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책방 화석’ 디지털 사막 ‘아날로그 오아시스’
많은 이들이 아날로그 TV, 공중전화 등이 그랬던 것처럼 배다리 헌책방 역시 기성세대의 추억으로 남아 개발의 물결 속에서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만큼 서점가의 변화 속도는 거셌고, 헌책방은 더이상 소규모 운영이 어려운 아이템으로만 여겨졌다.
배다리가 그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엔 아직 배다리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많이 남아 있었다.
아벨서점을 40년 넘게 운영 중인 곽현숙 사장은 지난 2007년 다락방과 시집 전시실, 문화·예술 서적 전시실을 갖춘 ‘아벨 전시관’을 아벨서점의 별관 개념으로 열었다. 이곳 전시관 다락방에서는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 시낭송회가 열린다.
매번 20여명의 지역 문화계 인사들과 지역 주민들이 찾고 있으며, 지난달 29일로 제80회를 맞이했다.
2009년에는 지역운동가인 청산별곡(활동명) 대표가 인문학·생태·환경·인권·대안교육 서적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헌책방 ‘나비날다’를 새로 열었다. 그간 새로운 헌책방을 열려는 시도가 수차례 있었음에도 나비날다만이 지금까지 남아 헌책방의 생명력을 전하고 있다.
청산별곡 대표는 지난 3월에 나비날다의 공간을 활용해 배다리 안내소를 새로 꾸렸다. 책방이 안채로 가고, 그 자리에는 추천 헌책과 함께 배다리 소개 책자, 배다리 지도 등이 차지하면서 배다리를 처음 찾은 관광객들도 어려움 없이 둘러볼 수 있도록 채워졌다. 단골손님 많기로는 어느 헌책방 못지 않은 삼성서림의 세대 교체 역시 중요한 변화다.
1962년부터 배다리 헌책방에 자리한 삼성서림의 이진규 전 대표는 다리가 불편해 더이상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수소문 끝에 오광용 대표에게 지난 10월 삼성서림을 넘겼다.
이 전 대표는 20대부터 50여년간 삼성서림을 운영, 배다리 대표 헌책방 중 하나로 키웠으며, 많은 지인과 주민들에 배웅 속에 은퇴했다. 오 대표는 이 전 대표의 철학을 존중, 기존 상호 그대로 운영하고 있으며, 내부 공간을 다시 꾸미고 헌책을 새롭게 정리해 삼성서림의 역사를 잇고 있다.
삼성서림보다 1년 앞서 문을 연 한미서점 역시 10년 전부터 장원혁 대표(46)가 아버지의 대를 이어 운영하면서 항상 그대로일 것 같던 헌책방 주인들도 하나 둘 바뀌고 있다.
특히, 배다리 헌책방 주인들은 젊은 층과의 접점을 위해 지난해부터 매년 10월 헌책방 거리에서 ‘느릿느릿 배다리씨와 헌책잔치’라는 행사를 열고 있다.
헌책잔치 행사에는 책갈피 만들기, 추천책장 전시, 오래된 잡지 전시, 무인 찻집 운영, 책방 주인과의 대화, 문화단체 공연 등이 열려 주민들과 손님, 책방이 한데 어우러지는 시간을 만들고 있다.
글 _ 박용준 기자 사진 _ 장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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