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단상] 청년을 무릎 꿇리는 세상에 희망은 없다

‘갑질’. 이 말이 언제부터인가 우리사회의 화두(話頭)가 되어버렸다.

‘갑질’이란 단어는 계약 관계에 있어서 주도권을 갖는 상대를 ‘갑’이라 칭했기에 만들어진 단어로, 상대 간에 우위에 있는 사람의 행위를 이르는 말이다. 그런 ‘갑질’이 부정적인 의미로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우리 사회에 권한을 가진 사람이 이성적으로, 도덕적으로 성숙하지 못했다는 뜻이며 또 부당한 이득을 취하려는 행태가 폭넓게 만연하고 있다는 반증이라 하겠다.

왕조국가로 수천 년간 계급사회였던 우리 민족이 일제시대를 거쳐 해방 이후 계급사회가 완전히 무너지면서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단기간에 민주주의를 일구어 낸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가 매년 선정하는 전 세계에서 완전한 민주주의를 하는 국가 중 아시아권에서는 한국과 일본 단 2개 국가만 선정될 정도로 한국의 민주주의는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지난 2010년에는 한국(20위)이 일본(22위)을 제치고 아시아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로 올라서기도 했다.

그러나 제도의 운영 면에서는 민주주의를 일궈냈을지 몰라도 해방 이후 친일청산에 실패하고 심지어 친일파의 후손들이 우리사회 지도층의 곳곳을 장악하면서 우리 사회 ‘정의’의 가치는 크게 훼손되었음이 틀림없다.

그 결정판이 전관예우다. 전관예우와 갑질은 그 본질이 같은 단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야말로 전관예우와 ‘갑질’의 본질을 설파한 말이라 생각된다.

그러면 우리사회에 ‘갑을’ 간의 계약관계에 있어 갑의 횡포를 막기 위해 어떤 제도적 장치와 기관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공정거래법과 공정거래위원회다. 그런데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공정거래를 무색케 하는 ‘전관예우’가 그 곳에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근무하던 하도급법 위반 심판위원장의 경우 지난 2012년 퇴직 직전 하도급법 위반으로 심의 중이던 모 건설사에 대해 무혐의 판정을 내린 후 두 달 뒤에 해당 건설사의 변론을 맡았던 로펌으로 이직했다.

이런 사례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최근 대형 로펌의 영입 0순위 중 하나가 공정거래위원회의 고위직 간부라고 한다. 실제로 지난 2년간 공정거래위원회의 고위직 퇴직자 3명이 국내 최대의 로펌을 비롯해 대형 로펌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 사회의 ‘갑질’은 작게는 조직문화와 기득권에 의해 보호받고 넓게는 전관예우가 그들을 보호하고 있다.

최근 ‘국제시장’이란 영화가 천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한다. 6.25전쟁부터 파독 광부 월남전을 거쳐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우리들의 아버지의 이야기가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오늘의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시사하고 있다.

아버지의 세대는 폐허 속에서 가난을 이겨보자고 맨주먹으로 정말 열심히 일한 시대였다. 그리고 그 과실로 오늘의 경제부국을 이뤄냈다.

그러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젊은이들은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모두가 제대로 된 댓가를 받는 보장이 없는 세대다. 청년실업과 계층간 소득격차, 그리고 비정규직 문제 등은 우리사회가 풀어내야 할 숙제다.

개발시대의 성공신화가 사라진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사회에 나오자마자 ‘갑질’에 의해 무릎 꿇리는 세상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건전한 사회가치의 재정립과 ‘갑질’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방안을 강구할 때다.

함진규 국회의원(새누리•시흥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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