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영화인들 사이에선 2014년 여름 흥행은 대작 4편의 경합으로 점쳐졌었다. 맨 처음 시작한 영화는 ‘역린’이었다. 그 다음 ‘군도’, ‘명량’, ‘해적’ 이렇게 네 편이 차례로 개봉하면서, 흥행의 판도가 판가름 나기 시작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명량’을 제외한 나머지 세 편의 영화가 이렇게 압도적인 차이가 날 정도로 형편없거나, 재미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대체 오락영화 판에서 흥행을 좌우하는 그 기준치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들 네 편을 비교하는 이유는 종래의 오락영화 대 예술독립영화를 비교하던 경우와 이번 여름의 흥행경쟁은 좀 더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경우는 돈을 많이 들인 블록버스터 영화들 끼리의 경쟁이고, 그런 점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동기, 즉 돈을 벌어야 하는 동기가 똑같이 작용한다는 점에서 어느 누구를 일방적으로 동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제작비를 비교해도 이들 네 영화는 비등하다. ‘역린’은 120억, ‘군도’는 160억, ‘명량’은 190억, ‘해적’은 160억 등이다. 이번 비교와 흥행의 결과는 미래 한국영화산업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를 점치는 대단히 중요한 지표가 아닐 수 없다. ‘역린’은 다른 세 편과 멀찌기 떨어져 있어서 손익분기점이란 계산에서 그래도 덜한 편이고, 서로간의 피해의식도 적은 편이다. 하지만 여름의 절정에 개봉한 세 편은 심각하다. ‘명량’의 독주로 다른 두 편 ‘군도’와 ‘해적’의 피해는 만만치 않은 것이다.
관객이 원하는 것은 영화적 재미나 스펙터클의 차이, 스타의 활약 등 어느 것에서도 비등한 것으로 판단되는 세 편의 영화가 다 같이 흥행했으면 하는 것이다. 그런 바람이 비단 관객들만의 것일까? 100억 이상의 제작비를 쏟아부어서 그 이윤을 회수하고 나아가서 이익을 만들어내 참여한 영화사, 투자사, 영화인들이 다 잘 먹고 사는 길이 좋은 게 아닌가.
‘명량’의 사례는 기업적 측면에서 보면 대박 신화를 이룬 쾌거일지 모르나 전체 한국영화산업의 측면에서는 대기업이 이제 중소기업을 억압한 정도가 아니라 같은 경쟁 대기업 마저도 제압해버린 대단히 위험한 시장상황이란 점을 시사한다. 먹이사슬이 없어지고 호랑이만 남은 영화의 숲에선 결국 호랑이 마저 굶어죽고 말 것이다.
2014년 여름은 특정 영화의 상영횟수 독과점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심각해서 대형 경쟁 영화사 및 대형 투자사들의 위기 의식마저도 불러온 중대한 시기라 할 수 있다. 이런 식의 배급상영 형태라면 앞으로 한국영화는 절체절명의 위기도 올 수가 있다. 하나의 대기업과 하나의 영화가 사는 것 보다는 세 개 이상의 대기업이 서로 경쟁을 하는 게 산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장기적인 면에서 훨씬 낫다는 교훈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관객의 측면은 문화적인 면이고, 제작의 측면은 산업적인 면이다. 문화와 산업의 양 날개로 비상하는 영화는 어느 한 기업이, 어느 한 영화만이 독주하는 그런 현실을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어느 누가 그런 현상을 정상이고 상식이라 생각할 것인가.
정재형 동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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