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단상] 규제개혁, 현장에 답 있다

‘하천예정지’라는 제도가 있다. 1961년 하천법이 제정된 당시부터 있던 제도로 하천의 신설 및 공사에 따라 새로이 하천구역으로 편입 될 부지를 사전에 지정하여 관리 한다는 취지이다.

그런데 이렇게 지정되었다가 3년 이내에 관련 사업이 착수되지 않아 지정효력이 상실되는 부지가 올해만 해도 여의도 면적의 16배에 달하는 46,020,157㎡에 이른다. 지정대비 해제 비율이 무려 98.68%이다. 쓸데없는 지정을 남발한 것이다.

하천예정지 주민들은 이 3년간 부지내 공작물의 신?개축 등의 행위에 제한을 받아 토지활용과 재산권에 심각한 침해를 받게 된다. 이런 제도가 53년간 이어온 것이다. 불필요한 법체계로 인한 과도한 규제의 대표적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올 초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된 규제개혁에 대한 의지는 정부와 정치권을 뜨겁게 달궜다. 부처와 지자체별로 규제개혁 성과지표를 개발하고 불합리한 규제를 찾기에 혈안이 되었다. 당장이라도 무슨 큰 변화가 일어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반년이 훌쩍 지난 지금 규제개혁에 대한 우리의 체감도는 높지 않다.

실제로 지난 3월20일과 9월4일 개최 된 규제개혁 장관회의는 77건의 안건 중 31건을 완료 했지만 이마저도 푸나 마나한 규제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대통령이 주제하는 무역투자진흥회의,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국민경제자문회의는 20건을 선정해 추진하고 있지만 부분완료 3건, 국회검토 1건을 제외하면 80%가 현재까지도 검토 중에 있다.

수도권 규제로 가장 많은 피해를 격고 있는 경기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경기도 규제개혁추진단에 접수된 규제 총 525건을 분석한 결과 법령에 의한 규제가 233건이고 나머지 56% 292건은 시행령, 시행규칙, 조례 등에 해당하는 사항이다. 수도권 동북부권의 주민숙원 이었던 자연보전권역에서의‘공장설립제한’규제와‘4년제 대학 설립제한’규제 역시 법령이 아닌 시행규칙에 의한 규제사항이고, 관광사업의 도약을 도모 할 수 있는‘국립공원 내 호텔설립 제한’에 대한 규제 역시 법령이 아닌 시행령에 의한 규제였다. 정부의 의지와 경기도의 노력만으로 당장 해소 할 수 있던 규제들이다.

이러한 결과 국내 10대기업이 보유한 사내유보금이 515조 원 인데도 불구하고 국내투자는 전혀 유발되지 않고 있으며, 2006년 이후 국내 고정투자는 연평균 4%대에 그친 반면 해외직접투자는 연평균 27% 급증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90년대 중반이후 국내에 공장을 짓고 있지 않으며, LG전자도 2000년 들어 해외 고용 인력이 국내 인력을 넘어섰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규제를 풀어야 한다. 그리고 풀어야 할 규제를 찾기 위해서는 현장으로 가야한다. 하지만 위에서부터 시작된 규제개혁의 의지는 아직 아래의 현장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 앞에서 소개한 하천예정지 문제 역시 현장에서 직접만난 주민들의 민원으로 제기된 문제였다. 다행히 주민민원의 해결을 위해「하천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 하여 폐지를 위한 절차가 진행 중이다.

이렇듯 우리가 체감 할 수 있는 규제개혁은 위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바로 국민의 삶 속에서, 최전선의 현장에서 나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9월 3일 규제개혁 점검회의를 통해“규제개혁이 안이하고 더딘 것이 아닌지 위기감을 느낀다”면서 “하나의 규제라도 제대로 풀어서 국민이 효과를 느끼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 위기감은 비단 대통령만의 위기감이 아닌 온 국민의 위기감일 것이다. 이제 규제개혁에 대한 거대담론과 레토릭을 넘어 국민의 삶에서 시작되는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언제나 답은 현장에 있다.

정병국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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