본격적인 기록은 송나라 사신서긍이 고려 인종 원년(1122년)에 고려에 와서 보고 들은 바를 엮은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려에는 찹쌀이 없어 멥쌀과 누룩으로 술을 빚는다’는 구절이 있고, 이어 ‘술맛이 독하여 쉽게 취하고 빨리 깬다’는 기록도 있다.
술이 독하다는 것은 고려 시대에 이미 밑술을 이용해 도수가 높은 술을 제조하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국가의 큰 행사를 위해 사찰 등에서 대량으로 술을 빚었지만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불교 배척 정책이 시작되고 각 가정에서 제례를 지내면서 일반 가정에서 직접 술을 빚는 경우가 많아졌다. 수많은 가양주가 등장한 것도 이 때다.
1916년 주세령 시행으로 가양주는 자취를 감추게 되며, 급기야 1934년 자가용 양조면허가 폐지되면서 전통적으로 이어내려온 우리 술의 맥이 끊기고 말았다.
먹을 것이 없던 시절 정부에서는 쌀로 술을 빚는 것을 제한하게 되고 1965년 양곡관리법 시행으로 쌀을 이용한 술 제조가 금지됐다. 결국 막걸리는 쌀이 아닌 보리로, 다시 옥수수와 밀가루로 빚을 수밖에 없게 됐다.
이후 외국에서 맥주와 위스키 등 다양한 술들이 들어오고 1980년대에는 끼니 걱정이 사라질 만큼 시대가 풍요로워졌다. 또 ‘카바이드 막걸리’, ‘사카린 막걸리’ 등 불량막걸리들의 등장은 막걸리 인기를 떨어뜨리는 데 일조했다. 자연히 막걸리 산업은 하향길을 걷게 된다.
그 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출범과 함께 우리 전통주를 산업적으로 육성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1993년부터는 농림부 장관이 추천하면 주류제조 허가를 받을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됐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규제를 정비하면서 막걸리 제조허가에 필요한 시설기준을 완화하고 신규제조 면허금지 조항을 삭제하는 등 진입장벽을 낮췄다.
또 소비자의 기호에 맞는 다양한 제품생산을 위해 막걸리의 규격을 알코올 성분 ‘3도 이상’으로 조정하고 인삼 잣, 대추, 과일 사용을 허용함으로써 다양한 고급 막걸리의 생산이 가능해졌다. 공급구역 제한을 폐지해 전국적 유통도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막걸리는 2009년 경기 불황 속에서 ‘웰빙’을 찾는 소비자들에 의해 재조명 받으며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국내에 앞서 한류 열풍으로 일본에서도 인기를 끌며 ‘K-FOOD’ 바람을 몰고 오기도 했다.
특히 경기도는 막걸리 제조업체가 수원, 화성, 용인, 군포, 광주, 이천, 평택, 안성, 포천, 고양 등에 50여 곳이 산재해 전국에서 막걸리 제조업체 비중이 가장 높다. 경기 막걸리 수출은 2000년 71만 달러에서 매년 성장을 거듭, 2011년 2천120만8천 달러까지 치솟았다.
경기도는 산·학·관·연의 막걸리 관련 기술과 정보의 네트워킹 구축 지원을 위해 2010년 경기막걸리세계화사업단을 구성해 막걸리의 산업화와 세계화에 기여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1년 이후 일본의 저도주 선호 분위기와 국내 수요 감소 등으로 막걸리의 인기는 다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에 경기도는 경기도농업기술원, 경기농림재단,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등과 함께 제품 개발과 마케팅 지원, 해외 판촉행사 등 각종 지원으로 막걸리의 부진을 만회하려 노력하고 있다.
글 _ 구예리 기자 yell@kyeonggi.com
사진 _ 전형민 기자 hmjeon@kyeonggi.com
알싸한 그 맛, 입에 착착!! 도내 막걸리 ‘베스트5’
자연으로 빚고 정성으로 담근 ‘술’
뽀얀 우유빛깔을 자랑하는 막걸리의 변신은 무한대다. 예부터 막걸리는 지역마다, 집집마다 빚는 방법이 달라 색과 향, 맛이 다양했다.
최근에는 현대적인 위생시설, 고급 브랜드쌀 등으로 다양한 맛을 품은 막걸리가 탄생한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1천여 종이 넘는 막걸리가 탄생하고 있는데, 맛이 지역별로 천차만별이다. 경기도에는 총 56곳의 제조장이 저마다 방식으로 막걸리를 빚어낸다.
이대형 경기도 농업기술원 박사는 경기도 막걸리의 특징을 “좋은 자연환경에서 만들어낸 맛”으로 꼽았다.
이 박사는 “경기지역은 좋은 쌀, 맑은 물을 이용해 맛 좋은 막걸리가 생산되고 있다”며 “한때 막걸리 수출을 주도했었던 만큼 새로운 시장 개척, 소비자의 입맛에 맞춘 다양한 맛으로 다시 한 번 부흥을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전통 제조장들이 손수 빚어내는 막걸리의 향과 맛의 비밀 속으로 들어가 봤다.
사연을 담은 방앗간 ‘맞춤형 인삼주’ 제조
인삼을 머금은 2천여 통의 술독들이 지하 숙성고에서 조용히 국악과 클래식을 듣는다. 술독들의 사연도 제각기다. 30주년 결혼기념일에 쓰일 술, 대학입학을 기념하기 위한 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일에 맞춰 노사모에서 주문한 술까지.
술독들은 사연과 이름표를 매달고 3~4년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청헌배인삼주가는 ‘사연을 담은 인삼주 방앗간’이다.
고객이 예약한 날짜에 맞춤형으로 인삼주만 제조한다. 국내 ‘1호 술박사’인 정헌배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가 자신이 고집하는 제조법으로 기술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쌀, 인삼, 누룩만 이용해 4~5년간 숙성한다. 2004년에 문을 열었지만, 첫 제품이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09년 출시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대표 상품
약주 (비 飛) : 정헌배 교수가 30년간 심혈을 기울여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한국형 누룩으로 재현한 작품. 생산자와 생산지역, 추수 시기가 확인되는 100% 국내산 쌀과 6년근 인삼만을 사용한다. 도수는 16%, 한우 고기와 함께 먹으면 좋다.
파주개성인삼 통째로 발효… 전통방식 고집
술을 빚는 최행숙 대표를 보면 ‘술 좀 하는 여자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최 대표는 직접 재배한 쌀과 인삼으로 막걸리를 빚어낸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옛 전통방식을 고집하는 것. 특히 청정한 민통선 지역에서 직접 재배한 6년근 파주개성인삼을 통째로 넣고 발효시켜 특유의 깊은맛을 만들어내는 게 특징이다.
하지만, 최 대표는 술을 한 잔도 못하는 여자다. 전통주 교육과정에 우연히 참여했다가 술을 빚는 모습에 반해 ‘술 빚는 여자’가 되기로 했다. 직접 7년간 연구개발한 끝에 막걸리를 빚어냈다.
고문헌 속에 나오는 아황주도 복원시켜 생산한다. 양조장에서 전통주 빚기 체험이 진행돼, 가족단위로 방문해 우리 가족만의 전통주도 빚을 수 있다.
대표 상품
인삼과 찹쌀로 빚은 술 미인(米人). 약주와 막걸리 두 가지 형태로 개발됐다. 멥쌀을 주재료로 하는 대부분 술과 달리 찹쌀로 고두밥을 만들어 부드럽고 단맛이 난다. 인삼의 맛과 향이 그대로 살아 있다.
청정 암반수 사용… 술 품질 인증 최다 보유
우리나라 청정지역으로 물 좋기로 소문난 가평. 산 높아 공기 좋고 물 맑은 운악산 자락에 우리술이 위치한다. 계약재배한 5년 경기미를 사용하고, 지하 270m 청정 암반수를 사용하니 최고의 맛을 자랑한다.
특히 ‘최초, 최다’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업계 최초로 400만 불 수출탑 수상, 최초로 HACCP, ISO22000 인증을 받았고 최다 술품질 인증 보유했다. 세계 20개국으로 수출 중이며 총 200여 제품을 만들어 왔다. 우리술의 박성기 대표는 ㈔막걸리협회 회장으로 막걸리의 유네스코 등재를 앞장서 추진 중이다.
대표 상품
가평 생 잣 막걸리 : 가평의 특산품인 평잣을 갈아 넣어 고소하고 감칠맛이 난다. 완전발효시켜 숙취가 없고 개운하다. 지난 2월 주류품평회에서 대상을 받은 효자 상품이다.
‘me 3(미쓰리)’ : 감각적인 젊은 층에 맞춰 막걸리를 캔에 담았다. 가볍게 즐기기 좋은 3%의 저도 주다. 20~30대 고객층, 베트남 등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대통령이 사랑한 술’ 100년 전통 자랑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과 국민의 염원이 고스란히 배여 있는 양조장이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고양 생 막걸리와 배다리 막걸리는 환희의 술이자, 아픔의 술이기도 하다.
지난 2000년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만찬을 즐기고자 특별 초대됐다. 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애주로 10.26 사건 당시 궁정동의 만찬에 올려진 아픔이 있는 술이기도 하다.
이처럼 고양탁주합동제조장의 막걸리가 유명한 이유는 고양시의 자연환경과 떼놓을 수 없다. 고양시는 한강 하류의 땅이 비옥해 벼농사가 잘됐고, 쌀이 맛있기로 유명했다. 이 때문에 일제 식민시대부터 양조장이 여럿이었고, 50여 년 전 5개 면의 양조장이 하나로 엮어 고양탁주합동제조장이 됐다. 200m 천연 암반수와 누룩, 청결미를 주재료로 100년 전통의 맛을 자랑한다.
대표 상품
고양 생 막걸리 : 하얀 병에 라벨을 감각적인 캘리그라피 느낌을 표현했다. 단맛과 신맛이 적당하며 전통적인 막걸리의 맛을 느낄 수 있다.
배다리 생 막걸리 : 박정희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즐겨 마시던 막걸리다. 탄산이 풍부하고 목 넘김이 좋다. 막걸리 특유의 시큼한 맛도 느껴져 질리지 않는다는 평이다.
전통주에 문화와 멋… 저변확대 주력
‘산사춘’하면 다 고개를 끄덕일 만큼 유명한 전통주 제조업체다. 막걸리의 고장으로 불리는 물 맑은 포천 운악산 밑에 자리해있다. 전통주 제조업체라기보다 문화 제조업체가 더 옳은 표현이다.
아시아 최고의 술 문화 기업을 꿈꾸며 전통주에 감각적인 아이디어를 입혀 문화 저변을 확대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서울 도심 한복판인 강남에 도시형 양조장인 느린마을 양조장&펍을 만들어 소비자들이 직접 술을 빚는 현장을 볼 수 있다. 또 배상면주가의 전통주는 이름만 들어도 낭만적인 ‘낭만공정’을 거친다. 기계화를 도입한 양조공정 중 핵심적인 부분은 수작업하는 것. 분위기와 멋도 함께 들이켤 수 있다.
대표 상품
느린 마을 막걸리 : 막걸리에 사계절이 담겼다. 막걸리를 빚은 후 시간 경과에 따라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맛이 그대로 전해진다. 쌀, 누룩, 효모만으로 빚어 깊은 막걸리 고유의 맛을 낸다.
글 _ 정자연 기자 jjy84@kyeonggi.com 사진 _ 전형민 기자 hmjeon@kyeonggi.com
시대별 변천사부터 제주 도구까지…
눈으로 마시는 막걸리의 모든 것
알싸한 막걸리의 맛에 흠뻑 취했다면, 이제 막걸리 박물관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전통 막걸리 제조 방법부터 시대별 막걸리 변천사, 막걸리 도구 등을 한눈에 볼 수 있어 다양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아기자기한 소품들은 눈을 즐겁게 하고, 솔솔 풍겨오는 시큼한 막걸리 향은 코를 즐겁게 한다.
탁 트인 정원에서 향을 내뿜으며 술을 가득 담은 장독대는 한 폭의 멋진 동양화다. 잠시 일상을 내려놓고, 좋은 자연 경관을 보며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막걸리 박물관으로 떠나는 오감(五感)만족 여행, 지금 출발해 보자.
산사원 _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는 공간
배상면주가의 대표 술인 산사춘의 원료 산사나무의 정원이라는 뜻이다. 200년 된 산사나무 열두 그루가 심어져 있으며, 나무 그늘 놓인 항아리에서 전통술이 익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술 익은 독과 문화공간이 잘 어우러져 있어 지친 몸과 정신을 달래기에 좋다.
전통술 문화사 자료와 유물 1천여 점이 전시돼 있고, 산사정원에서는 세월 따라 항아리 속에 익어가는 ‘세월랑’을 구경할 수 있다. 부안당에서 막걸리 도가들의 기물을 구경하고, 밖으로 나오면 경주의 포석정처럼 흐르는 물에 잔을 띄울 수 있는 유상곡수에서 풍류를 즐기면 된다.
풍류를 즐긴 후 취선각으로 발을 옮기면 탁 트인 경관을 보며 불어오는 바람에 운치 있는 차 한잔을 마셔볼 수 있다. 1996년 11월 개관 후 연평균 방문객이 3만 명에 달할 정도로 꾸준히 인기가 좋다. 술, 술 지게미, 누룩 등을 다시 발효시켜 만들어낸 술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시음공간도 있다.
40명 이상의 단체 관람 신청은 산사원 홈페이지(www.sansawon.co.kr)에서 단체견학신청 게시판에 글을 남기면 된다. 관람시간은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이며, 문의는 031-521-9300으로 하면 된다.
배다리 술 박물관 _ 신라부터 조선까지 술 문화 총망라
고양시의 수역이 마을을 지나면 배다리 술 박물관이 나온다.
고양시의 막걸리는 예부터 유명했다. 5대째 술도가를 이어온 배다리술도가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제1전시관에 들어서면 술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통일신라시대, 고려, 조선시대를 거친 각종 술독, 술 항아리, 술통 등이 전시돼 있다.
술 문화와 의식을 보여주는 고려시대 이후의 각종 술잔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제2 전시관으로 이동하면 조선시대 말기에 술을 빚는 과정을 미니어처 인형으로 볼 수 있다. 막걸리 제조과정과 술 배달 과정을 재현해 흥미롭다.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노천카페에서는 모닥불에서 가족단위로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고, 각종 전통술을 무료로 시음할 수 있으니 전통주를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안성맞춤인 공간이다.
2층 카페테리아에서는 단체 세미나와 동호회 모임이 가능한 공간, 엘피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쉼터도 마련됐다. 매주 일요일에는 전통방식으로 빚는 소주 내리기를 재현해 전통주를 새롭게 체험할 수 있다. 각종 단체모임은 전화(031-967-8052)로 문의하면 된다.
글 _ 정자연 기자 jjy84@kyeonggi.com 사진 _ 전형민 기자 hmjeo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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