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인터뷰] 대한민국 여자펜싱 간판 성남시청 남현희

엄마로 돌아온 ‘땅콩검객’… 여전히 예리한 칼끝 “살아있네~”
2008 베이징올림픽 ‘銀’ㆍ2012 런던올림픽 ‘銅’ 그리고 2014 亞 선수권 플뢰레 개인ㆍ단체전 ‘金’

한국 여자펜싱의 간판인남현희(33ㆍ성남시청)가 수원에서 열리고 있는 2014 아시아 펜싱선수권대회 여자 플뢰레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우승하며 2관왕에 등극, 건재를 과시했다.

2011년 5살 연하의 사이클 선수인 공효석(28ㆍ금산군청) 선수와 결혼한 그녀는 지난해 5월 딸 하이를 출산 한 뒤 2개월 만에 현역에 복귀, 1개월여 뒤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은메달,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로 한국 여자 펜싱 선수로는 최초로 올림픽 개인전에서 연속 메달을 획득했던 남현희는 세간의 우려 속에서도 이번 아시아선수권에서 ‘최고 검객’의 자리에 복귀했다.

그녀에게 1년여의 공백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항상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그녀는 단지 157㎝의 ‘땅콩 검객’에서 ‘엄마 검객’으로 바뀐 것 뿐이었다. 지난 4일 오후 수원실내체육관에서 그녀를 만나 출산 후 복귀와 그동안의 선수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출산 후 첫 국제대회 금메달을 땄다. 그동안 수많은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냈는데 이번 대회 금메달의 의미가 남다르지 않나.

A. (출산 후) 복귀가 이른감도 있었고, 앞서 여성 선수들이 출산 후 예전 기량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주변의 우려가 있었지만, 그동안 많은 대회에 출전하면서 나름의 노하우를 얻었기에 자신감은 있었다. 출산 직후 부상은 평생 간다는 말이 있어서 그동안 대회에 다소 소극적으로 임해 성적이 부진했었다.

더군다나 세계랭킹을 유지하다가 임신기간 동안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면서 포인트를 모두 잃은데다 충분한 준비기간 없이 대회에 출전해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아시아선수권과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등 연달아 열리는 큰 대회를 앞두면서 욕심을 냈고,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Q. 국내 대부분 여자 선수들은 결혼 후 출산하면 은퇴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산 2개월 만에 현역으로 복귀했는데 이유는.

A. 솔직히 1년 정도 쉬면서 완전히 몸을 만든 다음에 시작하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직업을 갖고 있다보니 계속 쉴 수가 없었다. 임신기간에도 성남시청에서 계속 급여를 받아 미안함도 있었다. 코치님과 대화를 많이 했는데 빨리 감을 찾아 다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솔직히 그때까지 자신은 없었다. 9월 대표선발전에서 최선만 다하자는 생각으로 임했는데 추천이 아닌 선발전(2위)으로 발탁되면서 아직 감을 완전히 잃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대표팀에 들어가서 체력적인 부분을 보완한다면 다시 예전의 경기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른 복귀로 남편과 친정엄마가 걱정을 많이 했지만, 반대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해온게 아깝다며 어차피 할 거면 잘 준비하라고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다. 남편도 아내로서의 모습도 좋지만, 펜싱하는 모습을 볼 때가 가장 자랑스럽다고 격려해줬다.

Q. 1년여의 공백과 출산으로 인한 근육 이완 등으로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A. 국가대표 선발전에 기간을 두고 준비한 게 아니다. 그해 대표 선발전은 출산 후 3개월 뒤에 바로 열렸다. 더군다나 원래는 9월말 예정이었던 선발전이 초로 앞당겨지면서 훈련을 할 수 있는 기간이 딱 30일이었다. 첫날 런닝머신을 뛰는데 10분도 못 걷겠더라. 걱정을 많이 했다.

선생님도 2주 정도는 스트레칭이나 걷는 것 위주로 스케줄을 짜주셨는데 선발전을 대비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나머지 2주는 실전훈련을 진행했다.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다른 팀과의 전지훈련으로 긴장감이 한꺼번에 몰려와 몸이 많이 아팠다. 타이트하게 경기를 준비했었던 것 같다.

Q. 70여일 뒤면 인천 아시안게임이 열린다. 그동안 아시안게임서 개인전 금메달 3개와 단체전 4연패를 이뤘다. 이번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2관왕에 오를 자신이 있나.

A. 대표로 선발되고 나서 아시안게임을 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출산하고 얼마 안돼서 선발이 됐다는 것에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 첫 단체전 금메달을 따냈다. 이후 도하와 광저우 대회까지 단체전 4연패를 달성했고, 개인전에서는 3개의 금메달을 땄는데 아시아 펜싱선수 남녀 통틀어 최초로 알고 있다.

또 다른 도전을 해보고 싶다. 이번 아시아선수권에서 6연패를 달성했다. 개인적으로는 출산으로 뛰지 못한 지난해를 빼면 아시아선수권 5연패다. 아시아선수권과 아시안게임을 합치면 8번째 개인전 우승이라 인천 아시안게임에 욕심을 내고 있다.

Q. 157㎝의 단신 핸디캡을 극복하고 한국펜싱의 간판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외국선수들보다 20㎝ 가까이 신장 차이가 나는데 큰 선수들과 상대하면서 두려움은 없었나. 단신의 핸디캡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A. 신장의 차이는 결국 팔과 다리 인치의 핸디캡이다.키 큰 선수와 경기를 할 때는 몸이 들어가는 것보다 상대가 팔을 뻗는 게 더 빠르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보다 더 많은 집중력과 체력을 필요로 해 어려움이 많다.

그렇지만, 신장이 큰 선수들은 대부분 초반에 많이 움직이면서 끌고 다니면 후반에 접어들면서 집중력이 떨어지고, 체력적으로도 둔해지는 단점이 있다. 이점을 공략해 상대를 교란시키며 체력을 소진시키고, 공격하도록 유인한 뒤 포인트를 따내는 방법으로 핸디캡을 극복하고 있다.

Q. 국내 여자펜싱 선수로는 최초로 올림픽에서 2회 연속 메달을 따냈다. 하지만, 아직까지 올림픽 금메달은 따내지 못했는데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못 이룬 금메달에 다시 도전할 생각인가.

A. 2012 런던 올림픽을 마치면서 다가올 브라질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하겠다고 했었다. 단순히 메달을 또 따고 싶다는 생각은 아니다. 베이징 올림픽 때는 메달이 간절했고, 런던 때는 금메달이 간절했었다.

베이징 때 은메달을 한번 따봤기 때문에 런던 때는 기대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는 욕심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훈련양도 많았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컨트롤하면서 연습하지를 못했다. 다음번 리우에서는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고 싶다.

Q. 앞선 두 차례의 올림픽 금메달 길목에서 이탈리아 베잘리 선수에게 모두 발목을 잡혔다. 그녀와 다시 붙는다면 극복할 방안은 있나.

A. 제가 뭔가 기술을 시도하려는 스타일이라면 베잘리는 움직이기를 기다렸다가 빈틈을 공략해 쉽게 득점을 따내는 스타일이다. 경험이 많은 선수기 때문에 단순 공격보다는 어렵게 공격하려고 했던게 오히려 패배 요인으로 작용했다.

전에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에 조바심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지금은 어차피 그렇게 해서 졌었는데 마지막 1초가 남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만난다면 여유를 갖고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할 생각이다.

Q. 2011년 5살 연하의 사이클 선수와 결혼을 했는데 두 사람이 만난 과정과 종목이 다른 남편이 어떤 외조를 해주고 있나.

A. 과거 서울시청에 몸담고 있을 때 같은 소속 사이클선수였던 남편을 워크숍에서 처음 만났는데 처음엔 5살이라는 나이 차 때문인지 동생 같았다.

후배들이 조언을 많이 구하는 편이라 남편도 그런 후배들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차츰 이벤트라든지 소소한 애정공세를 펼쳤다. 평소 운동에만 전념하다 보니 그런 이벤트를 받아본 적이 없다. 일반인보다 운동선수들이 감성적으로 약한 면이 많이 있는데 남편의 적극적인 면에 끌렸던 것 같다.

나이는 어리지만, 남편이 더 어른스럽고 세심하다. 펜싱을 하면서 건강보조식품이나 운동 중에 섭취해야 하는 영양소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었는데 몸 관리에 철두철미한 남편이 건강식과 영양식을 챙겨주는 등 배려심이 많다.

Q. 출산 후 국가대표에 복귀하면서 갓 돌지난 딸 ‘하이’가 많이 보고 싶을 텐데, 자주 만나고 있나.

A. 친정어머니가 돌봐주신다. 훈련계획이 빡빡하고 국제대회 일정도 많아 2~3주만에 얼굴을 볼 때가 많다. 어머니와 동생이 영상통화와 수시로 사진이나 영상을 찍어서 전송해준다. 딸 소식이 궁금하고 걱정되지 않게 가족들이 도와주고 있다.

Q. 딸아이 이름이 ‘하이’로 이국적인데 작명을 하이로 하게 된 배경이 있나.

A. 원래 ‘하이’는 태명이다. 런던올림픽 당시 나이가 32살이었다. 노산에 가깝다고 판단해서 아이를 빨리 갖고 싶었다. 그러던 중 바로 아이가 생겨서 ‘반갑다’는 의미로 태명을 하이로 정했다. 임신 기간에 팬들도 많이 생겼는데 하이 선물을 많이 보내주셨다. 처음에는 이름으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이라는 이름이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명소에 가서 이름이 좋다는 말을 듣고 하이를 이름으로 정하게 됐다.

Q. 하이가 운동에 소질이 있다면 선수로 키울 용의가 있나. 있다면 종목은.

A. 걷는 것도 열달만에 걸었다. 여러모로 빠르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주변에서도 ‘손이 왜 이렇게 빠르냐’고 농담 섞어 말한다.(웃음) 남편도 같은 생각이지만, 국가대표 선수는 원하지 않는다. 그저 취미로 펜싱을 배워놓으면 나중에 미국에 대학 진학과 연결이 되기 때문에 펜싱을 접하게는 해주고 싶다.

Q. 2016년 올림픽에서 목표를 이룬 뒤에도 선수생활을 계속할 생각인가. 은퇴후 어떤 생활을 하고 싶나.

A. 원래 현모양처가 꿈이었는데 펜싱을 하면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이뤄내고자 노력했다. 그 꿈도 결혼 전까지만 열심히 하자는 거였다. 하지만, 결혼후에는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평범한 여성들처럼 요리도 하고 육아에 전념하고 싶었다. 주변에서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리우까지는 선수로서 매진하고, 은퇴 후에는 주부로서의 삶을 살겠다.

처음 출산해서는 더이상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를 키우다 보니 아이가 재산이라는 생각이 들어 4명까지 낳고 싶지만, 나이 때문에 최소 2명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

대담=황선학 체육부장

정리=박준상기자 parkjs@kyeonggi.com

사진=전형민기자 hmjeon@kyeonggi.com

프로필

생년월일: 1981년 9월 29일

신체조건: 157㎝, 44㎏

출신교: 성남여중ㆍ고, 한국체대, 성신여대 대학원 석사

취미: 쇼핑, 식도락 여행

주요경력: ㆍ2001 아시아선수권 개인전 금

ㆍ2002 부산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

ㆍ2006 도하 아시안게임 개인,단체 금

ㆍ2008 베이징 올림픽 개인전 은

ㆍ2009 아시아선수권 개인,단체 금

ㆍ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개인,단체 금

ㆍ2012 런던 올림픽 개인전 동

ㆍ2014 아시아선수권 개인,단체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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