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만 하더라도 문화적인 경험을 한다는 것은 연례행사로 가끔 초등학교에서 단체로 영화를 관람하는 정도였으며 가끔 전국을 순회하는 천막 서커스단의 쇼를 구경하는 것이었다. 피아노를 소유하고 있는 가정은 거의 없었으며 초등학교에서 조차도 피아노가 없었고 대신 풍금(리드 오르간)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오디오 기기는 부자들만이 누리는 호사품이었기 때문에 음악을 접할 수 있었던 기회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내가 살았던 집은 고등학교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었다. 학교 운동장에는 깔때기 모양의 스피커가 조회대 옆에 양쪽으로 학생들이 서는 장소를 향하여 세워져 있었다. 그 스피커에서는 점심시간과 저녁 하교시간에 어김없이 아름다운 클래식음악이 흘러나왔다.
그 음악소리는 온 동네에 울려 퍼졌고, 감성이 조금은 풍부했던(?) 어린 소년에게 그 소리는 천상의 소리 같았고, 황홀한 소리였다.
그 학교 옆 집에서 5살때부터 초등학교 6학년까지 살았으니 거의 8년 동안을 클래식음악이 울려 퍼지는 동네에 살았던 것이다. 아마도 그런 동네에 살지 않았었다면 클래식음악을 접할 수 있었던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 다른 길을 걷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처럼 어려서의 교육과 경험은 인간의 삶의 방향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21세기는 문화 선도국가가 세계질서를 이끈다고 한다. 현 정부도 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문화융성을 핵심 국정지표의 하나로 삼고 있다. 이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리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고 뒤이어 나타날 여러 정권에 걸쳐 지속적으로 펼쳐져야 할 과제인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 및 사회에서의 문화예술교육을 확대하고 강화해야 한다. 문화예술교육의 궁극적 목적은 창작과 표현을 통해 함께 하는 조화로운 삶과 인간의 잠재적 능력을 계발하고 창조적 통찰력을 갖게 하여 통합적 인간을 형성하는 데에 있다.
이런 이유로 어느 나라든지 문화정책이나 교육정책에서 문화예술교육은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21세기 들어서 정부의 문화비전 추진위원회가 발간한 ‘문화의 세기가 오고 있다’라는 제목의 보고서에도 ‘창조적 인간을 만들기 위한 문화교육이 필요하다’를 첫 번째 가치로 제시하기도 했다.
이를 위해 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교육, 문화산업을 위한 문화예술교육의 강화, 창조적인 문화주체의 육성, 학교 교육의 문화적 회복이라는 네 가지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공연장들의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은 많은 사람들이 문화예술을 향수하도록 돕는다는 공공성과 함께 실질적으로 관객 개발의 중요한 수단이 된다.
그러나 이는 해당 공연장만의 미래를 위한 투자보다는 공연예술 전반에 기여하는 측면이 더 강하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 이유는 미래 잠재관객 개발 노력은 그 결과가 해당 공연장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중앙정부 차원에서의 지원 및 제도 정착이 더 중요하다고 하겠다.
이제 문화예술교육은 학교라는 특정한 시스템과 시기에만 머물러서는 안된다. 평생학습 개념에서의 사회 전반적인 환경이 더 중요하며 문화예술공간 및 공공공간이 문화예술교육적 기능을 가져야 한다.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은 국민과 문화예술계가 상호 득이 되는 시도이다.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더불어 문화예술분야의 활성화를 동시에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융성은 현 정부에서 일시적으로 수행하는 과제가 아닌, 하나의 큰 흐름을 만들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며 문화예술교육의 확대가 그 지름길이 될 것이다.
박평준 삼육대학교 음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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