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연극 ‘프랑켄슈타인’과 서양극 대본의 힘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연극 ‘프랑켄슈타인’을 최근에 보고 왔다. 영국 여성작가 메리 셸리의 소설을 영국 극작가 닉 디어가 각색한 대본을 바탕으로 제작한 이 공연은 2011년 영국 국립극장이 제작하여 무대에 올리면서 큰 인기를 누렸던 화제작이다.

한국 공연에는 대본 원작을 그대로 가져왔지만, 원작의 의도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약간의 변화를 시도했다. 특히 피조물역을 맡은 국내 배우의 혼신을 불사르는 연기가 아니었더라면 이번 공연이 빛을 발하지 못했을 정도로 그의 존재감은 특별한 것이었다.

원작 소설이 나왔던 1818년 당시 18살의 영국 소녀가 만들어낸 천재 과학자 프랑켄슈타인과 그 피조물의 이야기에는 후일 ‘고딕’, ‘공상’ 또는 ‘호러’와 같은 수식어가 진부하게 따라 붙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로부터 100년 후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가 표명한 실존주의 철학을 그 속에 담고 있다.

200년 전의 소설 속에서, 인간이 아닌 괴물의 눈을 통해 ‘세상에 내던져진’ 인간의 삶과 부조리한 세상을 이미 얘기하고 있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기존의 원작들을 발굴해 변형ㆍ발전시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고 극(劇) 대본을 창작해내는 극작가들의 힘은, 서양극(西洋劇)이 오늘날까지 세계의 공연예술 시장을 지배하게 만드는 원천이 되고 있다.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시작된 서양극은 BC 5세기 디오니소스 제전으로부터 기원하는데, 그때부터 극 안에서는 이미 극의 매체인 ‘말’과 ‘음악’의 주도권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 이후로 대사 중심의 ‘언어극(연극)’과 음악이 주도하는 ‘음악극’은 서로 경쟁하기도 하고 때로는 협력하면서 서양극의 역사를 이끌어온 두 축이 된다.

중세 천년의 암흑기를 거치며 소멸한 듯 보였던 ‘음악극’의 형태는 르네상스 시대를 맞아 이탈리아에서 오페라라는 형식으로 부활하여 ‘언어극’ 무대의 세력을 넘어서게 되었다. 음악혁명가이자 작곡가였던 몬테베르디가 오페라를 급진적으로 발전시켜 오늘날의 오페라 양식이 자리 잡는데 중요한 기틀이 만들어 졌다.

한편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오페라가 태동하던 16세기 후반 영국 런던에서는 ‘언어극’이 기지개를 펴게 되는 역사적 사건이 발생했다. 그것이 바로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탄생과 그의 위대한 창작활동이었다.

셰익스피어가 초석을 마련한 ‘언어극’ 주도의 전통, 즉 탄탄한 문학적 대본을 바탕으로 한 연극의 전통이 지배적인 위상을 차지하며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

서양극이 장구한 역사 속에 언어극과 음악극으로 분리되면서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여 각자의 길을 걷게 되지만, 어떤 양식에서건 극(劇)의 바탕이 되는 대본은 그 작품의 질과 품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힘으로 작용해 왔다.

450년 전에 태어난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바탕으로 재창조된 극(劇) 대본이, 연극, 오페라, 뮤지컬 등 다양한 양식의 공연예술을 위해 얼마나 많은 활약을 해왔는지 생각해 본다면, 서양극의 힘의 원천은 원작과 함께 창조적으로 각색된 또 하나의 예술, 대본에서 온다고 얘기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연극 ‘프랑켄슈타인’은, ‘연극’이 발달한 영국의 전통과 그 것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극(劇) 대본 창작의 힘이 새삼스레 느껴지는 공연이었다.

임형균 톤마이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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