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와 인연 20여년… 도민들과 건강한 세상 만들고 싶어”
인천에 소재한 (주)국일정공이라는 중견기업을 운영하면서 회사를 연매출 1천억원 이상의 탄탄한 반석 위에 올려놓은 강인덕 회장(60). 그는 기업인이면서도 국내농구계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유명인사다. 그가 농구 관련 단체에서 일해온 것만도 20년이 넘는다.
국민생활체육 경기도농구연합회장과 전국농구연합회장을 시작으로 한국중ㆍ고농구연맹 회장, 한국실업농구연맹 부회장, 대한농구협회 부회장, 인천시농구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거나 맡아오고 있다.
또한 아시아태평양장애인농구협회장을 맡아 지난달에는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을 치러냈으며, 경기도생활체육회 부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자신의 회사에 전용 체육관을 건립하고 실업팀 창단에 회사 이름을 딴 국내 및국제대회를 개최하고 있는 ‘농구 광’ 강인덕 회장을 지난달 27일 국일정공 본사에서 만나 그의 농구사랑 이야기와 기업인으서의 경영철학 등을 들어봤다.
Q 회장께서는 20여년을 농구 발전을 위해 힘써오셨다. 농구와의 인연을 먼저 소개해 달라.
A 초등학교 때까지는 축구를 했었는데 중학교를 진학하고 보니 축구부가 없더라. 농구, 야구, 육상 이렇게 세 종목이 있었고, 당시 키가 큰 편이어서 체육선생님의 추천을받아 농구와 연을 맺었다.
이후 여러가지 사정으로 농구를 그만두고 공부에 전념하게 됐지만, 농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 현재도 꾸준히 농구를 즐기고 있고, 농구 발전에 대해서도 매사 관심을 갖고 앞장서려고 노력하고 있다.
Q 그동안 경기도와 인천시, 전국의 농구 관련 단체장을 역임했고, 현재도 맡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아무리 농구인 출신이라도 열정과 재력이 뒷받침 안되면 어려운 것 아닌가.
A 성격이 굉장히 열정적인데 개인적으로 후진양성과 체육발전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그런 면이 많이 반영이된 것 같다.
스포츠 인재들을 뒷받침하고 실업농구연맹부회장을 맡으면서 상당한 예산이 드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단 한번도 아깝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다. 연간 1억5천 정도가 농구 관련 예산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가족들은 이제 수긍을 하는지 별다른 말은 하지 않는다.(웃음)
Q 그동안 한국중ㆍ고농구연맹 회장과 실업농구연맹 부회장등을 역임했고, 지난 2003년에는 국일정공 여자 실업농구팀을 창단했는데 계기가 있었나.
A 나름대로 생활체육 쪽에서 활동하면서 많은 변화를 이끌어냈다. 그런 점을 좋게 봤는지 엘리트 체육 쪽에서도도움을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개인적인 욕심도 없었고,생활체육에 전념하겠다는 마음이 커서 오랫동안 고사했었다.
하지만 결국 받아들이면서 2001년 중ㆍ고연맹회장으로 취임하게 됐다. 막상 회장을 맡고 보니 갈 곳이 없어방황하는 선수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당시 중ㆍ고등학교농구팀이 147개인 반면 여자 프로팀은 6개, 그리고 여자대학팀은 고작 4개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졸업 후에 받아주는 팀이 없어 방황하는 선수들이 허다했다.
프로에도, 대학에도 못 간 선수들을 데려다가 훈련을시켜 진학에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2003년 실업팀을 창단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초ㆍ중ㆍ고등학교 동안 운동만 해온 아이들이 실업자가 됐다며 울고불고하는모습을 봤을 때 가슴이 아팠다. 이런 아이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자는 순수한 목적으로 프로로 갈 수 있는 기회의 발판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
Q 아무리 그래도 중견 기업에서 실업팀을 운영하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A 실업팀 운영에 드는 비용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선수 급여도 있고, 훈련비와 지도자 급여, 대회출전비 등 만만한 액수는 아니다. 하지만, 기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큰 욕심을 가지고 사리사욕을 채우기 바쁜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사회에 환원하고, 힘들고 어려운 이들에게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주는 삶이 훨씬 더 가치가 있다고생각한다.Q 농구계에서는 추진력이 강하고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로정평이 나있다.
회사에서는 CEO로서 스스로 어떤 사람이라고 평가하나.A 엄격하다. 특히 기업 윤리면에서는 더 그렇다.
22년 사업하면서 회사가 세무검열 한번 받아본 적이 없다. 운이 좋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정도로 투명하게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사업을 하면서 탈세를 하고 자신의 주머니만 채운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부정한 짓을 절대 하지 말라고 직원들을 늘교육한다.
기업이 한 번 두 번 부정한 짓을 하다 보면 나중엔 만성이 되기 마련으로 사전에 차단하고 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일절 용납하지 않는다.
업무능력이 부족한것은 배우면 그만이지만, 거짓말로 남을 속이고 핑계 대기 급급한 사람은 발전이 없다. 스스로도 아직 수양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직원을 관리하면서도 나 자신에대한 채찍질도 잊지 않고 있다.
Q 회사 설립 후 노사분규가 단 한 차례도 없었다고 하는데무분규로 노사관계가 안정을 이룬 원동력은 무엇인가.
A 매월 1일 150여명의 사원들을 모아놓고 정신교육을실시하고 있다. 한 달간의 회사 업무보고와 함께 국내ㆍ외경제, 그리고 건강과 가정학에 대해 교육한다.
20여년 동안 거의 거른 적이 없다. 정신이 건강해야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 정신이 썩으면 몸은 이미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내 재산은 사원들에게 모두 공개돼 있다. 단돈 몇십 만원의 비상금도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여러 체육관련사업으로 돈이 모자라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쓸 정도다.(웃음) 자랑은 아니지만, 집도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마련했는데 14년을 살면서 십원 한 장 갚지 못했다.
솔직히회사돈을 가져다 메꿀수도 있지만 나 자신에게 당연히용납되지 않는 부분이다. 이러한 투명한 행정과 기업운영이 무분규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CEO와 직원들과의 끈끈한 신뢰가 형성됐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Q 현재도 운동복을 입고 운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경기도생활체육회 부회장도 맡으시는 등 스포츠에 대한열정이 남다른데.
A 스포츠를 시작한지 20여년이 됐다. 축구, 농구, 야구, 배구 등 공을 가지고 하는 스포츠는 거의 대부분 능숙하게하는 편이다. 워낙 운동을 좋아하다 보니 어딜가든 스포츠를 통해 함께 어울릴 수가 있다. 올해 내 나이 60인데 아직까지 한 번도 큰 병을 앓은 적이 없다.
운동으로 다져지면서 건강한 생활습관을 가지다 보니 잔병치레가 없었다. 큰 재산이라고 생각한다.
경기도 생활체육인의 한 사람으로서 경기도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난 정치인이 아니다.
정치인은 매스컴을 통해 지역인들과 연결될수 있겠지만, 나는 일반인이다. 경기도민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으로 스포츠를 선택했고, 경기도 생활체육과 함께하는 현재의 삶이 즐겁고 행복하다.
Q 회장께서는 국내 농구계에서 ‘야인’으로 불리고 있다. 이유가 무엇인가. 또한 농구관련 직함을 모두 맡으셨고, 이제 대한농구협회 회장만 남아있다. 도전해볼 의향이있는지.
A 우리나라 엘리트 농구가 실업으로 출발해프로로 가면서 많은 발전을 했다. 물론 선수들의 기량도 일취월장한게 사실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늘 아쉬움이남는다. 애정이 많은 만큼 부족한 점을 지적하고 발전방향을 제시하다 보니 농구계의 ‘야인’으로 인식된 것 같다.
잘못된 부분을 개선ㆍ발전시키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지 절대 사리사욕을위해 행동했던 적은 없었다.시대가 많이 변했다. 스포츠도 과학적으로 접근하는시대다. 박태환과 김연아, 손연재가 세계적인 스타로 올라서게 된 이면에도 과학이 존재했다.
그런 점에서 옛 방식을 탈피하고자 하는데 대한 적극적인 방향제시로 인해표면적으로 그렇게 보이게 된 것이지 솔직히 야인은 아니다. 농구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일하는 열정적인 사람일 뿐이다.
대한농구협회장에 대해서는 젊은 후진들한테 기회를주는 것도 좋지 않겠나라는 부분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 농구의 발전을 위해 일해볼 생각은 가지고 있지만 욕심은 없다. 다른 훌륭한 분이있다면 당연히 그분이 직책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담=황선학 체육부장
정리=박준상기자∙사진=전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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