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에 비상등이 켜졌다. 장기화된 경기 침체와 내수 부진으로 인해 우리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게다가 수출마저 흔들리면서 한국 경제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11월 수출 실적은 작년 동월 대비 1.9%를 기록했으며 대 중국 수출마저 둔화되는 추세다. 또한, 일본의 양적 완화에 따른 충격도 크다. 원엔 환율이 10% 하락할 경우 철강은 13%, 석유화학은 11%, 기계는 9.4% 수출이 감소한다는 전망이 있을 정도다.
가장 걱정스러운 점은 한국 경제를 떠받쳐 왔던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실적 부진이다. 최근 우리 경제는 극심한 내수 침체에도 GDP의 35%를 차지하는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의 글로벌 시장에서의 선전을 바탕으로 경제가 유지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32%를 점유했던 삼성전자는 최근 중국 업체들의 추격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중국의 샤오미는 3년 내에 삼성전자를 따라잡겠다고 선언한 후 중국 스마트폰 점유율에서 삼성전자를 밀어내고 1위를 차지했다.
과거 ‘짝퉁’으로 천대받았던 중국기업들이 저렴한 가격과 준수한 성능으로 세계시장 석권을 노릴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현대차도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 차와 힘겨운 경쟁을 벌이며 영업이익이 급감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하기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국회 시정 연설에서 지금이 우리 경제가 도약하느냐 정체하느냐는 갈림길이며, 경제를 다시 세울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호소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국회가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지난 8월 26일 이후 5개월간 국회는 법안처리 0건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겼으며, 정부가 꼭 통과시켜달라고 요청한 경제활성화 법안 30건 중 22건이 정기국회가 종료된 12월 9일까지 통과되지 못했다. 부동산 경기 활성화 법안, 서비스산업 발전법과 관광진흥법 등 내수 활성화 법안, 그리고 월세 임차인을 돕기 위한 세제 관련 법안이 그것이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정부가 대책을 발표하더라도 입법으로 이어지지 못하면 대책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법안 통과가 늦어지면 관련된 기업과 업계에서는 하루가 1년 이상 느껴질 정도로 속이 타들어간다고 한다.
이제는 ‘식물국회’라는 비판을 넘어 부끄럽게도 ‘경제법안의 무덤’이라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등장했다. 이렇듯 급박하게 변하는 경제 현실에 대한 대처가 늦어지며 골든타임을 놓치는 정책시차 문제가 심각하다. 몸에 탈이 나서 빨리 치료를 해야 하는데, 병원에서 처방전을 병이 악화된 후에나 주거나 언제 줄지 모르는 상황이나 마찬가지다.
국회가 이 지경이 된 것은 정치 문화 탓도 있으나 국회선진화법으로 불리는 국회 시스템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2012년 국회법이 개정되면서 직권상정 요건을 강화함에 따라 사실상 교섭단체 대표간 합의가 있어야 본회의에 안건을 상정할 수 있게 되었으며, 조정이 필요한 쟁점 법안은 소관 상임위원 2/3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의결이 가능해졌다. 또한, 신속하게 안건을 처리하거나 필리버스터를 종료하려면 재적 의원 3/5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한마디로 3/5 이상 절대 의석 없이는 단독으로 신속한 의사 진행이 불가하며, 소수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의사진행을 막을 수 있는 합법적인 장치가 마련된 셈이다. 이에 따라 민생 법안과 쟁점 사안을 연계하는 볼모정치가 횡행하고 신속한 법안 처리는 사실상 어려워졌다.
백척간두의 위기 상황에서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으려면 반드시 국회선진화법을 현실성 있게 개정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3/5 규정으로 인해 국회선진화법을 개정하는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다고 나라가 위기인데 속수무책인 국회를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국회가 정책 시차를 없애기 위한 신속한 위기 대응 입법 시스템을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 이는 여야의 문제를 떠나 대한민국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김학용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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