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겨울나기와 ‘노블레스 오블리주’

12월이다. 한 장 남은 달력은 2015년 새 달력의 표지로 매달려 있다. 세월의 속도는 나이와 같이 간다고 했듯이 실감이 난다. 주변을 돌아보면 도무지 천천히 가는 것들이 없다.

가을이나 싶더니 겨울이고 하루가 시작되면 덤벙대다가 속절없이 지나간다. 평상시와 다름없는 쳇바퀴 생활을 하면서 내일은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망상을 꿈꾼다. 그 와중에 챙겨야 하는 많은 것을 놓치고 다음을 쫓아가는 모습이 실속은 없다.

얽히고설킨 일상을 잠시나마 털고자 이번 주말에도 가까운 산을 찾았다. 세파에 닿아 뼈만 남은 돌길과 흙길로 이어지는 등산로 옆 소나무와 참나무 숲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이 따사롭다. 반면 음지를 거쳐 계곡을 타고 올라와 스치는 바람은 차다. 숲 속의 미동에 눈길을 돌리자 인기척에 놀란 청설모가 도토리를 챙겨들고 달아난다. 겨울나기 월동채비인 모양이다.

요즘 며칠은 눈이 내렸다. 엄동설한 겨울이 깊어지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반면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했는데 경기침체로 인심을 나눌 여력이 줄면서 서민과 복지 사각 지대 사람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과거 우리 선조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날짐승에게까지 실천했었다. 배고팠지만 ‘까치밥’을 남겨두는 아량은 서양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보다 앞서는 베풂 정신이었지 않나 싶다. 그런데 지금은 과학의 발달과 산업화로 빨리빨리와 편리함으로 물질적 풍요는 누리지만 정신적 행복지수는 과거보다 낮아지고 있다고들 말한다.

올해는 유난히 시계를 과거로 되돌리고 싶은 가슴 아픈 일들이 많았다. 이럴 땐 시간여행이라도 된다면 미래의 행복을 빌려 쓸 수도 있으련만 삶은 만약이 없다는 게 아쉽다.

천천히 가는 연습을 했으면 싶다. 편리함의 미명하에 날로 발전하는 과학을 통해 생산되는 것들은 당장은 편리하지만, 결국은 우리를 옭아매는 부메랑의 덫으로 돌아온다. 요즘 기후변화가 대표적인 일례라는 생각이다.

지구의 47억년 역사보다 최근 50년의 역사가 지구변화를 크게 가져왔다고 볼 때 앞으로 50년 후의 지구에는 무엇이 남고 어떻게 변할지 상상조차 어렵다. 결국 과학이 미래의 삶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만 거는 우리는 후손들에게 모두 죄인일 수 있다.

때문에 후손들의 자연을 빌려 쓰고 있는 우리는 그들이 개발하고 고민할 땅과 자연을 남겨두는 여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를 위해서는 욕심을 낮추고 주위를 살피며 함께 살아감을 느꼈으면 한다. 주머니가 여유롭다면 나눔의 행복을 가져 볼 필요가 있다. 특히 가진 자, 기득권층, 그리고 저명인사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확산이 그립다.

최근 우리 주변에는 낮은 곳에서 조용히 나눔으로 따뜻함을 전해 주는 사람들도 많다. 지역사회단체는 관내 불우 소년에게 보금자리 집을 지어 주기로 했고, 한 사업가는 전자제품 일체 지원을 약속했다. 또 독지가들의 쌀 기부와 김치를 담가 불우이웃에 나눠 주는 사회단체도 늘고 있다.

용돈을 아껴 노인정에 양말을 사서 기증하는 자매 학생의 이야기도 이 겨울 따뜻한 온기를 느끼게 한다. 이들의 훈훈한 울림이 ‘노블리스 오블리주’로 이어져 사각지대의 빛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안병렬 국제라이온스 협회 354-B 지구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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