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유토피아로 가는 길

칼럼을 쓰기 시작한 것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다 되어 마지막 칼럼을 쓰고 있다. 그간 복지정책 및 행정체계의 개선을 위해 정부에게 바라는 당부, 장애인?학대아동?저소득 등 취약계층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과 세월호 침몰이나 경주의 리조트 붕괴사건 등 안전불감증에 관한 일련의 사태 등을 보면서 나름의 시각으로 비판을 해왔다. 오늘은 한 사회가 건강해지고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유토피아로 가는 길에 대한 단상(斷想)을 옮기면서 짧고도 긴 여정을 마감하고자 한다.

왜 우리는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만들어야 할까? 우리사회는 정해진 제도 하에 다양한 구성원들이 살아가는 공동운명체이다. 경쟁위주의 사회에서 약자들을 배려하고 돌보지 않으면 사회통합을 약화시키고 결국에는 공동체 존재를 위협하는 결과가 초래된다.

아직도 장애인이나 독거노인이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이라고 치부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그러나 통계치를 보면 장애인의 90% 이상은 후천적 장애인이라는 사실과, 짧으면 10년 길면 30년 사이에 나도 노인이 된다는 사실을 진정 외면하고 싶단 말인가.

과거 우리나라 복지정책은 선진국에 비해 많이 부족하여 ?아가기 바빴으나 이제는 제도나 시스템적인 면에서 선진국들과 동등한 수준이거나 오히려 앞서고 있는 좋은 제도들이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그 내면을 살펴보면, 관리 인력의 부재와 시행기관들의 산재로 비용대비 효과가 떨어지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예를 들면 장애 유형별로 세분화 되어야 할 직업교육이 장애를 고려하지 않은 채 통합되어 실시되고 있다든지, 비리로 얼룰진 일부 어린이집 문제 등 제도를 악용하거나 행정편의 위주의 지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제는 복지지원 시스템을 고도화하여 보다 많은 복지 전문가를 현장에 투입하고 동시에 예산이 효율적으로 쓰이고 있는지 관리할 수 있는 인력들의 충원이 시급하다.

유토피아에는 권한만 있고 책임은 없는 것인가? 화랑 김유신이 젊은 날 화류계에서 명성이 자자했던 절세미인 천관과 사랑에 빠져 지내다 부모님의 호된 꾸지람을 듣고 발길을 끊기로 다짐했는데, 그의 애마가 만취한 김유신을 늘 가던 천관녀의 집으로 데려간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자 김유신이 애마의 목을 내리쳤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 일화는 자신에게 책임의 엄중함을 보임으로써 잘못된 행동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하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관용을 베풀어야 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일 것이나, 많은 사람들은 그 반대로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행동주의 심리학에 ‘조작적 조건형성의 원리’라는 개념이 있다. 이 원리는 규칙을 잘 지키고 배려하는 행동을 보이면 보상을 주고, 규칙을 안 지키고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면 벌을 주는 방식으로 아동의 문제행동을 치료하는데 요긴하게 적용되고 있다.

그런데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법에서는 소화훈련, 퇴선훈련, 구명정 강하, 인명사고시 행동요령 등을 제시하고 이를 정기적으로 실시해야 하는 기간을 정해두고 있으나 이를 형식적으로 하거나 훈련자체를 전혀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이제 우리는 더 좋은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데 애만 쓰지 말고, 이행 결과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묻고 성실히 수행한 곳에는 보상을 해주어 ‘규칙은 만들어 놓는 것이 아니라 준수하는 것’이라는 것을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

유토피아는 달리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우리의 작은 외침과 이를 향해가는 순수한 발걸음으로 완성되어 간다. 그간 부족한 칼럼에도 늘 격려해주면서 함께해주신 독자여러분들께 무한한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전하면서 마지막 칼럼을 마친다.

전선영 용인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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