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터·영화관·갤러리 무한변신
“온갖 잡다한 사연 다 끌어안고도 의연한 도서관을/ 눈곱만큼이라도 닮으러 간다.” 이인원의 시 <도서관 간다> 의 한 구절이다. 도서관>
시인은 도서관 안에 수많은 욕망이 꿈틀댄다고 봤지만, 우리네 도서관 풍경은 그리 다양하지 못하다.
<도서관 간다> 는 말이 ‘공부하러 간다’는 의미로 통하는 우리 사회에서 도서관은 시험·취업 준비를 위한 수험생들의 ‘선착순 무료 독서실’로 전락한 지 오래다. 도서관>
하지만 영원한 과거형은 아니다. 변화의 크기와 속도는 크거나 빠르지 않지만 분명 구성과 외관을 달리하고 있다. <책의수도, 인천> 기획, 변화하는 인천 도서관의 모습을 엿봤다. 책의수도,>
평생 문화·학습 공간으로…
인천지역 도서관들이 각종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중앙도서관과 화도진도서관에서는 계절과 테마별로 가족영화나 애니메이션을 선정해 매주 주말 상영을 하고 있다.
화도진도서관 디지털자료실 심현빈 주무관은 “도서관이 주민들의 문화와 복지를 책임져야 할 부분이라 특별한 행사가 있지 않은 이상 1년 내내 토요일과 일요일 영화 상영을 하고 있다”며 “요즘은 가족단위 이용객을 위해 가족영화와 애니메이션 위주로 선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형극이나 문화공연을 하는 곳도 생겨났다. 중앙도서관은 가족을 대상으로 한 탈 인형극을 여는가 하면 주인공들이 전통 가락에 맞춰 춤을 추고 얘기를 나누는 마당놀이도 주기적으로 열어 시민의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공연은 모두 어린이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객이 편안하게 보고 즐길 수 있는 것들이다. 아이들이 도서관 행사에 직접 참여하고 체험할 기회도 늘고 있다.
서구도서관은 무지개 꽃 만들기, 도전 골든벨, 그림 액자 꾸미기 등으로 아이들의 방학을 꾸려주고, 부평도서관은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발명 특허교실도 운영하고 있다. 또 연수도서관은 초등학생 대상으로 미술 학교와 어린이 문화기자학교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주안도서관은 태양광 에너지의 생산·활용과정을 학습하는가 하면, 계양도서관은 인터넷 중독예방을 위해 다양한 민속놀이를 체험하는 행사도 벌이고 있다. 주부와 중·장년층을 위한 평생학습 프로그램이 증가하고 있는 것 또한 도서관의 변화된 모습이다.
북구도서관에선 검정고시 대비과정을 운영해 매년 수십 명의 합격자를 배출하고 있으며, 배움의 기회를 놓쳐 한글을 배우려는 성인을 대상으로 한글교육 프로그램도 연중 운영한다.
임산부나 학부모 대상 프로그램도 파격적이다. 중앙도서관은 임신과 출산으로 도서관 이용이 불편한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책을 무료택배로 대출해주고 있으며 계양도서관에선 입시 철에 수험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대학입시 변화 분석 및 수시·정시 지원전략 설명회도 가졌다.
도서관에서 ‘만학’의 꿈 활짝
“북구도서관은 내 모교나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공부를 해 중학교와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다 합격했으니까요.” 이순갑(59세·여)씨는 지난 2013년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육학과에 14학번으로 입학했다.
그는 어린 시절 못 배운 한을 풀기 위해 북구도서관에서 운영하는 만학 배움터인 ‘사랑방학교’에 입학해 2년 만에 이곳에서 그토록 바라던 소원을 이뤘다.
이씨와 마찬가지로 이곳 사랑방학교를 거쳐 검정고시에 합격한 사람이 지난해에만 고졸 검정고시 11명을 포함해 총 34명이나 됐다. 인천 북구도서관은 인천지역 도서관에선 유일하게 검정고시 대비과정을 운영한다.
지난 2002년 문을 연 이후 수업은 1년 과정으로 진행되며 매년 수십 명의 합격자를 배출하고 있다. 특히, 배움의 한을 지닌 가정주부나 중·장년층이 주요 수강생이다.
교육은 초·중·고졸 등 3개 과정으로 운영되며 교육비도 따로 들지 않고 모두 무료다. 강사진 실력도 일반 학교나 학원에 버금갈 정도로 탄탄하다.
교육과정이 끝나고 나서도 찾는 이들도 많다. 정성껏 가르쳐 준 강사를 찾아오거나 도움을 줬던 도서관 직원들이 고마워 인사차 들르기도 한다. 상급학교에 진학 후 숙제를 하러 오거나 추가적인 공부를 위해 영어나 컴퓨터 등 다른 교육과정에 등록하는 이도 있다.
북구도서관 이효윤 평생교육사는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나서도 공부를 계속 이어가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며 “예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8월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분들을 위해 열심히 뒷받침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글=김준구기자 사진=장용준기자
[인터뷰] 박현주 계양도서관 문헌정보과장
책을 통해 문화 인프라 불모지에 희망햇살
박현주 계양도서관 문헌정보과장은 도서관에는 우리내 자화상이 녹아있다고 말한다. 그는 지난 1984년 인천 중앙도서관을 시작으로 올해까지 31년을 공공도서관에서만 근무해 온 도서관 통(通)이다. 지금은 도서관이 독서진흥 역할과 함께 문화향유와 평생교육의 역할까지 맡게 됐다는 게 그의 평가이다.
실제로 최근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들도 이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박 과장은 도서관이 인천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해야 한다는 점은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는 “인천지역이 아직도 다른 지역에 비해 문화 인프라가 상당히 빈약한 형편이다. 이 때문에 문화부문을 담당해야 할 여러 기관의 역할을 도서관이 여러 이벤트와 문화사업으로 연결시켜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도서관의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도서관과 시민이 함께 부족한 지역 내 문화 인프라를 줄여나가고 있다는 것. 그는 이러한 프로그램 운영이 도서관을 찾아오게 하는 하나의 ‘유인책’ 성격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주민들의 독서생활이나 독서활동을 장려하기 위한 내용보다 단순한 이벤트가 더 많아지는 것에 대해선 경계를 했다.
지나치게 이벤트성 문화 프로그램 중심으로 흐르다 보면 결국 사람들이 자기 주도적으로 책을 읽지 않고 프로그램의 수혜자 역할만 하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현재 도서관의 문화 활동도 단순히 문화와 기능을 배우는 데에 중점을 둘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을 향유하기 위한 기본적인 이론교육이 바탕이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박 과장은 “문화행사나 평생교육 등을 하면서 ‘책 읽기 확대’란 기본적인 철학과 목표가 정확하게 있지 않으면 주민의 입장에선 자칫 여러 프로그램만 나열해 놓은 ‘프로그램 쇼핑’이 돼 버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독서 진흥이란 목표가 도서관 평생교육 프로그램의 주된 목표가 돼야 하고 책을 통해 이 역할이 이뤄지도록 하는 게 도서관의 본원적인 기능일 것”이라고 말했다.
글=김준구기자 사진=장용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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