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인터뷰] 이근 가천대 길병원 원장

“닥터헬기, 하늘 나는 응급실… 섬마을 주민 생명 지킴이”

최근 안전이 최고의 키워드로 떠오르면서 각종 광고나 시사프로그램 등에 자주 언급되는 단어가 있다.

바로 ‘골든타임(golden time)’이다.

골든타임은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사고 대응과 인명 구조의 성패를 좌우하는 초기 대응 시간을일컫는 말로, 생사가 달린 금쪽같은 시간을 뜻한다.

드넓은바다와 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 등 많은 섬을 앞에 낀 인천은 안전상 골든타임이 매우 예민한 곳일 수밖에 없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도서지역 환자를 수 시간이 소요되는 배를 이용해 내륙으로 이송했다가는 정말 중요한 골든타임을 놓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다행히 인천에는 바다와 섬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응급환자를 신속하게 치료하는 병원이 있다. 전국 최초로 닥터헬기를 운영 중인 가천대 길병원이다.

의사가 직접 헬기에 탑승해 환자 이송 때부터 응급치료를 시작한다는 개념의 닥터헬기는 인천 도서지역의 생명 지킴이로서 올해로 3년째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골든타임에 강한 인천을 만들고자 닥터헬기를 전국 최초로도입한 이근 가천대 길병원 원장(62)을 만나 골든타임에 대한 의학적 철학을 들어봤다.

Q 닥터헬기는 소방헬기에 비해 생소하게 느껴진다. 닥터헬기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A 닥터헬기는 의사와 각종 응급의료 장비 등을 갖추고 응급환자 치료 및 이송 전용으로 사용하는 헬기를 말한다. 의사가 직접 탄다는 점에서 소방헬기와 다르고, 이송과 동시에 의사가 응급치료할 수 있어 응급환자의 소중한생명을 지키는 데 매우 유리하다. 닥터헬기를 보통 ‘하늘을 나는 응급실’이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이유다.

닥터헬기로 사용되는 기종은 유로콥터 EC135 기종이다. 의료진을 포함해 6명이 탑승할 수 있고, 인공호흡기·심전도·초음파·생체정보시스템·자동심폐소생기 등 응급실 수준의 장비를 갖추고 있다.

닥터헬기는 헬기장 및 계류장에 정차하다가 응급상황발생 때 의사가 탑승해 30분 이내에 현장에 도착, 1시간 이내에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응급환자의 골든타임을 확보하기 위한 의사의 빠른 치료와 환자의 빠른 이송이 닥터헬기의 핵심이라 보면 된다.

Q 닥터헬기를 도입하게 된 계기는.

A 지난 1992년 연수 협의차 방문한 미국의 듀크대학에서 닥터헬기를 보고, 인천에 닥터헬기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의료선진국은 닥터헬기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인식해 닥터헬기를 운영 중이었다. OECD 33개국 중 한국을 제외한 32개국이 닥터헬기를 운용하고 있었다.

바다와 섬이라는 지역적 특성까지 유사한 일본만 하더라도 한국보다 앞서 닥터헬기가 보편화된 상태였다.

일본은 고베 대지진을 계기로 닥터헬기에 대한 인식이 싹트기 시작해 지난 1999년 후생노동성의 시범사업 진행 후 본격적인 닥터헬기 도입이 이뤄졌다. 현재 일본에서 활약 중인 닥터헬기는 20여 대에 달한다.

닥터헬기는 여러 연구에서 응급환자 사망률을 낮추고 중증 후유증 발생률도 크게 낮추는 등 효과를 입증했다. 심지어 치료비 절감과 치료기간 감소에도 탁월한 효과를 거뒀다.

도서지역을 낀 인천에 닥터헬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 이후 수년 동안 보건복지부 등 의료계에 닥터헬기 도입을 적극적으로 건의했다.

다행히 보건복지부도 응급의료기금으로 운영 중인 소방헬기가 응급환자 이송 실적이 미흡해 심장·뇌·외상 등 중증 응급환자를 위한 전용헬기 도입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함께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지난 2011년 서해권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된 길병원과 목포 한국병원을 닥터헬기 시범사업 대상 의료기관으로 선정했다.

Q 닥터헬기가 도입된 지 3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의 성과는.

A 지난 9월 23일 닥터헬기가 운항 3주년을 맞이했다. 지난 3년간의 닥터헬기 운영 현황을 보면 548번 요청을 받아 392번을 출동했고, 366명의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했다.

연평도·대이작도·무의도 등 인천의 섬지역에서 이송된 환자만 130명에 달했고, 경기도 김포나 충남 당진 등 인천 외 지역에서 이송돼 온 환자도 102명이나 됐다.

중증 외상환자 96명과 뇌출혈 환자 45명, 뇌졸중 환자 23명, 심근경색 환자 14명, 심정지 환자 3명 등 그야말로 생사의 갈림길에 선 환자를 닥터헬기를 통해 신속하게 치료할 수 있었던 것은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닥터헬기가 환자와 병원에 안겨 준 드라마 같은 사연도 많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인천 시도에 거주하는 부부가 닥터헬기를 통해 생명을 구한 일이다.

지난 2012년 남편이 심장에 통증을 느껴 닥터헬기를 통해 병원에 도착해 치료를 받은 데 이어 수개월 뒤에는 아내가 뇌출혈을 일으켜 닥터헬기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나중에 두 분이 직접 찾아와 “우리 같은 섬사람에게 너무도 고맙고, 든든한 존재”라고 닥터헬기를 평가해 주셨다. 닥터헬기가 섬지역 주민에게 꼭 필요한 의료서비스라는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해준 일이다.

Q 닥터헬기가 그야말로 골든타임에 강한 인천을 만드는 데 크게 일조한다고 봐도 무방한데, 닥터헬기를 운영하는 병원입장에서 애로사항은.

A 닥터헬기에는 단순히 병원의 노력만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보건복지부가 50억 원의 예산 지원을 하고 있고, 인천시도 20억 원을 지원하고 있다. 골든타임에 강한 인천을 만드는데 정부와 인천시, 병원이 모두 합심하고 있다. 이 같은 지원을 시민에게 돌려줘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길병원 권역외상센터도 응급환자의 신속한 치료와 닥터헬기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만들어졌다. 권역외상센터는 365일 24시간 전국 어디서나 1시간 이내 중증외상환자에게 치료를 제공하고자 만들어진 전문 치료센터이고, 닥터헬기가 이용하는 헬기장이 권역외상센터 옥상에 설치돼 있다.

특히 야간과 기후에 제약을 받는 닥터헬기의 한계를 극복해주는 것이 원격진료이다. 지난 1996년 백령도의 인천시 의료원 백령병원과 원격진료를 전국 최초로 시작했다. 당장 인천 내륙으로 환자를 이송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의사 간 원격진료는 최선책이 될 수 있다.

닥터헬기에 대한 정부와 인천시의 든든한 지원, 닥터헬기의 효율적 운영에 큰 역할을 하는 권역외상센터, 닥터헬기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원격진료 모두 골든타임에 강한 인천을 만드는 공로자다.

 

Q 최근 골든타임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응급치료에서도 매우 중요한 개념인데, 이에 대한 의학적 견해는.

A 골든타임은 외상 환자를 두고 도입된 개념으로, 외상환자의 골든타임은 1시간 이내로 본다. 닥터헬기가 보통 환자가 있는 곳에 도착하기까지 약 15분의 시간이 걸린다. 의사가 직접 헬기에 탑승했기 때문에 외상 환자에 대한 골든타임 확보는 충분히 가능하다.

이렇게 골든타임을 확보하면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합병증이나 후유증도 최소화할 수 있다. 응급에 있어 골든타임이 중요한 이유이고, 닥터헬기가 골든타임 확보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는 시간이다.

또 심장마비 환자의 골든타임은 외상 환자와 다르게 4~10분으로 매우 짧다. 그러나 닥터헬기가 도착하기까지 심장마사지 등 심폐소생술만 제때 이뤄진다면 환자의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최근 심폐소생술의 보급화가 중요해진 이유다.

60대 심장질환 환자의 70%가 가정에서 심장마비를 경험한다는 통계도 있다. 소중한 가족과 지인을 위해 심폐소생술을 익혀둔다면 심장마비 환자에 대한 골든타임 확보가 가능하다.

Q 가천대 길병원은 닥터헬기 외에도 많은 의료서비스를 시민에게 제공하고 있다. 인천을 대표하는 병원으로서 각종 의료 혜택을 시민에게 되돌려주는 모습은 다른 병원도 본받아야 할 점으로 보이는데.

A 인천을 넘어 전국적인 규모로 성장한 길병원은 더 이상의 영리추구보다는 지역주민의 자랑이 돼야 한다.

또 인천에는 국립병원이 없기 때문에 길병원이 국립병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길병원의 설립자인 이길여 가천길재단 회장의 박애·봉사·애국이라는 의료철학이 담겨 있다.

생명 존엄 정신과 의료혜택은 특정 계층이나 지역 등을 초월해 베풀어져야 하고, 의료는 반드시 공익성과 사회성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응급에 있어서는 선조치하고 있다. 환자가 치료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지 따지기 전에 소중한생명을 먼저 구한다는 철학이 바탕에 깔렸다. 그렇다 보니 엉뚱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환자의 인적사항 확인을 위해 신원을 물었다가 환자의 가족이나 지인으로부터불호령이 떨어지는 경우가 더러 있다.

환자가 돈을 낼 수있는지 형편이나 배경을 묻는 의도로 오해하기 때문이다.치료를 위해 환자의 인적사항 확보는 필수다. 이 부분에서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Q 끝으로 시민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A 닥터헬기에 대한 민원이 많은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인근 주민으로부터 소음에 대한 민원이 자주 들어온다.

의사가 직접 탑승하고, 각종 응급의료 장비를 갖춘 닥터헬기는 응급환자의 골든타임에 있어 시·공간을 초월한 의료서비스다. 이러한 점을 지역주민이 너그러이 이해해주길 바란다.

끝으로 시민이 심폐소생술 등 갑작스런 사고에 대한 응급조치법을 배워두길 당부하고 싶다. 기아나 전쟁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없지만, 심장마비 등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망하는 사람은 날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적절한 응급조치가 진행된 상태에서 닥터헬기의 빠른 응급치료가 이뤄진다면 환자의 소중한 생명을 구할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골든타임에 강한 인천을 만들어가는 데 시민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김민기자

사진=장용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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