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천령(摩天嶺) 올라앉아 동해를 굽어보니/물 밖이 구름이요, 구름 밖이 하늘이라/아마도 평생 장관(壯觀)은 이것인가 하노라.’
시조집 <고금가곡(古今歌曲)> 을 남긴 조선의 시인 송계연월옹(松桂烟月翁, 본명 미상)은 함경남도와 북도의 경계인 마천령에서 본 동해의 경이로움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마천령뿐 아니라 높은 곳 어디서든 맑고 푸른 동해를 바라보고서 경탄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겁니다. 고금가곡(古今歌曲)>
‘청옥(靑玉) 빛 깊은 바다 산호당(珊瑚堂) 속에 아름다운 비밀이 숨어 있으니…’(김광섭 시인, 바다의 소곡)라는 시구처럼 동해를 보면서 바닷속에 무슨 비밀이 있을까 궁금해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겁니다. 이처럼 민족의 사랑을 받는 동해를 정부는 영문으로 ‘East Sea’라고 표기합니다.
동해라는 말 그대로를 영어로 옮긴 표현입니다. 하지만 영문표기는 그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ast Sea of Korea(한국의 동해)’가 옳다는 겁니다. ‘East Sea’라고 하면 우리는 그 뜻을 알지만 외국인은 다릅니다.
한국을 거의 모르는 외국인들은 “East Sea? 어느 나라 동쪽 바다?”라고 물음표를 찍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좀 안다고 하는 외국인조차도 지리에 큰 관심이 없다면 비슷한 의문을 가질 겁니다.
저는 지난해 2월 미국 버지니아 주 랄프 노덤 상원의장에게 영문서신을 보냈습니다. 버지니아주 상원이 동해 영문표기를 일본해 표기와 병기하는 법안을 가결한데 대해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동해 영문표기를 ‘East Sea of Korea’로 해 달라고 요청한 겁니다.
지난해 가을 국회 국정감사와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도 정부의 동해 영문표기에 ‘of Korea’를 붙이자고 했습니다.
세계의 어느 누가 보고 들어도 단번에 한국의 동해임을 알 수 있도록 그렇게 표기하자고 한 것입니다. 하지만 정부의 태도는 답답했습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그간 ‘East Sea’로 많이 써 와서 외국인도 많이 알고 있다. 또 표기를 바꾸면 혼란도 생긴다”고 했습니다.
정부가 ‘East Sea’를 많이 써 온 건 사실이지만 그걸 보고 우리 동해임을 바로 아는 외국인이 얼마나 많을지 궁금합니다. 외국인에게 동해를 알리는 데엔 ‘East Sea’를 아무리 많이 써도 ‘East Sea of Korea’라고 하는 것보다 못할 텐데 정부는 왜 생각을 바꾸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East Sea에 ‘한국의(of Korea)’라는 말을 붙일 경우 혼란이 생긴다는 건 또 무슨 얘기입니까. 한국의 동해임을 선명하게 알리는데 도움을 주는 단어가 무슨 혼란을 초래한다는 것인지 정 총리의 답변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일본이 동해를 ‘일본해(Sea of Japan)’라며 국호까지 넣어서 표기하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우리 국호를 뺀 영문표기가 좋다고 우기고 있으니 한심하지 않습니까. 동해와 일본해의 영문표기를 병기한 외국 지도 가운데 ‘Sea of Japan(East Sea)’이라고 한 것들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쓰는지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은 이런 지도를 보고 ‘East Sea가 일본해와 같은 바다인데 아마 일본 동쪽에 있는 바다인가보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East Sea of Korea로 표기한다면 누구든 그 바다가 한국의 동해임을 분명히 알게 될 겁니다.
동해를 영문으로 표기하는 까닭은 우리의 바다를 세계에 보다 잘 알리기 위해서 일 겁니다. 그렇다면 지구촌의 누구도 금세 알 수 있는 표기를 하는 게 옳지 않을까요. 타성에 젖은 정부의 각성과 발상 전환이 시급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이상일 국회의원(새누리당·용인을 당협위원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