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 사각지대 청소년에 희망… 30년 ‘제3의 교육인생’ 외길
재단법인 글로벌에듀의 이우영 이사장(57)은 누구도 관심두지 않았던 직업교육의 장을 열고 30년이 넘는 세월을 교육에 헌신한 개척자이자 교육인이다.
30년 동안 체험식 교육의 중요성을 널리 전파하며 교육계의 판도를 뒤흔들어왔지만 그는 아직도 학생이 행복한 학교를 꿈꾸는 낭만선생님이다.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은 글로벌에듀의 대표적인 교육현장인 인천영어마을에서 이우영 이사장의 30년 내공이 담긴 교육철학을 듣는 기회를 가졌다.
Q.인천영어마을, 인천문예전문학교, 경문전문학교, 중앙전문학교, 무주국제화교육센터, 강화신문화예술단지 등 30년 동안 정말 많은 교육전문기관을 세웠다. 30년, 말만 해도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 시간이다. 교직에 몸담고 있다가 학교를 박차고 나와 새로운 교육현장을 개척하고자 했던 계기가 있을 것 같다.
A.1984년에 교직을 버리고 직업학교인 팔봉전산직업훈련원을 설립했다. 1980년대 당시 대학 진학율이 30%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70%는 여러가지 이유로 진학을 포기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대학에 가는 것만 가르쳤다. 대학에 가지 못한 아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아야하는 지 미래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이 학교를 떠난 뒤를 책임질 수 있는 직업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전산직업훈련원을 열고 대학에 못간 아이들은 다 오라고 했다. 이왕 시작한 것이니 큰 생각을 해보자고 했다. 우리나라 틈바구니에서 벗어나 세계로 뻗어갈 수 있는 길을 찾은 것이다. 교가도 ‘가자! 세계로’ 이런 가사를 넣어서 만들 정도였다. 해외취업이라는 것은 1980년대에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Q.보통은 학교에서 대학에 가는 학생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쏟는 것과 달리, 대학에 가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관심을 돌렸다는 것이 흥미롭다.
A. 내가 자라온 환경이 큰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좋은 환경에서 좋은 것을 먹고 입으면서 공부만 했다면 몰랐을테지만 나는 그렇게 크지 못했다. 나는 특별한 재능도 든든한 재력도 없이 맨손으로 성장했다.
충남 서산 팔봉면 팔봉산 자락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흙과 나무 그리고 팔봉 산을 벗 삼아 자란 시골 아이였다. 가정 형편 때문에 11살이 되던 해 홀로 나와 생활하게 되었고 그리 아름답지 않던 유년 시절을 보냈다. 친구들이 도시락을 챙겨다 줄만큼 인기가 많긴 했지만, 어린마음에 자존심이 허락지 않아 물로 배를 채워 가며 독하게 공부했고 농사도 병행해야 했다.
특별히 신경쓰지 않아도 잘하는 친구들은 잘한다. 하지만 공부를 못하거나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한 아이들은 더 귀를 기울여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고민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대학을 가지 않는 학생들은 졸업 후에 진로를 선택할 기회가 많지 않아서 사회에서 도태되기 쉬웠다.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학생들에게 다양한 진로를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참된 교육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대학에 가지 않는 학생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우연히 일본의 직업교육을 접하게 됐다. 이거라면 학생들에게 더 좋은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Q.1980년대는 아직 직업교육이라는 개념이 확립되기 전이라서 출발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우여곡절을 수차례 겪었다고 들었다.
A.당시 2년 과정의 직업교육은 정식 학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직업교육 소관은 노동부이고 학위를 주는 기관은 교육부였는데 교육부는 노동부 소관이라는 이유로 직업교육기관에는 학위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학생들이 직업교육을 받은 것이 사회적으로 통용되려면 학위를 인정받는 게 중요했다.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던 차에 무작정 미국으로 날아가서 미국 남유타대학과 교육교류협약을 성사시켜 미국학교 3학년으로 편입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어렵사리 만든 기회였던 만큼 자랑스럽게 학생들을 미국으로 유학보내고 실리콘밸리에 일자리도 마련해줬다.
그렇지만 학생들은 행복해하지 않았다. 영어가 걸림돌이 된 것이다. 학교로 간 아이들은 영어로 하는 강의를 알아듣지 못했고 취직을 한 아이들은 동료와 말 한마디 나누지 못했다. 내가 무식하게 대응했던 것이다. 그래서 영어교육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교육방향을 재설정했다. 이것이 영어교육과 진로직업교육을 특성화한 글로벌에듀의 출발이었다.
1980년대에는 많은 이들이 과연 그런 교육이 효과가 있겠냐, 누구를 위한 교육이냐, 심하게는 그런 것을 교육이라 할 수 있느냐는 질타와 멸시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확신히 있었다.
Q.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 대학교에서까지 십수년 동안 영어를 공부하지만 국민 대다수는 영어를 능숙하게 하지 못한다. 어떤 방식으로 영어교육을 시작했는지 궁금하다.
A.친척 가운데 부평 미군부대 근처에 살던 분이 계셨다.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은 분이었지만 곧잘 영어를 썼고 외국인과도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초등학교만 나와도 영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본 것이다. 방법은 간단했다. 영어를 공부하는 게 아니라 생활 속에서 영어를 체득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선 원어민을 관광비자로 데려와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영어교육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외국인을 보고 낯설어하고 쭈뼛대던 아이들이 점차 달라졌다. 말하는 데 자신감이 붙은 것이다.
아이뿐이 아니었다. 국내 모 대기업은 해외지사로 파견나가는 직원을 보내왔다. 영어학원을 보내도 직원들의 영어 실력이 늘지 않던차에 영어마을에 와서 직접 교습방법을 보고는 직원들을 보낸 것이다.
오후 5시쯤 퇴근하면 버스를 타고 영어마을로 와서 공부하고 다음날 오전 7시에 출근했다. 나는 그들을 잔인하게 공부 시켰다. 영어를 안하면 밥도 안줬다. 점차 소문이 나서 다른 대기업까지 동참했다. 나중에는 일본 NHK 방송과 인터뷰도 할 정도로 인정받았다.
이제는 러시아와 일본에서도 영어를 배우러 인천영어마을을 찾는다. 지금도 수백명의 외국인 학생이 이곳에서 영어를 배우고 있다. 미국이나 영국을 가지 않고 한국, 인천을 찾는다.
A.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도구를 달리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영어와 접목하도록 한 것이다. 예를 들어 태권도를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태권도를 하면서 영어를 하는 방법으로 가르치고,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노래를 부르면서 영어를 익히도록 했다. 자신이 희망하는 직업과 영어를 적용하기도 했다. 건축가나 미술가 등 직업을 체험하면서 영어를 배우게 했다.
좋아하는 것으로 영어를 가르치니 배우는 속도도 빠르고 습득력도 높아졌다.
책을 싫어하고 영어도 싫어하는 아이에게 책으로 영어를 가르치면 둘 다 포기하기 마련이다.
인천영어마을에서는 영어도 배우고 직업체험도 하면서 자신이 정말 흥미있어 하는 게 무엇인지 깨닫는 기회를 준다. 이것이 인천영어마을만의 경쟁력이다.
Q.개개인에게 모두 다른 방식으로 교육을 했다는 것인가. 많은 인력이나 노력이 필요한 일일 듯 싶다.
A.진정한 교육은 개인에게 맞춤식으로 교육하는 것이다. 많이 보면 많이 알고 자신의 길도 찾을 수 있다. 글로벌 시대에 영어는 필수다. 학교에서 아무리 배워도 영어를 못하는 것은 시험을 보기 위한 영어만 배우기 때문이다. 생활에서 쓰이는 영어가 아니니 당연히 영어를 못한다.
노래방이 생기고 나서 전국민은 가수가 됐을 정도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원어민과 놀면서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이것은 영어교육의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더 깊이 있는 영어를 배우도록 이끌어주는 것은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다. 학생들 개개인의 면모를 잘 살피면 금세 알 수 있다. 학교를 짓고서 적자 흑자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돈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Q.글로벌에듀 30년, 영어마을 10년, 이곳을 다녀간 학생들이 엄청 많을 것 같다.
A.영어마을에는 평균적으로 연간 1만5천 명의 교육생이 다녀간다. 지난해까지 모두 25만 명이 넘는 학생이 이곳을 거쳐갔다. 40~50대 전산관련 전문가들은 절반 이상 팔봉전산직업훈련원 출신이라고 봐도 된다.
팔봉에서도 당구를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당구장 프로그램을 짜보라고 권하는 교육방식을 택했었다. 학생들의 반응이 매우 좋았고 교육방식에 잘 따라줬다. 나중에는 팔봉 출신 부모가 아이를 인천영어마을에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2대, 3대가 모두 글로벌에듀에서 교육을 받고 영어를 배우고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일도 생기고 있다.
Q.이우영 이사장이 꿈꾸는 학교는 어떤 곳인지 듣고 싶다.
A.학생과 교사가 모두 빨리 학교에 가고 싶어서 마음이 설레는 그런 학교를 꿈꾼다. 살아가면서 가장 행복한 것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다. 어른이 해야할 일은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어른들은 대부분 ‘좋은 대학을 가야 행복한 미래를 살 수 있다’는 단순한 통계학적 데이터에 아이들을 묶어놓는다. 아이들의 미래는 무한하지만 우리 교육시스템은 그 무한한 가능성을 뒷받침해주지 못한다. 교사 혼자서는 못한다.
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지, 아이들은 무엇을 위해 공부하고 있는지, 공부를 잘 하는 아이, 운동을 잘 하는 아이가 다른데 왜 모두 똑같은 교육을 받아야 하는지 교육자로서 갈등이 많다. 학생맞춤교육이 돼야 하는 데 교실맞춤교육이 되고 있다.
교육은 행복해야 한다. 내일 행복하자고 오늘을 희생하면 안된다. 오늘이 행복해야 내일도 행복할 수 있다.
이우영 이사장 프로필
학력사항 광운대학교 응용전자과 학사,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경영학 명예박사, 창원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 광운대학교 대학원 교육학 명예박사, 창원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박사
수상경력 한국시민자원봉사회 한국시민 지도장, 대통령 표창, 교육과학기술부장관 표창, 제1회 대한민국 교육기부대회 대상, 자원봉사활동 우수지도자 대통령 표창 등
1984 ~ 경문직업전문학교 이사장
인천문예직업전문학교 이사장
글로벌에듀 이사장
1998 ~ 중앙직업전문학교 이사장
2006 ~ 인천시영어마을 이사장
인천서구영어마을 이사장
2008 인천광역시장애인배구협회 회장
2009 ~ 무주국제화교육센터 이사장
2011 ~ 한국시민자원봉사회 청소년봉사단 인천연맹 총장
2012 ~ 글로벌관광통역전문학교 이사장
2013 ~ 전국직업능력개발훈련법인 협회장
김미경기자 kmk@kyeonggi.com
사진 장용준기자 jyju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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