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과 원칙 지키는 ‘안전 최우선’ 기업문화 정착돼야
도내 사업장 안전 문화 조성을 위해 산업 현장 곳곳을 누비고 있는 정완순(52)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경기남부지도원장을 지난 5일 만났다. 정 원장은 “안전문화는 모두가 함께 공감하고, 구축해야 할 사회적 과제” 라며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지금, 안전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구축하고, 나아가 안전 보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국민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Q.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하는 일은 뭔가
A. ‘일하는 사람들의 생명과 건강보호’를 제도와 시스템, 기술적 인프라로 구축하는 산업재해예방 중심ㆍ전문기관이다. 지난 1987년 설립돼 사업장의 안전보건 개선 계획 지도, 작업 환경 개선, 건설 재해예방, 노사 안전보건교육 확대 등에 집중하고 있다. 경기남부지도원은 수원, 화성, 평택, 용인, 안성, 오산 등 6개 시를 담당하며 각종 사업장의 안전교육, 근로자 재해 예방 등에 힘을 쏟고 있다.
Q. 도내 사업장에서 크고 작은 사고들이 잇따랐다. 경기지역의 산업재해, 어느 수준인가
A. 도내 산업재해는 지난 2010년 3만 1천265명에서 지난해 2만 8천749명으로 조금 줄기는 했다. 그러나 지난해 산업 현장 사망자 수가 428명에 달하는 등 하루에 한 명 이상이 여전히 작업장, 일터에서 안타까운 목숨을 잃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도 지난해와 같이 재해가 꾸준히 발생하는 추세라 우려된다. 특히, 크고 작은 건설현장이 많은 관내에 건설업 재해와 질병사망자가 증가하고 있어 예방대책을 마련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Q. 특히 올해는 대형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근본적인 원인을 뭐라 생각하나
A. 위험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업주와 근로자 모두에게 안전 의식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아 안전기준과 규정을 무시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사업주들은 대체로 안전보건시설 개선에 대한 투자 의지가 부족하다. 특히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안전보건에 대한 투자에 여전히 소극적이다. 안전보건은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요소로 적극적으로 과감하게 투자할 필요가 있다는 의식전환이 필요하다.
근로자들은 안전교육을 소홀히 받거나, 이를 실전에 적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비상상황이 발생했을 때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평상시 반복적으로 훈련하는 게 중요하다.
Q. 산업재해로 인한 손실도 막대할 것 같다.
A. 그렇다. 산업 재해는 근로자에게도 큰 손실이지만 새로운 인력 채용에 따른 비용, 기업 이미지 저하에 따른 수주량 감소 등 기업에도 큰 간접비용이 발생한다. 생산성을 위해 안전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은데, 결코 안전이 생산성의 뒤편으로 밀려날 수 없는 이유다.
손실비용을 산출하는 하인리히 방식으로 우리나라 재해손실비용을 계산하면 막대하다. 지난 2012년 말 기준으로 직접비(산재보험료 지급비용) 3조 8천513억 원, 간접비는 15조 4천52억 원(직접비의 4배)으로 총 19조 2천565억 원이 산업재해 비용으로 빠져나갔다. 연봉 2천만 원 근무자 약 96만 명을 채용할 수 있는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Q. 소규모 사업장은 이 같은 손실을 알고 있어도 재해 예방 역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구체적인 지원책과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A. 맞다.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의 재해자가 전체 재해자 수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여러 가지 예방책을 마련하고 있다. 우선 50명 미만 제조업 사업장을 대상으로 위험성 평가를 통해 우수사업장으로 인정받으면 산재보험요율 20%를 할인해 주는 위험성 평가 사업과 산재예방요율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또 소규모 사업장의 작업 환경을 개선해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로 조성하는 클린사업장 조성지원 사업 등에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홍보하고 있다.
Q. 경기지역에는 대형사고로 직결되는 화학물질 취급 업체가 많다. 화학 사고를 막고자 특별히 힘을 쏟는 게 있다면 소개해 달라
A. 화학제품제조업은 전국 기준 전체 제조업의 9.1%를 차지하고 있는데, 경기남부지도원 담당 지역에서만 15.2%나 된다. 전국보다 약 1.6배나 높다. 화학사고 예방을 위해 지도원에서는 ‘화학사고예방전담반’을 구성했다. 고위험 사업장 210개소에 대해 기술지도를 하며, 민간재해예방기관에 1천 개소를 위탁해 기술지도도 병행 중이다.
또 석유화학업종이나 유해ㆍ위험물을 규정 수량 이상 저장ㆍ취급하는 공정안전보고서(PSM) 제출사업장 등은 전담반을 구성해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특히 PSM 사업장 102개소에 대해서는 내달 말까지 설비 개ㆍ보수 작업 시 현장을 방문해 안전성 여부를 직접 확인할 예정이다.
Q. 세월호 참사로 어느 때보다 기업의 안전이 화두가 됐다. 이를 계기로 기업들의 안전 의식이 높아졌다고 봐도 되나
A. 사업장에서 경영진들을 만나보면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안전보건을 바라보는 경영자들의 시각이 달라진 것 같다. 본사차원에서 위기대응 매뉴얼을 마련하고, 협력업체에도 안전 교육을 강화시키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일시적인 것에 그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안전사고에 대한 국민적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분위기와 맞물려 기업들의 안전 관련 예산 확대 및 시설 투자, 안전인력 확대를 통한 조직개편, 안전 컨트롤타워 형성, 안전수칙 가이드라인 제정 및 재정비 등으로 이어져야 한다. 안전보건경영시스템을 구축해 모든 사업 활동에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문화가 정착되길 기대한다.
Q. 지금 시기에 사업장에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재해는 무엇인가
A. 시기별로 작업장에서 발생하는 재해가 다르다. 겨울철에는 미끄러짐이 빈번하고 무더위가 찾아오는 요즘 계절에는 밀폐공간 질식 재해가 가장 우려된다. 정화조 청소를 하거나 탱크정비 보수 작업 중, 질식할 우려가 있다. 식료품을 제조하는 단무지 공장에서 작업하다 질식하는 예도 있다. 즉, 언제 어디서든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거다. 사업장에서는 자주 환기를 하고, 근로자들은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함으로써 사고를 미리 방지할 수 있다. 가장 기초적인 부분이지만 이를 지키지 않은 곳이 많다. 안전 수칙의 기본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Q. 공단 비서실장, 연구실장, 경영기획실장 등 요직을 지내고 지난 1월 사업체가 많은 ‘현장’에 내려왔다. 어깨가 무겁겠다.
A. 그렇다. 전국 27개 지역본부 및 지도원 중 관내 근로자 수는 7.5%이고, 사업장 수는 6.5%에 달한다. 처음 원장을 맡으면서 상당히 큰 기관에 부임돼 책임감이 어느 때보다 크다. 지난해 관내에서만 6천963명이 재해를 입었고, 107명이 사망했다. 3일에 1명꼴로 사망하는 셈이다. 굵직한 사고와 이슈도 잇달았다. 그러나 근로자와 사업장이 건강하고, 나아가 대한민국이 건강한 산업안전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 한다.
Q. 구체적인 목표는 있나
A. 두 가지가 있다. 경기남부지도원 관내의 산업재해를 확실하게 감소시키는 것이 첫 번째다. 우선 지도원 관내 산업재해를 감소시키고자 핵심업종, 지역 등을 핵심 타깃으로 설정해 역량을 집중하는 ‘타깃 (Target) 전략’, 고객에게 맞춤형 산재예방 서비스를 지원하는 ‘니즈(Needs) 전략’, 재해발생 시 적시에 재해예방사업을 펼치는 ‘타임(Time)’ 전략 등 ‘T?N?T’ 전략을 중심으로 올해 산재예방사업을 전개할 예정이다. 이를 바탕으로 사고재해율과 사고사망 만인율, 업무상 질병 만인율을 전년대비 5% 감소시키겠다.
두 번째는 경기남부지도원을 가장 근무하고 싶은 지도원으로 만들겠다. 조직 분위기 활성화를 위해 매월 스낵데이와 마니또 게임 실시, 소통의 시간을 마련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내부 고객인 직원들의 만족이 높아야 고객도 만족하게 할 수 있다.
Q. 안전한 사업장 문화 조성을 위해 사업주와 근로자, 관련 기관 등에 당부하고픈 말도 있을 거다
A. 오늘날 우리는 위험이 상존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위험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어도 최소화할 방법은 있다. 바로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일이다. 사업주는 근로자에게, 대기업은 하청업체에게, 발주자는 시공자에게 “나도 기본과 원칙을 지킬 테니까 여러분도 기본과 원칙을 지켜서 하라”고 하면 된다.
안전은 혼자 지킬 수 없다. 함께 노력해야 가능한 것이다. 올해 정부와 지도원에서 산업현장에서 대형사고 예방을 위해 총력을 다 하는 만큼 사망재해가 획기적으로 감소하길 기원해 본다.
정자연기자 jjy84@kyeonggi.com
사진=추상철기자 scchoo@kyeong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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